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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도 아닌 신문고시가 뭐에 쓰는 물건인고?
그때 그시절, '조중동의 추억', '오욕의 기록'을 아십니까?
 
양문석   기사입력  2003/05/09 [01:10]
때는 바야흐로 1980년대.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큰 신문사 중 하나의 회장님이지만 1980년대만 해도 그저그런 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이 계셨다. 사장님은 낚시를 무지하게 좋아하셨다. 하지만 한 번 간 곳은 결코 가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셨다. 낚시 여행을 떠나면 반드시 해당 지국장이 사장님 영접한다. 그 때 사장님 특유의 지시 한 마디. 시장 군수 연락하고 동네유지 다 모아라. 지국장 손가락이 바빠진다. 서울에서 우리 사장님 오셨는데 보자신다며. 바싹 긴장한 시장 군수 동네유지들. 무슨 일로 호출인지 괜히 혹시하며 주변을 되살핀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 신군부를 주도한 전두환을 노골적으로 찬양한
조선일보 1980년 8월 23일자 기사


일간지 사장께서 안부묻고 지역경제 걱정하며 거하게 한 잔 산다. 시장 군수 동네유지들 발끝에서 머리까지 감동의 물결이 흘러 넘친다. 주재기자 나부랭이들한테 맨날 덜덜 볶이던 신세가 아니었던가. 그런 이들이 기자 나부랭이들의 사장님으로부터 술을 얻어먹었으니. 하지만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표정 역력하다. 얼굴 가득히 인자한 웃음 띄며 사장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 "우리 신문 잘 부탁드립니다"고. 누가 간이 부어, 누가 감히 그 신문 안보고 베길 수 있나. 그 날로 모든 관공서 군부대 그리고 크고작은 각종 회사 사무실에 그 신문이 깔린다. 그 때 그 시절은 이런 낭만(?)도 있었던 모양이다.

때는 사나브로 흘러 2001년. 곳곳에서 작은 주먹질이 시도때도 없이 일어난다. 심지어 찔러 죽였다는 이야기도 잊을만하면 상대사 지면을 도배한다. 정치권이 들썩인다. 시민단체 거품물고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면 1인시위니 성명서니 바람 잘 날 없다. 청와대가 움직인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가 아니라 '세무조사'란다. 횡령했다고 출두하란다. 출두하니 옥살이 좀 하란다. 권력이 시키니까 하긴 하는데. 회장님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맞서는 모습이 아름답다. 비판언론 재갈 물리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고, 언론자유 탄압해서는 안된다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권력 최정상을 향해 삿대질하신다. 표적수사라고 하신다. 비판언론에 보복조치라고 하신다. 회장님 나오셨다. 그리고 한 말씀 또 하신다. 두고봐라.

회장님이 온몸으로 막고 섰으니 우리는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야지. 자전거를 끌어라, 비데를 깔아라 냉장고라도 꽂아라. 친정부신문이 먼저 했으니 부담없이 아낌없이 풀어라. 시장질서는 빈익빈 부익부임을 잊지 말아라. 낭만보다 생존이 공정보다 독점이 투명경영보다는 독직과 횡령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리고 2003년 4월. 비판언론에 재갈물리는 정권은 반드시 파멸한다며, 신보도지침이라고 한국 최대정당이 그러대. 군부독재시절에도 보도듣도 못한 이런 언론자유 탄압사례를 전국민들에게 대문짝하게 기사만들어 알려야지. 국제언론사주친목회를 통해서 언론탄압국으로 지명받아내야지. 한데도 청와대 주인 텔레비전에 나와서 오로지 비판언론 비판신문만 갈군다. 특권과 특혜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고.

언제 특권과 특혜받았는지 기억 가물거리는 회장님. 이럴 수는 없다며 야당으로 달려간다. 어라. 야당이 한국 최대정당인데 '리더십'이 없네. 다음 날 사설로 야당의 리더십 부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효과를 본다. 바로 그 날 야당의 리더십들이 언론탄압하는 청와대는 각성하라고 외쳐댄다.

그런데 이런이런. 검정고시도 아닌 것이 사법고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론고시도 아닌 신문고시를 정부기관에서 바꿔버리네. 비판언론 언론자유가 거품처럼 사라져가네. 신문시장의 독과점적 지위를 정치권력이 인위적으로 바꾸려하네. 시장이 우리를 선택했는데 권력이 방해하네. 이럴 어째.

하지만 희망은 있다. 야당 끌어들여 실지 회복해야지. 야당의 리더십 한 번만 더 지적해주고, 정치전략 칼럼으로 훈수두면 희망은 있다. 장관을 물어라. 살갖 약한 장관들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비판하라. 틀림없다. 얼마 못 견디고 우리 쪽으로 줄선다. 이것은 역사의 진리요 삶의 지혜로다. 몇 번 물린 장관들 우수수 넘어 온다. 대통령과 나는 언론관이 다르다며 안겨온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균형을 위해서 보수언론의 주장도 수용해야 한다면 기대온다.

노스트라다무스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회장님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튼다. 그래도 한국은 희망있어. 암. 적절한 콘트롤만 잘하면야. 회장님 새로운 지침이 떨어진다. 청와대의 입술을 겨냥하라. 나약한 장관을 공략하라. 시시때때로 최대정당 혼내고 격려하는 글을 '균형있게' 제시하라. 노동자든 노동조합이든 한 놈만 잡아 집중적으로 공격하라. 선택과 집중만이 희망을 보전하는 유일한 길임을 분명히 인식하라. /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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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09 [01: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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