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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좋은 참여정부, 언로는 열려있는가?
100분토론 참관기, 국민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아니다
 
이명옥   기사입력  2003/05/04 [10:34]
한밤중 내발로 걸어가서 코미디 아닌 코미디를 연출하고 왔다. MBC방송국의 특집기획 100분 토론 시간.

참여 정부 출범 수개월만에 대구 참사로 지연되었던 국민과의 대화의장 겸 패널들을 통한 토론의 시간으로 북핵문제, 한미 회담, 국정원, 전교조, 부동산 문제, 경제 활성화 방안 등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국민들의 궁금증과 가려운 곳을 긁어줄, 시원한 답변의 자리가 마련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실은 몇몇 패널들을 대상으로 질의 응답식의 토론도, 시원한 답변도, 국민의 참여도 아닌, 어정쩡한 코미디를 연출하는데 그쳤고 난 어리석게도 그 코미디 현장에 바보 방청자로서 일조를 하는 희극을 연출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래 한결같이 참여 정부, 숨은 인재 발굴, 권위주의와 학벌, 지연, 학연을 탈피한 새로운 정부상 만들기를 외쳐왔다. 이제 발걸음을 뗀 그분의 결단력과 행정력 의지력이 얼마나 알찬 결실을 거둘 것인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지만 웬지 지금부터 벽을 치는 허울좋은 껍데기만의 참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거둘 수 없다.

100분 토론은 9시 55분에 시작해서 100분간 즉 최대 자정까지 종결될 예정이었고, 대통령의 제의로 10분이 늦어져 0시 10분에 끝났다. 방송사측은 국민 대표 50인을 운운하며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의 의지를 가지고 토론장에 나오는 것으로 과대 선전을 했고 사실 시간은 짧지만 의견을 여쯜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질문 사항을 준비해 오라고 몇 번씩 사전 체크를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이없게도 국민들은 자리를 채워주는 방청객의 위치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

철저한 보안, 사전 검색, 신원조회, 신분증 조회를 거쳐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박수 부대가 되고자 밤잠을 설치고 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패널을 위주로 심도있고 전문가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대통령의 견해를 듣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문제는 전문가의 의견은 대통령으로서 언제든지 들을 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진정 참여 정부를 이끌 의지가 있다면 국민들을 접할 기회가 있을 때 진솔한 국민의 목소리와 애로사항 ,국민들이 진정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그것은 이미 일정의 기득권을 가진 주류의 목소리로 걸러지고 잘 포장된 것이 아닌 소외 계층인 서민, 주부, 농촌 사람들, 노인, 장애인, 학생, 시민 단체 등의 입을 통해서 나와질 때 절실하고 현안적인 문제들이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의 시간을 통해서 역시 언론이나 정부 대통령은 기득권자일 수 밖에 없고 말과는 다르게 비주류의 아픔과 고통을 분담할 의지가 없거나 모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없었고 그것이 여러면에서 사실로 증명이 되는 씁쓸한 현장 체험의 장소인 셈이었다. 프로그램 담당자는 3일씩이나 전화를 걸어서 질문 내용을 서너차례에 걸쳐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했고 대통령을 만나 이런 고충을 알고 계시느냐고 물을 기회가 왔음에 감사했을런지도 모른다.

처음엔 그저 방청만 할까 하다가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준다기에 주부로서 또 서민으로서 작은 고충을 토로할 기회가 왔다고 헛된 망상을 품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혹시나는 역시나'로 끝났고 패널들을 위한 잔치 자리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소외계층의 모습을 유감없이 나타내 보이는데 그치는 비극을 맛보았다.

제작 의도가 어떠했는지 잘 아는바 없으나 만일 패널과 대통령을 위해 들러리가 필요했다거나 들러리 중 서너 명에게 '고맙고도 황송하게' 발언할 기회를 허락할 의도였다면 발언자에만 연락을 취해 발언의 기회가 있음을 알리는 진실성 정도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방송 제작자가 재단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 나름대로의 각본으로 연출하기에 성공(?)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제는 국민들도 눈이 뜨였고 방청자들도 바보상자를 끼고 앉아 무비판적으로 허허거리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국민대표 50인과의 대화'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며, 그 자리에 나갔던 50인의 서민들의 가족, 지인 친척 또한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거고 방송은 또 같은 작태를 연출할테지만 그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각인된 인상마저 지울 수는 없을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에 쌓인 불신을 불식하기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패널들에게도 사회자가 지적을 하는 방식보다 주어진 시간 내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고 대통령 또한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어찌하면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야 하지 않을까?

방법을 찾으려하면 패널들에게 60분, 국민들에게 40분을 할애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고, 한 사람의 패널이나 혹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너무 시간을 독식한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조절하는 것이 사회자의 역량이 아닐지.

아들아이가 엄마는 단 한마디도 못할 거면서 거기 가서 왜 2시간씩이나 앉아있느냐고 했을 때 난 정말 할말이 없었다. 이것이 국민의 참여를 최대한 유도하려는 참여 정부의 실체이고 그 참여정부의 수반과 국민을 한자리에 엮어주기 위한 방송사의 의도라면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대통령이 원하는 참여 정부의 국민은 교수거나 언론인이거나 반듯한 직함의 모 인사여야 할텐데...

정말 대통령이 서민의 고충을 알고 함께 나누려는 의지가 있는가에는 의문부호를 달 수 밖에 없었다. 만일 대통령이 그 곳에 온 사람들이 노인, 농촌 거주자, 주부, 학생, 등 대부분 생산 계층이 아닌 소비 계층이며 서민인 것을 알고 계셨다면 대중 교통 수단이 끊기지 전에 프로그램을 종료할 수 있는 작은 배려 또한 잊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러기에 부자가 가난한자의 고충을, 기득권자가 권리의 배분을, 권위주의자나 주류가 권위주의의 청산이나 비주류 주류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겠노라는 외침이 허황된 메아리에 그침을 다시금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 본문은 독자기고입니다. 본문에 대한 네티즌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제시를 환영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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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04 [10:3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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