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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의 'UCC 탄압'과 선거 담론의 실종
[기획취재] 공직선거법에 의한 표현자유 침해…담론 부재로 이어져
 
이석주   기사입력  2008/04/02 [16:47]
한국인터넷정보센터와 과거의 정보통신부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인터넷 인구는 2007년을 기준으로 3천 만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가히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일상생활에 없어선 안될 '생활수단'이 돼버린 것이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수단. 아니, 그 이상을 넘어선 인터넷은 일찌감치 우리 생활에 밀접한 정보공유의 수단으로 자리잡아 왔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사람들은 이런 인터넷을 정보획득의 수단으로, 때로는 유흥을 즐기는 매개체로서 세상과의 소통을 즐긴다. 나아가 정치·사회적 현안을 놓고 모니터 뒷편에 있는 불특정 다수와 익명을 전제로 열띤 공론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인터넷의 최대 장점은 이른바 쌍방향 의사소통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만, 최소한 지난해 대선과 일주일 여 앞으로 다가온 18대 총선에 한해선 이러한 긍정적 차원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 
 
▲지난 대선을 겪으면서 공직선거법에 대한 부작용은 선거담론 실종과 표현의 자유 탄압으로 귀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 선거실명제 폐지 공동대책위원회

잠시 시계바늘을 5년 전으로 돌려보자. '인터넷 선거'로 대표되는 지난 2002년 16대 대선. 소위 '노사모'로 불렸던 네티즌들의 정치참여는 당시 선거문화의 전환점을 가져다 줬다.
 
인터넷을 통한 적극적 의사표현이 유권자들과 각 후보들에게 있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각인시켜 줬던 것이다. 인터넷과 TV토론을 통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정당과 후보 중심의 과거 선거 방식을 확기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2002년 대선 vs 2007년 대선…인터넷 선거 담론 어디로 갔나?
 
5년이 지난 2007년 대선. 그동안의 기간 만큼, 기술적 측면에서의 인터넷도 발전의 발전을 거듭했을 터. 논리대로라면 기술 발달에 따른 활발한 의사 표현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이상하리 만큼 인터넷 선거판에서 일반 네티즌들을 찾기 어려운 기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인터넷 기술 발전과 더불어, 여러 논객들의 '입김'이 커지면서 UCC를 활용한 의사 표현과 적극적 정치참여, 정책 중심의 담론 형성 등이 예견됐으나, 이런 상황은 5년전과 비교했을때 터무니 없이 줄어들었던 것.
 
결론부터 말해 '미디어 선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던 배경에는 시민사회단체와 인터넷 언론, 일반 네티즌들 사이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불러온 현행 공직선거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공직선거법 93조는 UCC제작 및 배포와 관련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선관위는 지난해 6월 이른바 '선거UCC 운용지침'에 의거, 특정정당이나 후보에 유불리적 의도를 갖고 낙천.낙선 운동을 하는 동영상과 게시물들을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고 삭제조치했다.
 
공직선거법 93조는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가 특정 정당과 후보를 비방, 지지하는 행위를 모두 금지하고 있다. 행위의 범주에 대해서도 광고, 사진, 인쇄물, 문서 등 거의 모든 매스 미디어가 포함돼 있다. 기간은 선거일 전 180일 부터 선거 전날 까지로 규정했다.
 
이같은 법을 근거로 지난 대선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인터넷 매체들과 인권.언론시민사회단체의 극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UCC등 인터넷 상의 유권자 발언을 사전 선거운동으로 간주, 온라인 상에 올라있는 동영상들을 단속했다.
 
당연히 수많은 유권자들이 후보 평가와 검증 과정에 대해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규제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마땅히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선을 앞두고 시행된 공직선거법 적용은 선거담론의 실종과 대선 후보 측의 일방적 주장으로 인한 견제 기능 축소, 나아가 선거 운동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폐해로 연결되기도 했다.
 
▲지난 대선 기간 중 선관위는 UCC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이는 실명제 공대위가 밝힌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 대자보

이는 당시 공직선거법 개정을 촉구하고 인터넷실명제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조사한 통계자료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5년 전 '활발했던' 온라인 정치참여의 실종이 수치상으로도 여실히 드러나고 만 것이다.
 
인권·언론시민단체와 인터넷 언론사들로 구성된 '인터넷 선거 실명제 폐지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선 운동 기간 이전인 2007년 10월30일을 기준으로 중앙선관위가 인터넷 상의 글에 대해 삭제를 요청한 건수는 5만 5842건에 달했다.
 
이 중 대선관련 글이나 동영상 UCC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른 경우는 전체 선거법 위반 사건(827건)의 68%에 해당하는 561건으로, 개별 인원으로만 따져봐도 618명에 이르렀다.
 
결론적으로 이들 모두 현행 공직선거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것이다. 명백한 사전검열이자,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인터넷의 순기능이 선관위의 자의적 유권해석에 의해 역기능으로 '재탄생'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 UCC규제의 대표적 사례
 
▲연세대 정외과 김연수 학생.     © 대자보
선관위의 UCC규제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해 9월,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이른바 '마사지 발언'이 담긴 UCC를 제작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연수 씨(24)의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김연수 씨는 이명박 후보의 마사지 발언을 중심으로 '대통령 이명박, 괜찮은가?'라는 제목의 UCC를 자체 제작 후 각종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게재했다. 대선 최대 쟁점이었던 BBK의혹 등도 포함됐던 것으로 총 게재기간은 2007년 9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를 놓고 "이 후보를 비방할 목적으로 동영상을 제작했다"며 김 씨를 중앙선관위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한나라당이 고발의 이유로 내놓은 근거는 '선거법 제93조'를 위반 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23부는 지난1일 김 씨에게 벌금 80만 원을 선고했다. 공직선거법 93조1항을 어겼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현재 항소를 고심 중인 김 씨 측은 공직선거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와 한나라당이 이른바 '팩트(fact)'를 근거로 건전한 담론 형성에 애썼던 일반 네티즌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규제한 것이다. 국가기관의 규제가 정책 선거 실종이라는 '불행'으로 되돌아 왔다고 볼 수 있다.
 
