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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양민학살 노근리, 유해 발굴 시작됐다
[현장] 노근리 취재소설 낭송회등 제1회 노근리 인권평화학술문화제 열려
 
김영조   기사입력  2007/07/28 [23:48]
노근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지난 1950년 7월에 벌어진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기간에 벌어진 미군에 의한 무고한 양민학살사건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원혼은 구천을 맴돌고 있으며, 살아남은 피해자와 유족의 눈물이 지금도 마르지 않고 있다.
 
▲노근리사건 합동위령제가 열린 노근리 쌍굴 좌우에는 총탄 흔적(흰색의 표시들)이 즐비하다.     © 김영조
 
7월 27일은 그 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지 57돌이 되는 날이다. 그날 노근리 현장과 영동문화원 등에서는 제1회 “노근리 인권평화 학술문화제”가 시작되었다. 그 서막으로 27일 이른 10시에는 쌍굴 현장에서 제9회(57주기) 합동위령제와 추모공연 그리고 유해발굴 개토제가 있었다.
 
합동위령제는 우선 노근리사건 희생자유족회 정은용 회장(86)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분향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노근리 인권평화 학술문화제 추진위원장인 정구도 유족회 부회장(52)은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소상한 보고를 했다.
 
▲정은용 유족회 회장의 헌화와 분향     © 김영조
▲노근리 쌍굴에서 열린 제9회(57주기) 노근리사건 합동위령제 모습     © 김영조
 
“노근리 쌍굴 주변의 3만 5천 평은 거의 매입되었고, 추모탑 건립, 합동묘역과 추모공원 조성 등 여러 사업이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앞으로 노근리 특별법에 따라 추모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노근리 사건현장은 우리 부모형제들의 넋을 위로하는 장소로뿐만 아니라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 역사를 바로 알리고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는 장소로 승화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2001년 1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성명서에서 약속한 추모비건립과 장학금 제공이라는 추모사업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진행되지 못했고, 그나마 추모사업예산 417만 달러가 지난해 말로 미국 정부 국고로 회수되었다. 이는 미국 정부가 노근리사건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할 마음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어서 정은용 회장은 위령사를 통해 “노근리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된 지 어언 57년이나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원혼은 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 오늘 드디어 유해발굴 개토제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라도 원혼들의 분명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도록 산자는 최선을 다해햐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다음 이용희 국회부의장과 감원웅 국회외교통상위원장, 정구복 영동군수의 추모사와 평화를만드는교회 김동완 목사의 추모기도가 이어졌다.
 
▲노근리 학살사건을 그린 그림(합동위령제 안내책자에서)     © 김영조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에 참석한 인사들이 첫 삽질을 하고 있다.     © 김영조
 
모든 의식행사가 끝난 다음 제2부 추모공연이 시작되었다. 먼저, 김정기 영동예총회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장지성ㆍ유진택 시인의 추모시 낭송, 이숙이ㆍ임현정ㆍ전우실의 진혼곡 연주, 강영애 외 국악협회원들의 진혼무가 이어졌다.
 
추모공연이 끝난 다음 사람들은 쌍굴 위 언덕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가 열리는 것이다. 유해발굴단장인 충북대학교 박선주 박물관장의 인사말과 현장에서 발굴을 지휘하고 있는 성종영 교수(고고사학과)의 유해발굴 개요 설명이 있었고 참석 인사들의 첫 삽질이 있었다.
 
발굴은 쌍굴 안팎에 방치되어 있던 유해들을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묻었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5개 지점을 7월 27일부터 8월 25일까지 30일 동안 조사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유해 발굴은 6.25전쟁 기간의 양민학살사건 중 최초로 법에 의해 희생자의 유해를 확인하고, 한자리에 모아 명에를 회복함과 제대로 된 추모를 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는 미군기의 폭격에 눈알이 빠져 실명한 살아있는 희생자 양해숙(68) 할머니도 나와 헌화와 분향을 하며, 만감이 교차되는 듯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듯 밝은 표정이었고, 소설 “노근리아리랑”의 작가 이동희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소설 "노근리아리랑"의 저자 이동희 씨가 한쪽 눈을 잃은 희생자 양해숙 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위) / 자신이 쓴 소설 "노근리아리랑"을 위패에 봉헌하는 이동희 작가     © 김영조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총탄 자국이 보이는 쌍굴 입구에는 볼록거울이 쌍굴 안의 합동위령제 모습을 비쳐준다 / 쌍굴 안에는 무슨 일인지 총탄 자국을 지워놓았다 / 총탄자국이 깊고 넓다 / 총탄 자국들을 종류별로 구분해 표시를 해놓았다.     © 김영조
  
