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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21세기판 반민특위 해체
[논단] 새정부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 폐지검토 말고 청산에 적극 나서야
 
방학진   기사입력  2008/01/14 [18:49]
1월 4일 현 정부의 행정자치부는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행한 업무 보고에서 “국정과제 관련 위원회는 12개, 과거사 관련 위원회 14개 등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폐지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참으로 비겁하고 어처구니없는 우리나라 관료들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출범을 기획·조정한 주무부서인 행자부가 현 정부의 임기가 엄연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이들 위원회 폐지를 보고했다면, 그동안 행자부 관료들은 과거사 청산을 내심 반대했으나 권력자의 눈치를 보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맡아 왔다는 것이 아닌가. 내심 못마땅한 과거사 청산을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그 어떤 행자부 관료 누구하나 소신 있게 사표를 던진 이가 없었다.

비단 행자부 뿐 아니다. 국방부 역시 업무보고에서 2012년 4월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도 연기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고, 경제부처 역시 재벌들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앞 다퉈 풀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들 관료들에게 왜 그렇게 비겁했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 분명하다. “공무원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죠. 목구멍이 포도청 아닙니까.”

그렇다면 대한민국 관료들은 영혼도 양심도 없는 허수아비들이란 말인가. 일제에 협력한 수많은 친일파와 그 후세들의 변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는 친일파의 본질적 속성을 크게 네 가지 즉 ‘사대주의’, ‘기회주의’, ‘출세주의’, ‘대세 추종주의’라고 생각한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행자부 관료들과 기타 부처의 관료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친일파들의 본질적 속성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 고위 관료들의 역사의식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막상 그 현실을 목도하니, 분기를 참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의 역사인식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야심차게 추진할 사업이 바로 ‘건국 60주년’기념사업이다. 아직은 조선일보 등 수구 언론이 앞장서는 모양새지만 대통령 취임 후 정부가 주도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비록 친일파를 앞장세웠을망정 이들로 하여금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하고 나라를 건국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는 논리 전개 속에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조국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를 내세워 역사 쓰기를 하려는 의도이다. 이미 1994년 조선일보가 행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시회의 재탕인 셈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을 기념해 8월 15일을 광복절과 함께 건국절로 정하자고 한다. 이들의 속내는 차마 광복절을 없애자고 하지는 못해도 8월 15일 임시정부보다는 ‘이승만 만세’를 부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시청 광장에서 태극기와 동시에 흔들던 성조기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부 공식 행사장에서도 흔들고 싶은 것일까.

419혁명 직후 민중들의 손에 의해 철거되고 있는 이승만 동상. 이명박 당선자는 21세기판 반민특위 해체 사건을 저지를 것인가?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대한민국이 60년이라는 짧은 민주공화정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수많은 국민들은 억울한 희생을 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자기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거나 관련자들을 단죄하기를 항상 주저해 왔다.

국가는 기업과 달리 영속성을 기본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 구성원들 사이의 정체성 확립 즉, 사회통합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와 건국과정에서 나타난 역사적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결과, 오랜 기간 민족적 정체성을 이어왔음에도, 역사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차는 국민들 사이에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단순히 다양한 의견들의 존재를 넘어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심각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 들어 봇물 터지듯 이뤄진 과거청산의 움직임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어느 경우든 자기반성은 갈등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차피 과거청산이 늦었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신중히 이뤄져야 하며 이것은 정파를 초월해서 꾸준히 진행해야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인수위원회와 조선일보의 모습에서 보듯, 이명박 정부는 분명 과거사 관련 정부위원회 뿐 아니라 민간의 활동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에 대해 한나라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당과 관련 시민단체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새 정부의 뜻대로 일이 쉽게 진행되기도 어려울 것이지만 바로 이즈음에서 현재까지 이뤄졌던 과거사 관련 정부 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단편적일망정 반성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새 정부에서도 과거사 관련 민관 단체 활동이 유지·발전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첫째, 정부 위원회 중심으로 입법청산에 치우치다 보니 ‘정략적’이라는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측면이 크다. 또한 여야 타협 과정에서 개별 위원회의 취지가 훼손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정부 위원회 차원의 진상규명과 더불어 역사교육과 시민교육도 동시에 이뤄졌다면 더욱 큰 국민적 지지 속에서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관련 위원회가 대부분 한시기구이다 보니 차분하게 업무를 추진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동북아역사재단처럼 상설적인 연구·정책·실천 단체를 향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셋째, 관련 위원회의 예산·기획 등 주요 부분을 각 부처에서 파견된 관료들이 장악하다보니 효율·기동·창의·민간부문과의 유기적인 협조가 어려웠고 심지어 관료들의 보신주의적 경향도 있었다.

넷째,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직속 기구이다 보니 정부안에서조차 다른 부처와의 공감대 형성이 미흡했다.

다섯째, 행정부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과거청산의 주요 대상이자 주체인 사법부와 입법부는 자신들의 과거청산에는 소홀했다.

끝으로, 정부에서 가장 많은 재정적 지원을 받는 거대 관변단체들이 오히려 정부가 추진하는 과거청산에 반대하면서 정부 스스로 정치적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참여정부 들어 만들어진 주요 과거사 관련 위원회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및명예회복위원회,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등이다.

우리 근현대사를 감안해 볼 때, 경중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중요한 위원회들이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과거에 매몰되지 말자며 어깃장을 놓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번에도 또 미봉으로 그친다면 미래에는 더 큰 눈덩이가 되어 우리의 미래를 가로막을 것이 분명하다.

스페인의 경우 프랑코 체제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 아직도 유럽 국가 중 사회통합과 국가 발전이 더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통일시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 이 같은 과거사 정리는 하루도 미룰 수 없다. 과거사 정리를 통해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높여내고 사회통합을 앞당길 때만이, 급변하는 동북아질서 속에서 능동적이고 혼란 없이 통일시대를 열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새 정부에서 이러한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일방적으로 폐지 또는 축소한다면 이는 21세기판 반민특위 해체 사건이면서, 언젠가 후세들이 청산해야 할 또 하나의 과거사로 기록될 것이다. 새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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