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유시민의 '멧돼지 개그'에는 개그가 없다
지도자라면 말을 가려야, 특전사가 멧돼지나 잡는 부대인가?
 
김소봉   기사입력  2007/09/03 [15:15]
80년도 5월 중순인가? 광주의 5월이 궁금해 무작정 차를 서쪽으로 몰았다.
 
5.18의거가 군에 의해 진압된 지 불과 며칠 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경상도에서는 전라도사람은 때려 죽여야 할 공비나 빨갱이처럼 취급되고 있었고 경상도사람이 광주에 가면 돌팔매나 총에 맞아죽는다느니, 경남 번호판을 달고 가면 전라도사람들이 차량을 불태운다느니, 하는 무시무시한 유언비어가 파장의 종잇장처럼 난무하던 때라 아내의 근심어린 만류가 잠시 내 발목을 잡았지만 역마살이 있는 터라 만류를 뿌리치고 운전대를 잡았다.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격전의 현장이었던 조선대 앞을 지나 화순으로 가는 대로는 어느새 말끔하게 치워졌고 어디서 돌팔매라도 날아올까 싶어? 잔뜩 웅크리고 운전하던 필자는 너무나 고요한 광주의 정적에 비로소 긴장을 풀고 말았다. 2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들의 '화려한 외출'을 위한 대문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며 눈물을 쏟는다.
           
누가 화려한 외출을 피로 얼룩지게 했나?
 
정벌의 벌(伐)을 파자(破字)하면 사람(人)변에 막을 지(止)다. 즉, 평화를 지켜준다는 뜻이다. 창조주께서 베푼 평화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도 자신들 삶의 평화를 보장받고 지켜나갈 권리가 있는 법이다. 그런 양민들의 화려한 외출과 평화를 파괴해 피로 얼룩지게 한 것은 정권을 착취한 자와 그 하수인들이었다.
                     
얼마 전 민주신당의 대선 후보의 한 분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멧돼지로 인한 농촌의 피해를 줄이려면 특전사요원을 투입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내뱉었다. 군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하에 움직인다. 박대통령 시해사건도 마찬가지였지만 상관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일반 조직도 마찬가지지만 특수한 조직에선 언감생심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천적으로 특전사가 오늘날까지도 국민여론의 사면과 복권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유시민 전 장관의 돌출발언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사를 오물 속에서 들춰낸 것처럼 불쾌하기 짝이 없다.
 
필자 역시 원적이 공병부대 폭파요원이었지만 김신조 씨 때문에 급조된 00특수부대로 끌려가 계급장 없는 군인으로 온갖 훈련과 구타를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1년여 동안 국군통합병원신세를 지다 전역했다. 제대 후에 병이 재발해 원호처와 국방부를 찾았으나 내가 그런 부대에 차출돼 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고 병무기록 역시 공병부대원으로 근무하다 복무 중 후송돼 전역했다는 기록밖에는 없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부대 자체가 국방부나 육본 편제상 존재하지 않는 부대였던 것이다. 난 졸지에 유령부대(?)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고 지금도 증거불충분으로 보상 한 푼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30여년이 지났으니 파기됐겠지만 병상일지에는 훈련과 구타로 인한 전신골절상은 다 나았다고(지금도 필자의 머리에는 그 당시의 부상으로 입은 1mm가 넘는 패인 자국이 10cm정도 남아있다) 돼 있었고 특수훈련당시 굶주림으로 민물생선은 물론 뱀과 개구리를 통째로 삼킨 탓에 감염된 폐디스토마라는 병력 하나만 적용돼 9급으로 강제 의병제대 당한 후 그 후유증으로 7년이나 20대의 청춘을 잃고 골방에서 투병생활을 해야만 했다. 지금도 필자는 뼈저림 때문에 연필이나 젓가락을 잘 잡지 못한다.
 
유시민 씨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민주 신당의 어느 후보 말대로 진해. 부산 신항만 매립지의 깔다구를 잡는데도 특전사나 해병대 특수전 요원들을 투입할 건가? 화려한 외출로 잊힌 광주의 5월이 다시 부각되고 당시 학살을 명한 정치군인들은 오리무중인데 명령에 죽고 사는 진압의 중심에 있던 특전사만 오늘날까지 매도되고 있다. 그런지 그의 짧은 단견은 그의 구차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칙칙한 앙금으로 남는다.           
       
1999년인가? 한 잡지에서 당시 특전사요원으로 광주에 투입되었던 목사의 양심고백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포털사이트에 그 목사님의 심경이 다시 리바이벌되어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특전사는 멧돼지 사냥꾼이 아니다

 
멧돼지를 특전사요원을 동원해 잡는다고? 그럼 깔다구는? 야생 고양이는? 까치 떼들은? 지금이라도 정부나 지자체가 멧돼지 사냥을 허가하면 엽사나 일반 국민들도 산으로 몰려들어 한 달 안에 멧돼지는 멸종될 것이다. 야생조수로 인한 농민들의 아픔은 이해하지만 피해 입은 농민들과 생태계 보전책이 먼저 제시돼야 할 것이다. 유 후보가 병역의무를 거쳤다면 그런 발언은 전체 국군장병들이 실소할 일이다.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당시의 육군 이등병이나 일등병은 노예군인일 뿐,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불과했다. 지금도 상관의 발포명령에 불복종할 부하군인이 몇이나 될까?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다. 대통령은 국민의 평화뿐 아니라 자연계의 생명체도 지켜주는 나라의 총체적인 삶 즉, 삼라만상의 평화를 책임지는 지킴이가 돼주어야 한다. 유 전 장관의 발언은  정치군인들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해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일부 군인답지 않는 자들의 짓이고, 대다수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치거나 부상당한 특전사나 특수부대원들을 미필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이다. 한다면, 개그맨들이나 입에 올릴 소리며 대통령은 개그맨이 아니란 뜻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분이 군의 특성을 모르다면 아예 "그 입 다물라!"
 
“중앙이건 지방이건 지도자가 된 사람과 미래에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말을 가려서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필자가 평론가는 아니지만 유시민의 개그에는 개그가 없다는 게 내 주장이다. / 칼럼니스트         

* 본문은 <경남연합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칼럼니스트 /경남연합일보 수석논설위원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7/09/03 [15:1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