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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천재이기 전에 진정한 벗들이었다
[책동네] 천재문인 17명의 삶과 예술 복원, 윤채근 <신화가 된 천재들>
 
박철홍
한문학자 윤채근 교수가 신라시대 최치원부터 조선시대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인 문인 17명의 작품속에 담긴 그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신화가 된 천재들>이라는 책을 통해 오늘날의 시각으로 생생하게 복원하며 소개했다. 
 
<신화가 된 천재들>은 겉보기에는 인문교양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선대 문인들 중에서 천재적 재능을 발휘했던 이들을 지금 다시 우리 곁에 초대하며 그들의 삶과 예술을 엿보게 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윤채근 지음 <신화가 된 천재들> 책 표지     ©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이 책은 계간지 <시인세계>에 5년에 걸쳐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것이다.
 
저자는 <신화가 된 천재들>에서 과거에 갇혀 있는 미이라나 박물관 한구석에 전설로만 기억되는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처럼 욕망하고 갈등하던 구체적인 존재로 되살리고자 했다.
 
과거의 문인들을 온전히 현실로 소환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한낱 옛 것을 좋아하는 취미나 역사에 대한 관음증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 때문에 저자는 각 인물들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해 설명하는 것을 피하는 대신, 그들의 삶에 일어났던 결정적 사건에 초점을 맞춰 그 숨가쁜 현장을 현재시제로 풀어냈다.
 
이로써 저자는 당대의 천재적 문인들이 겪었던 '센 운명'에 감상적으로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그 운명의 절실함을 객관적으로 드러내주는 장치로 영화적 서사 기법을 활용했다. 즉 저자의 시선을 가급적 카메라 밖으로 이동시키고 그들과 그들의 삶 자체가 독자들에게 직접 말 걸도록 했다.
 
이에 따라 17개의 이야기들은 각각 열 장면 이내의 컷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장면들은 아라비아 숫자로만 구분되어 있다. 아라비아 숫자 1이 시작되면서 하나의 프레임이 돌아가고 이 프레임은 연속성 없이 단절(페이드아웃)된다.
 
즉 새로운 페이드인이 열리면서 다른 장면이 시작되는 식. 결국 독자들은 컷과 컷으로 단절된 장면들 사이의 의미의 진공을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이처럼 저자가 영화적 서사를 선택한 이유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자의 믿음 때문이다. 또 독자들을 또 하나의 의미 창조자로서 저자의 이야기 속에 초대하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가 그들의 업적보다도 일화로 엿볼 수 있는 인물 됨됨이를 좇아가다 보니, 이를 들여다보는 카메라의 촬영 기법도 그렇거니와 저자의 말법과 필력의 힘 또한 만만찮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저자의 영화적 서사 기법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으로는 '황진이(黃眞伊)의 주체-되기, 또는 몸쓰기'중에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특히 저자는 "역사적 사실은 여럿일 수 있으며, 어쩌면 여럿일 수 있어야만 제대로 된 역사일 것이며 자신만이 유일무이한 '팩트(fact)'를 알고 있다는 확신이 얼마나 경솔하고 오만한 짓인지는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며 "여러 '가능한 진실들'로 다가갈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하나의 여행 지침서로서 엄밀한 각주를 통해 인용 원문을 제시해놓았고, 영화감독으로서 드문드문 카메오처럼 화면 안에 직접 개입하기도 했는데 이를 그저 히치콕류의 익살로 용서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화가 된 천재들>속을 들추면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하며 영화 같기도 하다. 이를 통칭해 원거리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는 장시(長詩 )같기도 한 다면체의 매력으로 빛나는 책이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선대 문인들, 세상살이 불안 위로해준 진정한 벗들”

총 4부로 나누어 정리되어 있는 <신화가 된 천재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최치원, 김시습, 임제, 권필, 허균, 황진이, 김만중, 소세양, 유희경, 이규보, 임춘, 신광한, 정사룡, 이언적, 이옥, 정약용, 박지원.
 
저자는 사료에 의해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 근거해 선대 문인 17명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선대 문인 17명 한 사람 한 사람은 저자의 인생에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또 그들은 저자에게 인생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연구 주제 이상의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어쩌면 문인 17명이야말로 나의 얽히고 설킨 세상살이의 불안을 위로해준 진정한 벗들이었던 것만 같다"며 "이들 모두를 한 권속에 모아놓고 보니 그들 역시 서로서로 깊이 연관된 존재들이었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저자는 "문인 17명의 시를 주됨으로 삼았는데, 본문 안에 현대적으로 해석해 써넣은 읽을거리로서의 시는 참 달고도 쓰고도 아리다"며 "그만큼 깊은 여운을 드리우고 있는 이 책에서 우리는 그동안 배워왔거나 풍문으로 들어왔거나 혹은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가미된 현장 속에서 가상으로 옷 입혀진 배우로서의 문인이 아니라 저자에 의해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살아 있음으로 생생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저자 윤채근은 1965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그는 한문소설을 정신분석지평에서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아시아 경전의 대중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기사입력: 2007/09/20 [12:42]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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