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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사라지고 고인물 되가는 시민단체
[정문순 칼럼] 위계와 권위, 유사정치인 닮아가는 시민단체에 미래 없다
 
정문순
어느 여성노동자회에서 주최하는 문화제에서 여성 관련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기에 보러 갔다. 대학 강당을 빌린 상영장에서 눈에 들어온 건 화면이 아니라 텅 비다시피 한 좌석이었다.
 
손으로 세어 봐도 얼추 열 손가락에 차지 않았다. 다음날은 그나마 몇십 명이 들긴 했으나, 관람객들 옷차림이 대부분 같은 것으로 보아 동원되었다는 인상이 짙었다.
 
지원금에 길든 활동가들
 
비싼 돈을 들였을 팸플릿에는 시간도 틀리게 표기되는 무성의함이 드러났다. 엄연히 여성가족부의 후원을 받는 행사였지만, 아무리 봐도 내부 모임 규모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행사를 치르고자 정부의 지원금이 필요했다기보다 오히려 지원을 받기 위한 요식행위가 필요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었다.
 
정부 지원금을 만지게 되면서 시민단체가 배고프고 추웠던 시절은 옛말이 되고 있다. 지금의 시민단체들은 실무자들이 월급은커녕 차비와 밥값조차 받지 못하고 제 돈 내며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건 믿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날의 시민단체들은 전문성은 몰라도 열의만은 충천했지만, 지금은 거꾸로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고픔을 면하게 되면서 전문성을 기를 여유는 생겼는지 모르지만, 열의가 받쳐주지 않는 전문성은 관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단체가 관료화 되어가고 있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시민단체가 배불러지면서 열성과 헌신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건 안일과 타성, 비민주성이다. 물론 굶주려야 운동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조직 내의 민주주의는 옛날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다. 15년여의 격차를 두고 사회단체 실무를 경험한 적이 있는 나는,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다. 
 
▲시민운동이 관성화 타성화 되는 가운데 관료화 돼가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시민운동이 다시 한번 반성과 성찰을 통해 건강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위 사진은 내용과 관련없는 일반적 시민단체의 회의 모습임)     © 인터넷 이미지

활동가들이 서로 평등하게 '동지'로 부르던 시절은 라면이 빠지지 않는 끼니를 때우고 나면 남자들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다투었다. 그러나 대표와 상급 실무자가 상전 노릇하고 싶어 하는 지금의 분위기에서 온갖 뒤치다꺼리는 하급 여성 실무자들 몫으로 떨어지기 일쑤다. 밥 먹은 뒤 숟가락만 놓고 얼른 일어서는 간부들이 입으로는 약자와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한다.
 
위계와 권위만 강조되는 한 시민단체는 흐르기를 멈춘 물이다. 고인 물속에서 대표 한 사람에게 몰리는 집중력은 막강할 정도이다. 경남 지역에서 대표가 몇 년이 지나도록 얼굴이 바뀌지 않는 곳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표가 좀처럼 갈리지 않는 단체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총회는 형식적이고 시늉만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이 지역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은 정치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이며, 실제로 하는 행태를 보면 유사 정치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실무자를 동지가 아닌 자신의 수족이나 아랫것으로 대하는 데 더 익숙하다. 공적은 모조리 자신의 것이고, 언론에 얼굴 내미는 데는 열성이다. '정치꾼'을 떠받쳐주려고 실무자들은 골병이 들 수밖에 없다. 더러 대표에게서 권위 의식을 배운 상급 실무자가 하급 실무자 위에 군림하려 들 경우 밑에 있는 사람만 죽어난다. 박봉과 찬밥 대우를 감수하며 몸바치다 끝내 병마만 얻고 사라지는 실무자들을 적잖이 보게 된다.
 
국민의 정부 이후 시민단체의 고인 물은 날로 탁해지고 있다. 불투명한 재정 운용 속에 정부 지원금은 뭉텅이처럼 새고 있다는 말이 무성하다.
 
금액 부풀린 영수증 요구하기도

 
인건비는 노동부에서 지원받는 일이 가능하고, 회원 회비는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회원을 확보하는 길이 열려 있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시민단체들은 돈 욕심이 넘쳐난다.
 
지원금이 단체 굴리는 데 쓰라고 주는 돈도 아니건만 너도나도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르는 정부나 지자체 프로젝트에 목을 맨다. 군사정권 시절 정부와 각을 세웠던 운동단체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원금 집행을 감독해야 할 당국은, 시민단체가 거래처에 금액이 몇 배나 부풀려진 영수증을 떼어 달라는 요구를 예사롭게 한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
 
자신이 할 일을 시민단체가 대신 해준다는 생각에 대충 넘어가는 건 아닌지. 이대로 가다간 시민단체의 내일은 없겠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10월 24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07/10/25 [03:42]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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