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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북적대는 중국의 장개석 유적지
[논단] 이념과 사상의 굴레에서 해방된 중국에서 남북관계를 생각한다
 
이대로   기사입력  2007/11/20 [15:24]
지난 토요일에 중국 월수대 한국어과 동료교수들과 저장성 영파시에 있는 계구관광지에 다녀왔다. 계구 관광지는 전 대만 총통 장개석의 고향으로서 그가 근무하던 곳과 살던 집, 여름 별장, 장개석 어머니 무덤이 있는 곳이다. 나는 처음에 장개석 유적지를 구경하러 간다고 해서 공산당이 집권한 본토에서 어떻게 전 대만 총통 고향이 관광지가 될 수 있을까 좀 의문을 가지고 출발했다. 그런데 장개석이 고향 입구에서부터 장개석 어머니 무덤을 찾아가는 도로 표지판이 크게 붙어 있고, 장개석이 여름에 근무하던 별장에 가니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없을 정도로 관광차가 많이 와있었다.
 
▲장개석이 근무하던 별장에 많은 중국인들이 와서 구경하고 있다.     ©이대로

장개석이 여름에 근무하던 별장은 도봉산 높이의 경치가 좋은 산마루에 있었는데 그가 잠자던 침실, 근무하던 방, 응접실 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가 근무할 때와 항일 전쟁하던 사진, 그가 쓴 편지나 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전시실엔 많은 중국인들이 줄 서서 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이 참으로 신기했다. 우리나라에도 산정호수에 가면 김일성 여름 별장이었다는 곳이 입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아무 흔적이 없다. 전 이승만 대통령과 백범의 고향이 북한 황해도인데 거기에 무슨 표시라도 있을까 궁금했다. 만약에 남한에 북한 김일성의 고향이 있다면 어찌할까 의문이 들었다.
 
▲장개석 별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천 길 계곡 풍경이 아름답다.     ©이대로
 
그곳은 경치도 제법 좋았지만 풍경은 보이지 않고 자꾸 사상과 이념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내 나라의 현실이 머리를 무겁게 했다. 어제 북쪽의 수상이 서울에 왔다는데 보수단체 사람들이 인공기와 김정일 사진을 불태우고 시위하는 뉴스가 떠오르고, 북쪽 방송이 남쪽을 헐뜯던 기억이 떠올라 머리가 복잡했다. 그곳 산엔 소나무도 많고 단풍도 들고, 벼를 수확한 논에는 볏단이 쌓여 있으며,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풍경이 꼭 우리나라의 관광지에 온 기분이고 공기도 좋았지만 어쩐지 가슴이 답답했다.
 
장개석 어머니 무덤이 있는 곳에 가니 무덤 입구 표시도 크고, 장개석이 어릴 때 사진과 가족사진,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 있는 전시실도 있었다. 꼭 백범 선생이 중국에서 그 어머니와 찍은 사진과 비슷해서 백범이 장개석과 만나 함께 항일운동을 한 일이 떠올랐다. 안내원이 장개석 어머니가 장개석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설명까지 했다. 또 장개석에 관한 책과 기념품을 팔고 있었으며, 장개석 어머니 무덤은 초라했는데 풍수지리상 미륵부처의 배꼽에 해당되어 크게 하지 않는다고 했고, 그 앞에 많은 중국인들이 몰려있었다.

▲장개석 어머니 무덤 앞에 모인 중국인들     ©이대로
 
그 광경을 함께 보던 중국 연변 동포 교수도 "이제 중국은 이념과 주의 냉전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장개석이 중국 보물을 대만으로 다 가져간 것은 밉지만 8년 넘게 항일투쟁을 한 건 인정해야 한다."라고 되뇌었다. 그도 북한과 가까운 연변에서 남북이 밤낮 으르렁 대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라고 산 사람으로 충격을 받은 거 같았다. 나도 그 광경을 보면서 이제 우리도 싸우지 말고 사상과 이념에서 해방되어야 빨리 통일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은 대만과 통일이 되어도 국민은 아무 갈등이 없이 잘 어울려 살 거 같았다.
 
