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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대량학살은 미 고위층의 명령"
[현장] 제1회 노근리 국제평화학술대회, “양민학살은 미군의 고의적 사건”
 
김영조
지난 7월 27일은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이 벌어진 지 57돌이 되는 날이다. 이날 노근리 쌍굴에서는 합동위령제와 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가 열렸다. 하지만 노근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가해자인 미국이 아직도 진상을 가리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근리 쌍굴 들머리의 간판과 펼침막(여기는 노근리사건 현장입니다.라는 글이 써있다.)     ©김영조

이에 그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하나로 8월 1일 늦은 1시 30분에는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사)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 주최, 노근리평화연구소 주관, 영동군·충청북도·행정자치부 후원으로 제1회 '노근리 국제 평화학술대회'가 열렸다.
 
▲제1회 노근리 국제 평화학술대회 모습.     © 김영조

노근리 평화연구소장 정구도 박사는 개회사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사건 및 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을 초래했던 미8군 지휘부의 피난민 정책과 공중 공격 정책 등의 주제를 놓고 국내외 전문가를 모시고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려고 한다, 이 대회가 과거 역사에 대한 성찰과 인권에 대한 연구지평을 넓히고 평화라는 대의를 확장하는 의미 있는 마당이 되리라 믿는다"고 인사했다.
 
▲\'노근리 국제 평화학술대회\'에서 개회인사를 하는 정구도 노근리 평화연구소 소장(왼쪽)과 기조연설을 하는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 김영조
 
"노근리 학살은 미군이 고의로 저지른 사건"


이어서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만열 박사가 '노근리 사건과 평화'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을 했다. 이 박사는 "노근리 학살사건은 (미군이) 비무장 피난민인 줄 알면서도 저지른 고의적인 사건이라는 성격을 띄고 있다, 여기에는 비행기의 무차별 기총사격과 폭탄투하가 이루어진 것도 포함된다,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취했던 인권유린적이고 배타적인 자세를 극복해 가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유병용 교수의 사회로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란츠(Sahr Conway‐Lanz) 연구원의 '노근리와 미군의 명령문제'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주제발표를 했다.
 
란츠 연구원은 "연구 중 미국 정부는 나를 철저히 외면해 연구에 어려움을 느꼈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제 7기병대의 7월 통신일지를 찾을 수 없다고 했는데 이 통신일지에는 피난민에 대한 사격명령이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노근리 사건은 군사적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다기보다는 군인들의 선택이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이에 토론자로 나선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란츠 연구원의 발표문에는 노근리와 직접 관련된 것은 빠져 있다. 이로 인해 느슨한 진단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어쩌면 한미 간의 벽인지도 모른다"라며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제1부에서 발표를 하는 란츠 연구원, 김구현 연구원, 김태우 강사(왼쪽부터).     © 김영조
 
'한국전쟁기 미 제8군의 피난민 통제정책'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발표에 나선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김구현 전 선임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주한 미 대사 무초가 국무성 극동담당 비서 러스크에게 보낸 서신내용은 첫째 국제법(제네바협정) 위반에 대한 고뇌와 망설임,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기병사단 8연대의 전문에 나타난 '다가오는 피난민에 총격하라'는 명령에 대한 이해가 특정 개인의 오해가 아니라 부대 차이를 넘어 미 8군에서 광범하게 공유한 인식임을 보여준다.

▲1부 사회자와 토론자(왼쪽부터 유병용, 도진순, 김득중).     © 김영조

또 미군의 피난민 정책에는 최악의 패배로 위축된 수세에 몰린 시기에 전선 전방으로 이동해 오는 피난민의 존재가 작전에 방해된다고 판단되자, 피난민의 이동금지를 명령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비무장인 민간인들을 적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책 실현의 최종적 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공중폭격 등 현대 기계전쟁의 무기였다. 그 결과는 전선 전방의 비무장 피난민이 무장한 군인보다 오히려 더 많이 집단적으로 희생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군 "목표물 없지만 읍내에 쏟아 부었다"

세 번째 발표자로 나선 서울대 김태우 강사는 '한국전쟁 초기 미 공군 전투기의 전선부근 민간인 공격양상과 노근리 사건의 위상'이라는 발표에서 공군 작전일지 등을 중심으로 미 5공군이 어떤 지휘체계를 통해 어떤 방법으로 폭격에 나섰는지를 밝혀 관심을 끌었다. 김 강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실제 제5공군 전투기가 전선 부근 민간인 거주 지역을 공격한 이유는 적 병력과 보급품을 직접적으로 파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북한군 병력과 보급품을 찾아내기 힘든 상황에서 빠른 시간 내에 무기를 소비하기 위한 목적이 더욱 컸다.
 
