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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지킴이 이오덕 선생님을 기리며
하늘나라에선 겨레말과 나라걱정은 하지마세요
 
이대로   기사입력  2003/08/26 [12:44]
이오덕 선생님, 오늘 새벽(25일)에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올 소식이 왔구나 하면서도 가슴이 떨리고 정신이 멍했습니다. 어제 님과 함께 만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운영위원회를 대전에서 했는데, 그 곳에서 김경희 대표로부터 위독하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말 지킴이 훼방꾼 뽑기'와 한글날 기념식에 관한 의논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3일 전에 용인교육청이 시행하는 어린이 교육행사에 갔을 때 어느 교장 선생님이 "이오덕 선생님 안녕하시지요?"라고 묻기에 위독하신 줄도 모르고 "건강히 좋지 않아 충주로 가셨는데 좋아지셔서 글쓰기에 바쁘십니다."고 말했는데 거짓말을 한 꼴이 되어서 제가 선생님께 너무 무심한 표가 나서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필생의 작업은 우리말을 부지런히 다듬고 매만지신 것이었다. 하늘나라에서는 편히 쉬시기를...     ©한길사
그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 집에 왔는데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저는 어쩐지 선생님 생각에 불안하고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충주로 찾아가 뵐 수도 없어 한국글쓰기연구회 누리집으로 가서 "빨리 비도 그치고 선생님 고통도 그치게 해달라"고 바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가장 가까운 한국글쓰기연구회 게시판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누리집에 급한 대로 선생님을 기리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심란한 마음에 일손을 놓고 있는데 선생님을 모시기 위해 충주에 내려가 사는 한국글쓰기연구회 노광훈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소식을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여러 사람에게 죽음을 알리지 말고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르라고 유언하셨고 아드님도 그 뜻을 따르겠다고 해서 한국글쓰기회에서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도 그렇게 아시고 이대로선생님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도 지우시면 좋겠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좀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노 선생에게 "공병우 박사님도 그렇게 하셨지만 할 일이 많고 바쁜 사람들을 전국 곳곳에서 모이게 하지 않고 조용히 가시겠다는 뜻이지 글과 마음으로 추모하지도 말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선생님 살아 계실 때 공병우 박사님이 그렇게 가신 일을 잘하신 일이라고 서로 이야기 나눈 일이 있는데 인터넷을 통한 추모글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유족의 뜻이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한국글쓰기연구회에 올린 글은 지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게시판의 글은 그대로 두고 선생님의 유언을 덧붙여 적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제 뜻과 고집을 알고 눈감아 주실 거로 믿고 제 뜻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오늘 저녁 때 저와 함께 활동하는 인터넷신문 대자보에서 "이오덕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 신문에서도 소식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알았소. 그러지 않아도 고인께서 세상에 알리지 말고 조용히 장례를 지내라고 유언해서 지금 알리지도 못하고 모두 냉가슴 앓고 있소. 나는 평소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무덤도 만들지 말고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무덤 만들기, 추모글 쓰기 운동을 하는데 유족이 그것까지 말리니 어쩔 수 없군요. 상황을 봐서 추모글을 써 보낼 테니 장례가 끝날 때쯤 올려주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너미에서 전화가 와서 받으니 샛별초등 주중식 교장선생이 "선생님이 관여한 5개 단체 이름으로 시비를 세워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도 허락해주시고 한 분만 제막식에 참석했으면 좋겠습니다."고 하시기에 " 노광훈 선생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해서 우리는 조용히 있습니다. 진짜 가면 안됩니까?" 말하니 "잘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27일 제막식에도 선생님만 오면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002년 문화의 날 은관문화훈장을 받으신 이오덕 선생님(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과 필자(뒷줄 맨 오른쪽)     ©이대로
