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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독립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권함
[책동네] 여성들의 독립을 다룬 8편의 에세이 모은 책 <나, 독립한다>
 
정이은   기사입력  2007/11/14 [18:47]
여성의 독립을 둘러싼 신화는 다양하다. 요즘 특히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이나 여성의 독립 신화가 한껏 광고 상품으로, 이미지로 다뤄지고 있는 듯하다. 이런 가운데 여성들의 독립을 다룬 <나, 독립한다>(도서출판 일다)가 나왔다.
 
출간하자마자 손에 넣고는 단숨에 읽어내렸다. <나, 독립한다>는 여성의 독립을 둘러싼 다양한 신화 속에서 진짜 삶들을 건져 올려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책에는 총 8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저자들은 젊은 여성이나 결혼하지 않은 여성만이 독립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저자들은 안정되기 보다는 이제 막 독립의 첫 발을 내딛는 이십대이기도 하고, 이미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거나 장애를 가졌다. 자녀 양육 때문에 이혼을 주저하기도 했고, 방을 마련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머뭇거리기도 했다. 많은 여성들이 독립을 꿈꾸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건 주변 환경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실제로도 백 번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들은 독립을 막아서는 조건 속에서 ‘저질러 버린’ 이들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혼자의 힘으로 살겠다고 가족들의 허락을 구하다 거부당하고 물리적인 저지가 두려워 몰래 도망친 이야기며,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선 사연들이 담겨있다. 저자마다 독립을 결심하게 한 동기는 달라도 그 소망과 현실의 무게는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여성들의 독립을 다룬 8편의 에세이를 모은 책 <나, 독립한다> 표지     © 도서출판 일다, 2007
《나, 독립한다》는 흔히 떠올리는 공간의 독립만을 나열하지는 않는다. 저자들은 관계로부터의 독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갈등과 상처가 자신을 성장하게 했다고 고백한다. 이를 테면 이 책은 끝없이 망설이고 기다린 끝에 선택한 독립이 남긴 열매와 같다.

 
이들의 독립은 안전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한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러한 껍질을 깨치고 나온 쪽이다. 그리고 경계의 외부로 건너 와서야 “함께 살려면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단순히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는 것은, 독립이 아니라 고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선택한 아이>의 저자 윤하 씨는 저자 간담회를 통해, “말할까 말까 하는 고민에서부터, 또 말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성장하는 걸 느꼈다”고 회고했다.  “가슴에 묻고 지워버려야지 생각했던 기억을 끄집어내고 표현하면서, 훨씬 당당해지는 것을 경험했고, 그 과정들이 너무 소중했고 새로운 힘이 됐던 시간”이었다고. 이는 비단 저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독립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립을 방해하는 환경 속에서 의존과 예속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각오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더군다나 여자가 독립하고자 할 때는 부담이 배로 증가하는 건 당연하다. 여성에게 불친절한 우리 사회는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을 절대 직접 열어 주지 않는다. 그 문을 여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이 외부 세계를 완전히 차단하는 벽이 아니라 문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벌써 백 년도 전에 버지니아 울프는 ‘왜 모든 경제적인 부는 남자들의 몫인가?’ 하고 물었다. 여자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들이 전부인데 말이다. 울프는 여성들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정기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제시한다. 이는 곧 삶을 성취하기 위한 기반이다.
 
세기가 지난 지금도 현실은 다르지 않다. 다만, 최소한의 조건이 최대치의 영역으로 탈바꿈했을 뿐이다. 결혼 생활 십 년과 삼 년에 걸친 이혼소송동안 숙경씨도 경제적인 기반이 없다는 사실이 자신의 독립을 무화시킬 뻔 했다고 썼다.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떻게 하면 이 지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혼자 키울 자신이 없었다. 직장 일도 그만두고 집 안에 머물면서 어느새 나는 경제적으로 무력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정희선씨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책 속에서 부모와 떨어져 살기 위해 목돈이 필요했는데, “당시 단칸방의 전세금은 월급의 반을 오 년간 꼬박꼬박 저축해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기 때문에 독립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많은 여성들이 독립에 대한 의지를 관철시킬 수 없는 이유가 돈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 독립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과연 무엇인가, 하고 고민해 본다. 물론 독립을 위한 준비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이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필요한 만큼의 돈이 모였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승민씨의 글 중에 “‘모든 것을 차곡차곡 준비해 독립하겠다.’라는 생각보다 독립을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독립 하겠다.’라고 마음먹는 일”이었다는 고백은 좀 더 명료하다.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이는 이 책의 또 다른 시작이자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창구일 것이다.
 
《나, 독립한다》는 여성주의 인터넷 매체인 <여성주의저널 일다>(www.ildaro.com)에 뿌리를 둔 <도서출판 일다>의 첫 출판 결과물이다. 재미있는 점은 종이책이 정중히 사양되는 시대에, 그것도 웹진으로 운영해 왔던 <일다>에서, 책을 통해 독자들과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 여전히 인터넷 신문 보다는 책을 아끼는 독자 입장에서는 대환영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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