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총련불법화는 '국제적 망신', 누구의 말?
노대통령은 미국과 조중동의 눈치를 그만 보시라
 
양문석   기사입력  2003/08/14 [11:00]

망월동 묘지에서 대통령의 앞길을 막았다며 한총련 합법화를 연계시켜 미루더니, 이번에는  장갑차 점거시위 때문에 한총련 합법화 반대를 운운하고 있다. 치졸치사한 정부방침이다. 한총련 합법화가 학생들에게 줘도 되고 안줘도 되는 '케잌'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말바꾸는 대통령, 침묵하는 민정수석

▲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홈페이지
노무현 대통령은 시대의 변화를 거슬러 오르고, 문재인 민정수석은 국제적 망신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인가 보다.  

…노 대통령은 지난 3월17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와 이어진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한총련을 언제까지 불법단체로 간주해 수배할 것인지 답답하다"고 심경을 밝힌 뒤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으므로 검찰도 변화를 수용해 진지하게 검토해달라"고 지시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한총련 장기수배자 가족대표에게 "단과대 학생회장 이상이면 자동으로 한총련 대의원이 되는데 그것만으로 수배대상이 되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라며 "특사 즈음에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盧대통령 '한총련 합법화' 방안 검토지시, 한국일보3월17일 인터넷판)

이랬던 이들이 미국을 향해 배꼽을 땅에 붙였다. 미국의 '심기'만 신경쓰이고 한반도의 전쟁위기와 국민들의 자존심 그리고 어른다운 처신 등은 그들의 눈속에 없다. 그래서인지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지난 12일 "노대통령의 언급은 수배 해제와 관련된 것이었으며 합법화를 말한 적은 없다"고 변명했다. 문수석의 '국제적 망신' 운운은 왜 변명하지 않는가. 언론의  오보에 가장 적극적인 '청와대브리핑'의 당시 내용을 봐도, 대통령의 '한총련 합법화' 발언은 '오보'며 진심은 '수배해제'라고 정정한 기사는 왜 없는가. 모든 언론들이 '한총련 합법화'라고 보도했는데. 또한 노대통령의 측근 중에 측근이라고 불리는 민주당 천정배 의원의 주장을 KBS 3월18일 뉴스는 이렇게 전하고 있는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등의 냉전과 권위주의적 잔재가 남아 있는 반인권적인 법은 사라져야 한다면서 한총련의 이적 규정 철폐와 관련자 수배 해제에 대한 장관의 견해를 물었습니다.…

수구언론 눈치보기에 급급한 청와대와 386정치인

말로는 언론과 타협은 없다며 수구언론을 비난해 온 노대통령의 주장은 허언인 모양이다. 이번 한총련 사건만 봐도 짜고치듯 수구언론의 목소리는 노대통령의 입을 통해 확인되고,   수구언론은 대통령의 발언을 한총련을 잡는 사냥총으로 이용한다.

또 수구언론들이 설정한 의제인 '한총련 사냥 전국민 동원령'에 자발적으로 응하는 곳은 청와대 뿐만 아니다. 한총련을 만들고 키웠던 소위 386정치인들마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구언론이 놓은 덫에 빠져 들었다.

▲민주당 임종석 의원     ©임종석의원홈페이지
민주당 임종석의원은 "100만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일사분란하게 한총련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므로 모든 대학생들의 시위를 한총련 평가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라며 이번 시위의 의미를 한사코 부정한다. 나아가 충고랍시고, "주장하는 내용이 진보적일수록 방식은 대중적이어야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며 이번 방식은 "국민 다수의 동의와 지지 또한 얻을 수 없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한총련이 말하려 했던 '미국의 대북 전쟁위협 결사 반대'나 '북미불가침조약 체결' 등의 반전과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일절 침묵이다. 수구언론의 수법이다. 알맹이는 침묵하고 껍데기만 들고 호들갑인 게 어쩜 그렇게도 닮았나. 또 80년대의 학생운동이 국민 다수의 동의와 지지를 받았던 적은 거의 없다. 대중적 설득력도 별로였다. 언론이 동의하거나 선전해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군부독재를 폭로하면 발본색원의 대상이었고, 화염병을 던지면 폭도였을 뿐이었다.

80년대 삼민투 위원장 출신인 민주당 지구당위원장을 하는 허인회씨는 "학생운동 시절 나도 시설점거 농성을 해봤지만 이번 사태는 사안이 다르다"며 "훈련 중인 군사시설을 점거한 것은 방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허씨는 노골적으로 한총련의 반전평화운동을 뭉개고 있다.

학생들이 징역살이 각오하고 전한 메시지에 대해 그 어떤 언급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학생들의 주장마저 부정하는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 386정치인들이 한 것은 로맨스고 한총련이 하면 스캔들이란 말인가. 

수구언론들이 틈만 나면 학생운동을 매도하려는 퍼런 서슬에 이들 정치인들은 맥없이 굴종하며 눈치보기에 급급한 나머지, 학생들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며 시위방법을 두고 충고라는 미명하에 논점을 흐리며 수구언론의 의제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희생양이 되야 했던 이유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 모습    ©민중의소리 김철수
백번 양보해서 학생들의 시위가 과격했고 방법이 잘못됐다고 치자. 하지만 왜 이들은 실전훈련을 진행중인 부대안으로 달려들었을까는 짚고 넘어가자.

스트라이크부대. 7월28일 미8군 사령부 공보실장 스티븐 보일런이 국방일보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유사시 한국에서 신속히 전개하기 위한 '한국지형 익히기'에 훈련의 목적을 두고 우리 땅에서 전쟁연습하는 미국의 신속기동여단.

이들이 북미갈등을 증폭시켜 또 다시 한반도를 전장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전쟁연습을 하는데,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언론들은 뭘했나. 침묵. 그외 한 일이라곤 한총련 때려잡기뿐이다. 학생들이 장갑차를 점거하기 전에, 미국의 신속기동여단 스트라이크부대와 이들의 훈련목적을 알고 있었던 국민들이 몇이나 되었던가. 이들이 침묵했기 때문에 국민 대다수는 전쟁의 올가미가 머리 위에까지 다가왔음에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흔한 화염병이나 각목 하나 없이 태극기만 들고 총탄의 위험을 무릅쓰며 '반전평화'를 외치는 학생들. 그들을 향해 언론의 마녀사냥식 한총련 때려잡기는 적반하장이다. 386출신 정치인들은 수구언론의 의제에 빠져 후배들의 과격시위를 나무라기 전에 왜 이 중대한 문제를 외면하고 침묵했는지를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청와대는 말바꾸기와 변명 그리고 수구언론에 부화뇌동하는 꼴불견을 멈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총련 합법화는 문재인 민정수석의 애초 주장대로 '국제적 망신'을 면피할 수 있는 당연한 조치이지 조건부로 수여하는 '케잌'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학박사로 전국언론노조 정책위원입니다.
* 본문은 한국 NGO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08/14 [11:0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