수고하시라고 말하고 저 혼자 가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오랜 교직 동료이시고 우리말 사랑 동지이신 하현철 선생님께서 "방금 뉴스에서 이오덕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있었오. 알고 있소? 한달 전에 내가 전화하니 몸이 좋지 않다며 먼저 가게 되면 서로 알리자고 했는데..."라시며 다급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 예, 오늘 아침에 들었는데 알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오덕 선생님의 시비를 세워드리기로 했는데 한사람만 오라고 해서 고민하고 있는 참입니다."고 말씀드리니, 몸이 불편해 승용차라면 갈 수 있으니 데려가 달라셔서 모레 새벽에 하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가기로 했으니 만나보십시오.
선생님께서 생전에, 제가 허락 없이 제 고집대로 일을 했을 때 마땅치 않으셔도 "이 선생 잘했오"라고 격려하시듯 또 그렇게 말씀해주실 것으로 생각해서 한 일입니다. 올해 초에도 제가 찾아뵙지도 않고 전화로만 "전화로 인사 올려서 죄송합니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과 인터넷에서 한글쓰기 운동하느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건강하시죠? 선생님이 건강하셔야 제가 힘이 나고 큰소리칩니다."라고 하니 선생님은 "내가 몸이 불편하고 시골에 있어 돕지 못해 오히려 미안하오. 나는 괜찮으니 이 선생이나 무리하지 마시오. 이 선생이라도 잘 버텨야 이 겨레와 우리말이 죽지 않습니다"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5년 전 공병우 박사님이 미국에서 돌아와 한글문화원을 열고 그 건물에 한국글쓰기연구회와 전국국어운동대학생회 모임방을 내주셨을 때입니다. 그 때 공병우 박사님은 제가 선생님과 함께 우리말을 살리는 일을 하기 바라셨고 인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마음이 서로 통해 그 몇 년 뒤 우리말 살리는 모임을 함께 만들고 선생님을 대표로 모시기로 했는데 모임 이름을 투표로 결정할 때  선생님께서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한말글'이란 낯선 말이 든 '한말글사랑겨레모임'으로 정하게 되니 선생님은 그 모임에 참여치 않으셨습니다. 할 수없이 여러 사람들 뜻에 따라 그 모임 대표를 제가 맡게 되었지요. 선생님은 소신이 뚜렷했고 그것을 지키는 강직한 분이셨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점점 더 우리말이 비뚤어지고 죽어 가는 현실을 그냥 볼 수가 없어 김경희 지식산업사 사장님과 함께 다시 힘을 모아 우리말 살리는 일을 힘차게 해보자고 저를 불렀습니다. 선생님 참 뜻을 알기에 저는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을 해체하고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일을 하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더 힘들어지고 할 일이 더 많은데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따나셨습니다. 막상 하늘나라로 가신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합니다. 어려운 결정을 할 때마다 선생님께 의논했고 선생님은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우리 말글을 살리는 일을 훼방놓는 일을 해서 훼방꾼으로 뽑은 사람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내용증명을 보낼 때 그 일이 선생님 건강을 해칠까봐 "저는 우리말 살리는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가는 것을 영광으로 알겠다고 생각하고 더 세게 나가고 싶어도 선생님들  때문에 그 마음을 접곤 합니다."라고 말씀 드렸을 때 다른 어느 분보다도 "더 당당하고 세차게 밀고 나가자. 더 심한 말을 들어도 시원치 않은 자들이 누구보고 명예 훼손했다고 협박한단 말이냐?"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선생님은 공병우 박사님처럼 대단한 학벌은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참된 배달겨레요, 애국자요, 교육자이시고 인격자이시며 깨끗한 선비이십니다. 이 세상에 큰 지위나 명성을 가진 어떤 학자나 정치인들보다 우리 국민이 더 본받고 우러러 받들고 따라야 할 스승이십니다. 선생님 같은 분만 있으면 이 나라는 아무 걱정이 없고 이 겨레의 앞날은 매우 밝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정부에서 '문화의 날'에 선생님께 훈장을 준다고 하니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결국 평소 선생님의 공로를 아는 김성재 장관께서 설득해서 받으셨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제가 잘하신 일이라고 전화할 때 선생님은 "우리말이 엉망인데 내가 훈장을 받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훈장을 주지말고 우리말이나 살려주는 것이 더 고마운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관련기사] 이대로, 한글과 우리 마음속에 무덤을 만든 공병우 박사 7주기 추모글, 대자보(2002. 7. 3)