전투기들이 연료부족의 압박감 속에 목표구역 상공에서 10여 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만 머물 수 있는 물리적 한계에 의해 전술항공기 통제반(TACP)이나 모스키토와 접속하지 못할 경우 전선 인근의 우연적 목표물을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한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관련한 자료로 9월 20일 오후 4시 40분에 이륙하여 6시 15분에 기지로 돌아온 제49전투폭격전대 제7전투폭격대대의 일개 편대 일일임무보고를 들었다.
 
"해머(Hammer)의 통제에 따르라는 지시를 받았다. 해머는 목표물이 없지만 김천으로 갈 것을 지시했다. 로켓과 50구경 기관총 탄환을 읍내에 쏟아 부었다. 읍내에 남아 있던 가옥들과 건물들에 9x5인치 고속 로켓과 50구경 기관총 탄환을 발사했다. 두 발의 로켓 직격탄으로 창고 두 곳을 파괴했고 4채의 건물에 피해를 줬다. (중략) 김천의 1/3 정도가 화염에 휩싸였다. 김천 부근에서 어떤 적 병력이나 움직임도 볼 수 없었다."
 
이 발표를 들은 청중들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세계 최고라고 뽐내는 미국 공군이 제대로 된 전략이나 정보에 따라 폭격을 한 것이 아니고, 빠른 시간 안에 무기를 소비하기 위해 크고 번듯한 건물을 주 타깃으로 삼아 마구 탄환을 쏟아 부어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데에 경악하는 모습이었다.
  
▲함철훈씨의 사진작품 중에서(노근리 쌍굴).     © 함철훈
▲사진을 설명하고 있는 함철훈 사진작가(왼쪽)와 기타로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김위철씨.     © 김영조

"미국은 중대한 국제법 위반"

1부가 끝나자 문화공연이 열렸다. '사진작가가 본 인권과 역사 - 나는 당신들을 보았다'란 제목의, 노근리를 중심으로 한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사진작가 함철훈씨의 사진과 함께 김위철씨의 배경음악이 어우러져 장내를 잠시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딱딱한 학술대회에 문화가 한 축을 차지하면서 진일보한 학술대회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2부가 시작되었다. 한국외국어대 이장희 부총장의 사회로 먼저 일본 게이오대학 마쓰무라 명예교수가 '노근리 사건 : 대량살상명령이 하달되었는가?'에 대해 발표했다.
 
"미 육군과 해군, 그리고 미 정부에서 얻은 서면 및 구두 증언을 토대로 판단할 때, 1950년 늦은 7월 노근리에서 발생한 대량 살상은 우연이 아닌 미 육군과 해군의 고의적인 명령에 의해 자행되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노근리의 대량살상은 도쿄의 맥아더 원수나 워싱턴의 미 정부의 명령이었음이 분명하다. 당시 한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유사한 살상이 발생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미 정부는 희생자와 가족 및 친척에게 사과 및 보상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마쓰무라 명예교수는 노근리 사건에 대해 다양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며, 미 정부가 사과와 보상 책임을 명백하게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중은 한국이나 미국이 아닌 제3자가 미국의 책임을 거론한 데에 무척 고무된 듯했다. 그러면서 마쓰무라 명예교수는 "노근리를 영어로 쓰면 'No Gun Ri'이기에 더 이상 다른 곳에서는 학살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노근리로 인해 반전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2부 발표자들(왼쪽부터 마쓰무라, 최수희, 최호근).     © 김영조

이에 사회를 보던 이장희 부총장은 마쓰무라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민간인 보호에 대한 제네바협약 제146조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국제법학자로서 견해를 밝혔다.

이후 미국 유타대 최수희 교수는 '양가적 수사장치로서의 모성 - 노근리 사건 여성들의 증언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모성을 중심으로 한 노근리"를 말했으며,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최호근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 정규군의 유대인 학살과 과거사 극복'이라른 발표에서 독일 국민이 어떻게 학살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를 밝혔다.

▲2부 사회자와 토론자(왼쪽부터 이장희, 허상수, 유선영, 권형진).     © 김영조

최호근 교수의 발표에 한 청중은 독일이 과거를 청산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국민들의 노력보다는 미국에 있는 유대인들의 힘이 컸다며, 우리도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미국 등 나라 밖에 있는 교포들의 힘이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로써 제1회 '노근리 국제 평화학술대회'는 끝났다. 하지만 노근리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아직 먼 길이다. 가해자인 미국이 분명한 근거자료를 내놓지 않고,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리를 지켰던 청중들은 이렇게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더 많은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한다면 미국도 결국은 손을 들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기사입력: 2007/08/02 [10:1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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