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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생존권이 '제밥그릇챙기기'인가
최용식씨의 '노동계의 전투적 행태에 대해' 비판한다
 
홍성관   기사입력  2003/08/24 [23:11]

▲최용식 님이 21세기경제학에 기고한 주5일 근무제와 노동계의 전투적 행태에 대해   ©21세기경제학홈페이지
'21세기경제학연구소(http://www.taeri.org/ ) ' 최용식소장의 글 '주5일 근무제와 노동계의 전투적 행태에 대해'를 보았다. 그런데 주5일제 개정안에 대해 여러 차례 기사를 썼던 본 기자로서는 최용식소장(이하 존칭생략, 최소장으로 약칭함)이 이번 사안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관련기사] 최용식, 주5일 근무제, 노동계는 전투를 하나(시대소리)

이번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를 통과함에 따라 사실상 법제화를 눈앞에 둠으로써 노동계의 반발은 응당 거세질 수밖에 없게 됐다. 최소장은 이 반발이 노동계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고, 명분이 약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명분이라는 것이 대체 뭔가. 국어사전에 보면 명분은 '도덕상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된 행위의 한계'라고 나와 있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것은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노조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정계의 행태에 정당하게 맞서는 것이지, 도덕적인 당위를 어기고 순전히 제 이익을 쫓는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명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현대자동차의 임단협 체결시기에 수구언론 '조중동'이 노조를 국가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몰아세웠던 논리와 하등 다를 바 없다. 만약 최소장의 인지도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이 글은 조선일보의 탑에 실려 노조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반세기 군사 독재 정권들은 경제성장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민중들이 가진 민주화의 열망을 짓밟았다. 오늘날에는 자본가 세력들이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노동자들을 비인간적 현장으로 내몰고 있다. 최소장이 말한 명분이란 설마 이런 것들을 말하는가.

아니라면 왜 노조의 반발이 명분이 없다고 말했을까. 이는 주5일 근무제 실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된 배경과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이 내포하는 세부적인 문제점들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다. 노동자가 변하기를 기대하기 전에 경영주부터 먼저 변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분이라면 노동자 집단에 대해 설마 악의가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주 40시간 노동은 세계적인 대세다. 그것은 2,400시간 이상에 다다르는 과중한 노동시간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초석이며, 이런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운동이 시작된 이래 줄곧 외쳐오던 구호 중에 하나다. 한국은 OECD가입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가진 국가이며, 노동강도 또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사실 노동시간 단축은 협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노동자들의 복지적 문제다.

▲8월18일 국회앞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근로기준법 개악저지 양대노총 총력투쟁 결의대회 모습   
©민주노총홈페이지
여기에 정부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5일제'를 가만히 내버려둘 것이지 왜 추진했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이 반문이 설사 정부의 애초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꺼낸 것이라 쳐도 너무나 위험한 발상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에 대해 왜 군부정권은 '민주적 선거'하겠다고 선언해서 사회적 혼란만 낳았느냐는 수구세력들의 지껄임과 뭐가 다른가. 이는 노무현 정부가 갖는 역사적 의의 중에 하나인 친노동자적 성향을 후퇴시키다 못해, 아예 군부 독재정권의 연장선에 두는 꼴이다.
 
노동계가 이번 정부의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굳이 축약하자면, 여성·중세·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고 이로 말미암아 노동계의 연대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우선 환노위에서 통과시킨 법안은 기존의 정부안보다 오히려 시기를 1년씩 늦추고 있어서 20명미만의 사업장은 2011년에나 주5일제가 가능하게 됐다. 회의의 절차가 마음에 안들어 퇴장해버린 민주당 박인상, 한나라당 김락기 의원의 반발처럼 이는 노동계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해버린 처사다.

또 이번 개정안은 생리휴가를 유급에서 무급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여성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졸지에 유명무실한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더구나 월차를 없애고, 연차일수도 노동계의 주장과 판이하게 줄임으로써 당초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려는 의도에서 상당부분 벗어나 버렸다. 이뿐 아니라, 기존의 단협에 대해 소급 적용함으로써 이미 체결한 현대자동차나 금속노조의 성과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릴 소지도 다분하다.