선생님은 평소에 많이 배우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더 우리말을 못살게 만들고 비뚤어지게 함을 안타까워하시며 이름 없는 국민과 농민, 아녀자들이 더 우리말을 잘 하고 바르게 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조심했고 선생님을 모시고 일하면서 많이 깨닫고 배웠습니다. 선생님은 가시더라도 선생님이 말글과 몸짓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주신 큰 뜻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선생님의 못 다 하신 뜻을 받들어 이어갈 것입니다.

큰아드님이신 이정우 선생께서 "가족끼리 장례를 치른 뒤 친지들에게 즐겁게 떠났다고 알리라."고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드님은 남다른 효자이십니다. 유언을 따르려는 제자와 동지들도 훌륭한 분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돌아가신 일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선생님을 따르고 함께 일하던 이들은 선생님께서 편안하게 가시도록 뜻을 받들어 조용히 있기로 했습니다. 지금 글 쓰는 순간에도 여기 저기서 여러분이 문상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데 참고 다음에 자리를 만들자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대신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슬픔을 달래고 선생님도 이 땅의 일은 모두 훌훌 털고 가볍게 따나시라고 평소처럼 제가 말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말과 겨레를 사랑하는 이름 없는 백성들의 스승이신 이오덕 선생님, 하늘나라에 가선 이 겨레말과 얼, 이 나라의 교육은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지내소서. 살아남은 우리가 걱정하고 바로잡겠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돌아가신 날   이대로 올림
      
      [이오덕 선생님 약력]
  • 1925년 경북 청송 출생.
  • 1944년 교원시험 합격으로 자격을 얻어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 1955년 동시 <진달래>를 <소년세계>에 발표.
  • 1971년 동아일보에 동화, 한국일보에 수필 당선.
  • 1976년 제2회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한길사가 제정한 제3회 '단재상' 수상.
  • 1986년 퇴직 후 아동문학과 글쓰기 교육,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을 하고 있음.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글쓰기연구회 게시판에 올렸다가 아무에게도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받들기 위해 지운 글]

이오덕 선생님, 하늘나라에선 걱정 없이 사세요.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가슴이 떨리고
마음이 울적합니다.
오늘 새벽에 선생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소식을
방금 들었습니다.
우리 말과, 우리 겨레와, 나라와 교육을
자나깨나 걱정하시고
우리 젊은이들에게 바른 삶과 길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
하늘나라로 편안히 가소서.
가셔선 걱정 없이 지내소서.
어제 저녁 천둥번개와 함께
큰비가 내려서
선생님 생각을 하고 걱정하며
여기에 찾아와 이상한 기분을 적은 일이 있는데
정말 그 비가 그친
오늘 새벽 선생님께서 눈을 감으셨다니
생전에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마음 상하게만 한 것 같아 다시 한번 죄송하고
부끄럽고 가슴아픕니다.
어제 천둥번개는
하늘이 선생님을 모셔가기 위한
큰 울림이었나 봅니다.
선생님께서 저 이대로에게
"너! 내가 없어도 똑바로 잘하라!"
크게 외치신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 그런 불안한 기분 속에
무너미로 찾아뵙진 못하고
여기에 와서 아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진짜 오늘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5년 전 공병우 박사님의 한글문화원에서 였습니다.
공박사님 연구실 옆에 선생님이 이끄시던 글쓰기연구회가 있었고
그 옆방에 제가 맡은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가 있었습니다.
공병우 박사님이 제게 선생님을 만날 자리를 만들어주셨고
저와 선생님이 함께 우리말 살리는 일을 하게 한 인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뒤 선생님은 제게 많을 것을 가르쳐 주셨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오늘까지 우리말을 걱정하고
살리기 위해 힘썼습니다.
선생님이 계셨기에 든든했고
큰소리도 쳤는데
이제 선생님이 안 계시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자꾸 선생님들이 하늘나라로 가시면
저는 어떻게 힘쓰고 큰소리 칩니까.
아무튼
이제 제 힘으로 어떻게 할 수없이
공병우 박사님처럼 선생님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셔서
공병우 박사님을 만나시면
지금도 변함없이 공박사님의 가르침과 뜻을 받들고
이어서 열심히 뛰고 있다고 말씀해주시고요
마찬가지 이오덕 선생님께서도
이대로가 님의 가르침과 뜻을 이어갈 것을
약속드리니 편안히 가소서.
나라임자 이대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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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8/26 [12: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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