장개석이 살던 집이 있는 무릉 계구 입구에 있는 관광안내소의 한글 간판   ©이대로
 
장개석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산에서 내려와 장개석이 잘던 집이 있는 무릉에 오니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일하던 방과 응접실에 가구들이 그대로 있고, 그가 활동하던 사진과 쓰던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가 자던 침대에는 동전까지 던지며 소원을 비는 사람도 있었다. 장개석의 아내 송미령의 어릴 때와 미국 유학시절 사진과 그가 그린 그림, 장개석의 아들 장경국의 어릴 때 사진과 유학시절, 가족사진, 그의 손자이름까지 적힌 가족 계보, 편지나 붓글씨까지 모두 잘 보관되고 전시되어있었다.  
 
▲장개석과 장경국이 살던 집 앞에 냇물이 맑게 흐르고 아낙네가 빨래를 하고 있다.     ©이대로
 
수년 전에 타이완에 가보니 중정기념당을 크게 만들고 장개석을 국부라고 떠받들고 있었는데 타이완 원주민인 천수이볜이 총통이 된 지금은 장개석을 덜 섬긴다고 한다. 그런데 본토 사람들이 장개석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신기했다. 그리고 역사는 역사대로 보존하면서 적대시하는 정권의 우두머리까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중국의 상술과 큰마음이 남다르게 보였다. 중국은 땅도 넓고 인구도 많지만 마음도 크고 넓은 거 같다. 이런 통이 큰마음과 정신은 우리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관광지에 가면 장남감이나 기념품을 가지고 관광객을 쫓아다니며 많이 판다. 그런데 그곳에선 장개석에 관한 책을 들고 다니며 많이 판다. 그것도 모택동과 장개석 사진이 표지에 크게 박힌 책을 흔들며 사라고 하는 모습이 특별했다. 마침 내가 있는 곳이 노신과 주은래가 태어난 곳 소흥이다. 나는 장개석 고향을 구경하고 주은래가 살던 집을 가 보았다. 그곳은 경치가 좋은 관광지가 아니고 시내여서인지 사람이 없고 한산했다. 주은래 집 근처에 노신의 옛집이 있는데 그곳에는 제법 관광객이 많은 것과 비교가 되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중국은 우리처럼 사상과 이념에 꽁꽁 묶여있지 않은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흥 시내에 있는 주은래가 살았다는 집 앞에는 사진 찍는 글쓴이 밖에 없었다.     ©이대로
▲장개석이 쓰던 침대 위에 관광객이 던진 동전이 쌓이고 있다.     ©이대로

내가 지금 있는 저장성은 백범 김구 선생이 장개석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항일투쟁을 하던 곳이다.  백범은 일제가 물러간 뒤 사상과 이념이 갈려 따로 정권을 세우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막으려했던 분이다. 어쩌면 그 풍경에 백범의 눈길이 스쳤고, 그 길에 백범이 걸으면서 조국 광복을 걱정했을 거다. 나는 백범의 발길이 스친 중국 저장성 항주와 장개석 고향을 들러보면서 백범과 그 정신을 되새겨봤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빨리 조국 통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해봤다. 
 
▲지난해 12월에 노신의 옛집 앞에서 참말로 박득진 기자와 함께 찍은 사진     ©이대로

소련도 중국도 공산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독일도 월남도 오래전에 하나가 되었는데 어찌 우리는 지금도 썩어문드러진 사상과 이념에 묶여 있어야 하는지?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 중국 방송에 한국의 수능시험이 뉴스 첫 방송으로 나오고 남북의 총리가 만나 철도 개통을 논의했다는 게 주요뉴스로 자막이 계속 나오는 걸 보면서 잘못하면 우리 행동과 모습이 세계 웃음거리가 되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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