이처럼 노동계가 정부안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단순히 유리한 조건을 쟁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정부안의 통과는 사실상 일부 노동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어 노동자들의 힘을 분산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자본가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노동쟁의를 통한 혜택이 노조 소수에만 국한된다는 말도 어폐가 있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분단 이후 '반공'이 국시였던 지난 반세기동안 '노동조합'이라는 단체를 금기시해 온 레드 콤플렉스가 노동자 다수에게 체화돼 있었기 때문이며,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문화들이 노동자를 노동자로만 두지 않고, 전라도 사나이, 경상도 사나이로 갈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일보와 같은 수구언론들이 노조를 매도하는데 앞장서왔기 때문이다.

정말 최소장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소위 '노동귀족'을 위해서 일하는 단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의 조직의 원천이 주로 대기업 노조에서 나오는 탓에 그들의 영향이 크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노조의 주장은 최대 다수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이번 정부안에 대한 반대취지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12%의 노동자들이 88%의 노동자들보다 임금이나 근무시간 등의 노동조건에 있어 유리하기 때문에 양보하면 안되겠느냐는 말은 실로 실망을 금치 못할 부분이다.
만약 양대노총이 소위 '노동귀족'의 조직이라면 정부안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에  굳이 반대하고 나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안을 반대하는 건 '임금보전'의 사안과 같이 대기업 노조에게 불리하기보다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조항들 때문이다. 언급했듯이 이번 개정안이 여성노동자와 중소영세 노동자,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가 노동시간을 줄여 윤택한 생활을 꾸리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의 책임을 전적으로 12% 노조원들에게 돌리려는 최소장이야말로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 그렇게 중요하면서, 협상테이블에서 고자세를 취하며 국회의원들이 알아서 통과시켜주기만을 기다린 재계나, 노사협상이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재계의 입김으로 강행해버린 정계에 대한 비판은 일언반구도 없이, 어째서 노동계만을 '제 밥그릇 차지하기'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난하는 것일까.
 
최소장은 글의 뒷부분까지도 잘못된 인용을 하고 있다. 주 5일제를 반대하고 나섰던 재계가 다시 정부안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선회한 까닭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미시경제학에서 다루는 내용이지만, 일정조건 하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성의 향상을 촉진한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제도에 정부가 나서서 임금도 깎아주겠다니, 더구나 노동시간 단축이 세계적인 대세인지라 거스를 입장도 아닌 상황에서 재계가 구태여 반발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주 42시간 근무제+격주 휴무제를 실시해왔던 현대자동차 노조원의 "처음에는 시간 외 수당을 타는 재미로 시간외 노동을 선택했지만, 점차 여가를 즐기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말처럼 주 5일 근무제의 정착은 새로운 노동문화를 창출하게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의 정부안대로 통과시키고, 돈 부족하면 시간외에도 일하라는 것은 주 5일 근무제의 도입 취지를 무상케 하는 것이다. 정부는 누구보다도 재계의 입장을 가장 잘 들어주고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계에 가까워져 가는 노무현 정부를 경계해도 시원찮을 판에 더 가까워지라고 부축이다니, 이 무슨 어불성설인가. 최소장은 노무현 정권 출범 6개월만에 78명의 노동자들을 구속시켰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그리고 재계의 입장을 고려해줌으로써 국민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에서 혹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본다.
 
양대노총이 벌이고 있는 투쟁을 기만으로 보고 이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하는 행세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기가 막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싸움이 그들만의 리그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모른단 말인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투적이지 않았던 역사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으며, 생존권을 걸고 싸우는 그들의 싸움은 필연 전투적이지 않을 수 없다.

노동운동을 단순히 자신들의 임금인상을 위한 집단이기주의의 한 줄기로 보고있는 최소장의 논리는 그가 진보, 개혁적인 성향의 글을 써왔다는 전례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기에 더욱 실망스럽다. 아니면 그 진보와 개혁이 정치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본다.

최소장의 이번 '주5일 근무제, 노동계는 전투를 하나'는 정부의 주5일제 개정안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 물론 어떤 사상도 자유로워야 하고, 경제학이란 학문 자체가 매몰되다보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기에 일정부분 이해는 되지만, 그의 글을 아끼던 한 사람으로서 이번 글이 진보·개혁적인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최소장의 글은 스스로도 끔찍이 싫어하는 조중동의 '노조 때리기'와 상통하며, 그로 인해 본 기자는 앞으로 최소장이 노동자들과 한 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이 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면서 그 아쉬움은 더욱 컸기에 감히 이런 글을 쓴다. 최소장이 우려하던 것이 사회혼란이라면 알베르 카뮈의 말을 전해드리며 부디 너그러운 용서를 구하고 싶다.

"우리는 사회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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