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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인간의 수에 대해
인가의 수와 역사, 그리고 인간의 미래
 
박상준   기사입력  2007/10/21 [00:57]
인간의 수명이 딱 30년이라고 가정하자. 또한 남녀 두 사람이 30년을 사는 동안 자신들의 두 배인 4명의 자식을 낳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900년 또는 1500년 후에는 그 수가 얼마나 되야 할까? 확률적으로 남녀가 태어나는 비율은 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오직 두 사람의 남녀가 30년 동안 4명의 자식을 낳은 후 죽고, 4명이 30년 동안 그 두 배의 8명을 낳고 죽고 그렇게… 900년 동안 30번을 낳고 죽을 것이다. 900년 후에 인간의 수를 알고 싶으면, 밑의 식에 30을 대입하면 나온다. 대략 10억이 나온다.


 그렇다면, 단 두 사람의 남녀로부터 150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1000조가 된다. 지구의 반경이 대략 6400Km이다. 만약, 한 사람이 1평방미터의 땅만 소유한다고 생각해보자. 바다를 모두 땅으로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지구의 겉면적은

 

이다. 단 두 사람의 남녀로 인해 발생한 1500년 후의 인류는 1000조이고, 땅은 500조 평방미터다. 땅과 바다에다 인간을 쓰레기 봉투에 쓰레기 누르듯 채워넣어도 500조의 인간들은 발도 디딜 곳이 없다. 50억~60억에 이르는 현 인류의 수만 해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정도의 인간의 수는 오직 남녀 두 사람에 의해 1200년만 지나면 1조에 이르는 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작은 수이다.
 
1000년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그 당시 인간의 수가 단 두 사람이었겠는가? 300만 명만 되어도 300년이 지나면 30억으로 인간의 수는 불어나게 되어 있다. 만약, 인간이 서로 죽고 죽이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과연 어떠한가! 인간의 수명은 30년도 아니고 대략 60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류의 수는 결코 늘어나지 않았다. 인간의 삶이 풍족하고 풍요롭고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라면, 인간의 수는 그렇게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작다. 또한 지구 위에 인간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쥐, 토끼, 돼지, 새, 파충류, 온갖 식물 등이 존재한다. 번식력이 엄청난 쥐를 대상으로 계산을 하면 끔찍할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가! 쥐의 숫자가 공식대로 늘어나는가!

 
인간이 쥐를 잡지 않고,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포식동물이 쥐를 잡아먹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이 쥐에게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떻게 될까! 한 쌍의 쥐가 1년에 1500마리로 불어난다고 한다. 계산의 편의상 한 쌍의 쥐가 1년에 1000마리로 불어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150억 광년에 이르는 전 우주공간이, 오직 한 쌍의 쥐로 인해 23년 후에는 쥐로 가득 메워져 버린다. 이게 지옥이지 어찌 평화로운 세상일까? 쥐라는 종족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번식을 조절하거나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하는 것 뿐일 것이다. 인간도 없고, 쥐를 잡아먹는 포식동물도 없는 세상이 쥐에게 결코 평화로운 세상이 아닌 것이다. 환경은 극도로 적은 수에게만 평화와 생존을 허용하고 있다. 이게 과연 누구 탓인가!
 
기독교 사상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신이 최초로 흙으로 아담이라는 인간을 만들고, 그의 외로움을 헤아려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이브)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금단의 열매를 건드렸기에 영원히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900년 이상동안 젊고 아름다운 육체로 수많은 자손을 낳았다고 한다. 30년 동안 사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900년 동안 살다니! 이게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만약 이렇게 되면 아담과 이브, 오직 이 두 남녀가 900년 후에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겠는가! 인류의 수는 얼마나 되겠는가?

 

인간들의 수는 이렇게 된다. 이 수가 얼마나 엄청난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이 박스 하나 크기 정도만 차지하고 있더라도, 전 우주공간조차도 인간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모르겠다. 아주 꽉꽉, 눌러 넣으면 이 정도 인간의 수를 전 우주공간에 채워 넣는 게 가능할지도…… 
 
 
인간이 모두 다 풍족하게 평화롭게 번식하며 살아가기에는 지구는 터무니 없이 작은 것이다. 아니 전 우주공간조차도 터무니없이 작은 것이다. 하물며, 지구라는 극히 좁은 영역과 환경 안에 영원히 살라고 하는 것은 곧 무엇을 뜻하겠는가! 선악과를 따 먹어 900년을 살아도 감당하기 힘들거늘! 선악과를 건드린 인간의 선택은 잘못된 것인가? 신이 인간에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인류는 필히 살아 남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죄를 저질러야 할 것이다. 지구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된 인간이 되기 위해, 우주공간을 가득 메울 인간들의 생명이 단 1사람의 생명을 위해 사라져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이게 과연 인간의 원죄인가? 신의 어리석음인가!
 
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을 향해 열정적으로 기도를 하고 기원을 하더라도 신은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만약, 그가 우주를 창조했다면 말이다. 예수와 부처 가라사대! 평생동안 그들은 대중 앞에 서서 철학적이고 계율적인 말은 한없이 제공해주었으나 단 한마디의 진리에 대한 말을 한 적이 없다. 즉, 그들은 신은 신이나 진리를 컨트롤 할 수 없고, 진리의 영역이 신보다 더욱 더 값진 영역이라는 것이 된다. 그들은 단지 기적의 능력을 보여주고, 그 시대의 인간들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얻어냈을 뿐이다.
 
내가 인간의 수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평화의 지속이란 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현 인류가 과거에 대해 집착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수”를 가지고만 생각해봐도 겨우 60억 정도의 인류만 지구에서 생존하기 위해 수많은 과거의 역사상에서 얼마나 많은 숫자의 인간들이 죽어왔겠는가! 상상을 불허다. 만약 그걸 상상하고 있다면, 전 우주는 인간의 시체 무덤이 되어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언급하고자 했던 것은 이와 같은 주제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각난 김에 한번쯤 고려해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지금 역사란 과거와의 끊임없는 단절의 시도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인간의 수에 대해 언급했지만, 여유를 잡아 본격적으로 역사가 왜 과거와의 끊임없는 단절의 시도를 통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항상 사족을 달기를 즐겨 한다. 따라서 어김없이 사족을 찍으면서 이 글을 끝마치고자 한다.
 
이명박의 대운하보다는 한일간의 냉랭해진 관계를 본격적으로 개선해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의 과학 기술력이라면 충분히 한일간을 연결하는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육교를 건설했으면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백 여년간 평화가 지속되어 인류가 번영하면 곧바로 당면하는 자원부족 현상을 겪게 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물론 오랫동안 이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은 자원을 한 곳으로 집중해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후, 진리의 보물을 캐낼 수 밖에 없다. 아인슈타인 이후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창조력이 고갈된 것인가! 아니면, 수백 년 전보다 더욱 더 오늘날이 창조적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단 말인가!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장애물 같은 제도! 제도 속에도, 인간 속에도, 수많은 곳에서 탐욕이 넘실대고 있는 걸 보니, 자연은 인간에게 개체 수를 줄이라고 하는가 보다! 바로 탐욕의 극치인 전쟁을 통해서…….
 

박상준 : 전 경문전문학교 교수 임용. 전 정보통신기업 비와삼시스템 대표. 한양대학교 전자공학 박사 수료(국내외논문 20여편.특허1 실용신안 1 저서 2편 등), 전 한양대학교 강사. 저서:::SF소설 "우주의 항문 화이트홀" 외 2편. 집필 중 저서: 박상준의 물리학 강의 “일반상대성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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