유권자들과 정당 후보들의 UCC…주객이 전도되는 폐해로 귀결
 
문제는 선관위의 모호한 법 적용에 따른 폐해가 개개인의 법적 징계 차원이 아닌, 선거담론의 실종과 대선 후보 측의 일방적 홍보, 이에 따른 견제 기능 축소 등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명제 폐지 공대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1일을 기준으로 UCC전문 사이트인 판도라 TV에 올라있는 선거관련 동영상은 총 2500여개 였다. 하지만 이 중 일반 네티즌이 제작한 동영상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800여개 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1700여개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예상했겠지만 모두 대선 후보 캠프 측에서 제작한 UCC였다. 이들이 자신들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동영상을 제작했을까. 물론 거의 대부분이 '홍보성'이었다. 이른바 CCC(Camp Created Contents)가 넘쳐났던 것이다.
 
당시 371개의 후보 CCC를 보유하고 있던 동영상 전문 사이트 '엠군'(www.mgoon.com)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일반 네티즌의 선거관련 UCC는 거의 다 선관위 지시에 따라 삭제됐기 때문에 개수가 극히 미미하다"고 전했다.
 
그나마 8백 여개의 네티즌 UCC조차 대선 후보자들의 의혹과 잘못된 점을 꼬집는 내용이 아닌, 각 후보와 정당들에게 단순한 질문을 던지는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 시민사회단체의 분석이기도 했다. 
 
결국 현행 공직선거법이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정치 참여 의사를 철저히 봉쇄하므로써,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다수의 유권자들이 인터넷 공간과 UCC제작 등을 통해 소수의 후보들에 대한 정책을 검증하고 이에 따른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만, 그 반대로 각 정당 후보들의 게시물이 네티즌들의 그 것을 앞지르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선거법 개정 17대 국회에서 처리? 이미 '아웃'…시민단체 반대투쟁 더욱 높아져
 
그렇다면, 이기간 동안 시민사회단체와 인터넷 언론사들의 대응은 어떠했을까. 지난해 6월 선관위의 UCC운용 방침 발표 이후 부터 대선 직전 까지, 공직선거법 93조 뿐 아니라 인터넷 실명제 등과 연관시키며 총선을 앞둔 현재까지도 이들의 '반대 투쟁'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단체와 인터넷 언론사들은 그간 공동대책위원회 구성과 각종 기자회견 및 토론회 개최, 중앙선관위 항의방문과 관계자 면담, 위헌 소송, 홈페이지 개설에 따른 여론 확대 노력등 공직선거법에 대한 반대 입장과 개정 추진을 꾸준히 해왔다.
 
앞서 문화연대, 진보넷, 참여연대, 함께하는시민행동, 한국청년연합회, 한국YMCA전국연맹 등 6개 시민사회단체와 192명의 네티즌들은 지난해 9월 "공직선거법 93조가 의사표현의 자유를 위배한 위헌성을 갖고 있다"며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한 바 있다.
 
▲ 공대위 소속 언론사 및 시민단체는 수차례의 기자회견과 토론회 등을 통해 공직선거법 93조에 대한 개정 촉구와 인터넷실명제 방침을 강하게 규탄해 왔다.     ©대자보

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물'은 현재까지도 미미한 상황이다. 선관위 측에서 "우리도 문제점은 인정하고 있다. 향후 개정을 위해 노력해 보겠다"는 수준의 답변만 들었을 정도.
 
이밖에 실명제 등에 반대하는 일부 인터넷 언론사는 선거 운동 기간 중 게시판 폐쇄 등의 방법으로 현행 공직선거법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언론사 중 한 곳은 인터넷 실명제 폐지와 공직선거법 개정을 강하게 촉구했지만, 선관위는 선거기간 중 실명인증 절차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1천 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해 놓은 상황이다. 국가기관의 의사표현 '재갈물리기'가 어디까지 왔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거기간 중 게시물 규제와 인터넷 실명제가 가져올 폐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아니, 국민들의 공론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 뿐, 그 문제점들은 이미 선거담론의 실종이라는 폐해로 다가온지 오래다.
 
선관위는 2002년 대선 이후인 지난2003년 "인터넷 상에 지지·반대의 글을 언제나 게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며 유권자 정치참여 보장을 핵심으로 한 선거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이 17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선이라는 거대한 폭풍을 겪고 총선의 후폭풍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공직선거법은 하루빨리 개정돼야 마땅하다. 선관위와 정치권은 유권자들의 '침묵'이 가져다줄 폐해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 하루빨리 자각해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 '인터넷 실명제와 선거담론 실종의 관계' (2007년 12월11일 대선보도 연속토론회 발제)
- 온라인 선거 캠페인과 언론보도 (2007년 12월 한국언론재단)



* 본 기획취재는 언론재단의 지원하에 이뤄졌습니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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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4/02 [16: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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