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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원한 갚고자 주민 집단 사살”
진실화해위, 고창 월림 사건 진실규명…김씨와 천씨 양측에 화해 권고
 
박철홍   기사입력  2007/11/28 [19:19]
한국전쟁기 경찰 전투대대 중대장이 자신의 일가족이 살해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부하를 동원해 상대방 성씨일가를 집단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일 열린 제59차 전원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인 ‘고창 월림 사건’에 대해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전북지역에서 발생한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은 이번이 처음.
 
▲죽림마을 모습 / 1951.5.14 촬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고창 월림 사건’은 1951년 5월 10일 전북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도곡리 시목동 옆 계곡과 봉암산 계곡에서, 공비 토벌의 임무를 갖고 있던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 제3중대(지휘관 김모씨)가 마을주민 89명을 집단 총살한 사건.

당시 공비토벌을 위해 이동 중에 가족의 피해 사실을 전해들은 김모씨는 자기가족 살해가담자와 부역행위자로 지목된 월림지역 주민 95명을 월림리에서 2㎞ 떨어진 도곡리 시목동 옆 계곡과 봉암산 계곡에서 보복 사살했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기에 인민군이 남한지역을 점령해 특정한 지역 단위의 권력 담당 주체가 뒤바뀌는 와중에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성씨 간의 갈등이 이념적 대립과 결합하여 상호 보복 살해의 양상으로 발전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진실화해위의 설명이다. 또 동시에 무장한 경찰이 공비 소탕 및 부역자 처벌이라는 공적인 임무를 내세워 비무장·비교전 상태의 민간인을 집단 살해하여 부당하게 공권력을 남용한 사건의 성격도 지닌다고 볼 수 있다는 것.

“성씨 간의 갈등·이념 대립이 보복 살해의 이유”

이번 조사결과 이 사건으로 인해 89명이 희생됐으며 부상자를 포함한 6명은 생존한 것으로 드러났다.

희생자 대부분은 천씨와 황씨 일가였다. 또 이중 일부는 고창지역을 점령했던 인민군에게 부역행위를 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희생자 중에는 여성과 청소년, 어린이 등이 다수 포함돼 있어 사실상 무차별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창 월림 사건’은 한국전쟁 중 국군과 남하한 인민군이 후퇴와 이동을 거듭하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으로 예전부터 존재하던 성씨 간의 갈등과 이념 대립이 보복 살해의 이유라는 것이 진실화해위원회의 설명.

또 이 사건은 객관적 차원에서 보면 무장한 군경이 공비 소탕, 부역자 처벌이라는 공적인 임무를 수행한다는 명분하에 비무장 민간인을 집단 살해한 것이며 지휘관 김모씨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불법적으로 공권력을 남용한 사실이 명백하다는 것.
 
김모씨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천씨 측이 자신의 가족들을 몰살시킨 것에 대한 원한 때문에 복수한 것”이라며 “자신이 주도적으로 사살을 지휘했다”고 인정했다.

또 그는 이 사실을 대대장에게 보고했으며 대대장 지침에 의해 그들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김모씨의 상급 지휘관인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 대대장, 전북경찰국장 등은 토비처벌이라는 명분 아래 89명의 마을주민이 불법 살해된 사실을 인지했을 개연성이 크지만, 사건 발생 후 3일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진실화해위는 전했다.
 
▲출동을 앞둔 제18전투대대의 모습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특히 진실화해위원회는 ‘고창 월림 사건’에 대해 무장한 경찰부대가 공비 소탕, 부역자 처벌이라는 공적인 임무수행을 내세워 비무장·비교전 상태의 민간인을 집단살해를 한 사건으로 김모씨가 사적 원한을 갚기 위해 공권력이 불법 남용됐다고 밝혔다.

국가가 김모씨를 사법처리하기는 했지만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는 것이 진실화해위의 설명이다.

이어 진실화해위는 “천씨 일가의 집단희생사건에 대해서는 진실이 규명됐지만, 이 사건의 발생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 좌익세력에 의한 김씨 일가 집단희생사건에 대해서도 추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고창 월림 사건’의 진실이 규명됨에 따라 피해자 명예회복 조치와 전시 민간인 보호를 위한 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김씨와 천씨 양측에 대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서로 사과하며 화해할 것을 권고했다.

또 한국전쟁으로 인해 이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이후 지금까지도 상처를 안고 살아온 김씨, 천씨 양측 일가 간에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희생자 위령사업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화해위는 “우리 모두는 과거사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는 역사적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함과 동시에 국가권력은 갈등의 평화적 해결능력을 신장시키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가해자인 김모씨는 사건 당시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 제3중대장으로서 고향인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에서 천씨 등 89명을 살해한 죄로 15년동안 수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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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1/28 [19: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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