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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훈련, 이 지독한 쇼비니스트들!
[비나리의 초록공명] 육상선수들의 실미도 훈련은 부국강병 이데올로기
 
우석훈   기사입력  2007/12/03 [00:54]
1.
스포츠계에 쇼비니스트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동계올림픽 광풍이 불 때에도, 이걸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워낙 스포츠계의 주류에 강성 쇼비니스트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어서, 올림픽 유치 건 같은 논쟁이 붙으면, 날 보러 자꾸 나서라고 한다... 사람 곤란하게.
 
작년에 동계올림픽 토론회 때에는, 정말 살벌했다. 나도 미쳤지, 그 강원도의 돌풍 앞에 혼자 설 마음을 먹다니... 반대 의견이 2~3%에서 출발했는데, 토론회 이후에 거의 절반 수준까지 의견의 균형이 왔다는 얘기를 살짝 건네 듣기는 했다.
 
부산에 한 번 와달라고... 그러나, 나도 목숨이 하나라서 부산 뒷골목 어딘가에서 봉변당하면서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부산이든, 제주도든, 지역 개발사안만 걸리면 평소에는 온순해 보였던 사람들이 일순간 강성 쇼비스트로 돌변하는 걸 볼 때면, 사실 좀 무섭다.
 
몇 년 전만 해도 생활체육이나, 엘리트 체육에 대한 얘기들이 좀 있었는데, 이 나라에 언제 그런 스포츠 사회학이나 생활체육에 대한 이론가들이 있었나 싶게, 체육 전문가들은 순식간에 맹렬 쇼비니스트 아니면 스포츠 경영학의 자칭 스포츠 산업론자로 돌변한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쇼비니즘 문제라고 하고, 지나친 상업성 문제라고 하기는 하는데, 이런 얘기들을 공식적으로 접하기는 쉽지 않다.
 
2.
엘리트 스포츠의 병폐에 대한 얘기는 종종 지적되기는 하는데, 이 중에 가장 흥미로운 얘기는, 학교 수업과 경기력 사이의 관계 혹은 장기적인 선수의 삶과 같은 얘기이다.
 
올해 대학 농구에서 농구 선수들을 수업에 들어가게 했는데, 하여간 지금까지는 공부도 하고 학교도 다녀서 좋다고 한다. 운동 선수와 수업, 이런 것을 크게 잡으면 인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아주 작게 잡으면, 경기력 향상 혹은 수명과 같은 변수를 잡을 수도 있다. 물론 거의 황당한 스포츠 쇼비니즘에 학벌사회, 이런 게 결합된 우리나라에서나 특수한 사회에서나 생기는 질문이기는 하다.
 
러시아가 보통 이렇게 황당하게 예능계 훈련을 시킨다고 알려져 있기는 한데, 가장 강도높다는 발레 학교에서도 3시간 이상 운동을 하지는 않고, 인문 교양 공부가 강도 높다는 것은 유명한 말이다.
 
피아노부터 시작해서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엘리트 훈련 방식이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종종 있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청소년 때는 물론 대학교 때에도, 수업에도 들어가고 시험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3.
대구에서 약간 무리해서 육상 선수권대회를 유치했다. 유치 과정에서도 쇼비니즘과 개발주의 장난 아니었는데, 아예 이제 노골적으로 기왕 배린 몸, 쇼비니즘으로 확 더들어간다.
 
2011년 대회용 선수를 선발해서, 실미도에 보내서 소위 실미도 훈련이라는 것을 시킨다.
 
▲'2011년 대구 육상 드림팀' 89명이 실미도에서 극기훈련이라는 미명하에 전근대적 육체훈련을 하고 잇다. 그런데 체육계 뿐만 아니라 언론도 이 훈련에 아무런 비판의식이 없다는 것이 더 놀랍다.     © 인터넷 이미지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강성 쇼비니즘으로 하여간 이제는 무조건 메달을 따야한다는데, 이 정도면 거의 청소년 선수에 대한 인권의 문제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4년 동안,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눈에 선하다. 이 정도면, 스포츠 행정을 담당하는 정부와 선수들의 부모가 공범이다.
 
돈이면 다가 아닌 것처럼, 스포츠의 성적이 인생의 다가 아니다. 이 황당한 쇼비니스트들 앞에 정상적인 학습권이나 인권, 이런 얘기가 귀에 들어올리가 없다.
 
4.
와 기분 좋다... 실미도의 황당한 훈련을 보며 박수치는 방송국과 기자들도, 부국강병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강성 쇼비니스트들일 뿐이다.
 
이 사건이 가장 안 좋은 점은 모든 의견이, 특히 체육계 내부의 의견이 "와, 잘한다!"라는 하나의 목소리로 통일된다는 점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전부 이 부끄러운 사건의 공범일 뿐이다.
 
2만불 소득을 자랑하고, OECD 평균을 정책 목표로 내세우는 나라에서, 육상선수들의 실미도 훈련 사건과 4년 간 계속될 집단 훈련은, 인권 실종의 현장이기도 하고, 얼마나 우리가 강성 스포츠 쇼비니즘의 시대를 살았는가,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이기도 하다.
 
너무 몸처럼 익숙해진 이 스포츠 쇼비니즘 속에서, 사람들은 가끔 상식적인 판단도 불가능한 지경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참고] 쇼비니즘이란 
 
▲나폴레옹을 너무 사랑했던 병사, 쇼뱅... 이 연극으로 인해 쇼비니즘이란 용어가 생겼다.     © 인터넷 이미지

니꼴라 쇼뱅이라는 한 병사가 있었다. 물론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은 아니다. 프랑스의 한 희곡에서 존재했던 이 병사는 나폴레옹을 대단히 사랑했다. 나폴레옹을 사랑한 것인가 아니면 ‘삼색’으로 상징되는 프랑스를 사랑한 것인가? 이 병사의 우스꽝스러운 나폴레옹에 관한 믿음은 이내 사람들의 머리 속에 깊숙이 박히는 인상을 만든 것 같다. 원작자와 연극의 내용에 관한 것들은 더 이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지만, 이 가상 속의 병사의 이름만큼은 홀로 떠돌며 주문처럼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쇼뱅이라는 병사의 이름을 딴 이 특별한 증상을 쇼비니즘이라고 부른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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