늦은 3시 30분에는 영동문화원에서 “노근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노근리 취재소설 낭송회가 열렸다. 이 자리는 문인들과 유족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유족회 정은용 위원장의 ”그대 우리 아픔을 아는가?”와 계간 “농민문학” 발행인이며, 영동군 매곡면 소재 농민문학관 대표인 이동희 교수의 “노근리아리랑”을 두 저자와 문인들이 낭송을 했다.
 
낭송회는 김정기 영동예총 회장의 개회사, 유족회 정구도 부회장의 인사말씀, 정원용 영동문화원장의 환영사, 정구복 영동군수의 축사가 이어졌고, 시작을 알리는 테너 문제성의 가곡 “비목”이 울렸다.
 
소설 낭송은 정은용, 이동희 두 작가를 비롯한 많은 문인이 함께했는데 특히 방송인 박규채 씨가 “광란의 춤 / 쏜 자여 말하라‘를 낭송하여 큰 손뼉을 받았다. 소설 낭송과 함께 단국대 김영준 교수의 “우리 아픔은 치유되고 있는가?”와 서울대 구인환 명예교수의 “노근리 비극과 사랑의 승화”란 제목의 평론도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소설 “노근리아리랑”을 통해서 만들어낸 “영동아리랑”을 역시 테너 문제성 씨가 열창을 해서 훌륭한 마무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설낭송회에서 소설을 낭송하는 사람들(왼쪽부터 정은용, 이동희, 박규채)     © 김영조
▲소설낭송회에서 비목, 영동아리랑을 열창하는 테너 문제성씨     © 김영조
 
“이런 얘기는 예전에 들어본 일이 없다. 처음엔 미군의 실수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직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소설 낭송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뜻은 잘 모르겠지만 그 열정과 아픔은 가슴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빨리 가해자의 진실한 사과가 이루어져 원혼들과 유족들을 달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소설낭송회가 끝난 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노근리평화인권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생인 러시아에서 온 조로토바 안나(Zolotova Anna), 산즈하이에바 사야나(Sanzhieva Sayna), 그리고 몽골에서 온 딜거 가르디(Delger Gardi)는 이렇게 말했다.
 
제1회 “노근리 인권평화 학술문화제”는 합동위령제, 소설낭송회 말고도 오는 8월 1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있을 노근리사건 관련 논문을 발표한 한국ㆍ미국ㆍ일본 학자 초청 ‘노근리 국제평화 학술대회“를 비롯하여 세계대학생 노근리 인권평화캠프, 노근리 미술작품 순회전시회, 노근리 인권영화제, 노근리 평화기원 음악회, 닥종이 공예교실, 노근리 인권백일장 및 독후감 대회 등의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소설낭송회 장면     © 김영조
 
이날 쌍굴 위의 철길에는 여전히 무심한 열차가 지나고 있었는데 억울한 원혼들이 아직 구천을 맴도는 듯 한여름인데도 합동위령제가 열리는 쌍굴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지난 1950년 7월에 벌어진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아직도 마무리가 되지 못하고, 그렇게 현장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현재진행형이었다.
 
노근리는 이제라도 가해자가 진정한 사과를 하고, 원혼과 유족을 달래는 진실한 후속대책이 이뤄져야만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직 묻혀 있는 수많은 양민학살사건도 햇빛을 보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행사 참석자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은 세계를 지도하는 인권국가답게 진정한 사과를 하라!
[대담]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 부회장

▲ 쌍굴을 가리키며 노근리사건을 설명하는 정구도 부회장 ⓒ김영조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정은용 씨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80을 넘은 고령이어서 실제 일 처리는 그의 아들인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 부회장이며, 노근리평화연구소 소장인정구도 씨가 진행하고 있어서 정구도 씨와 대담을 하기로 했다.

- 이제 노근리사건이 일어난 지 57돌이 되었다. 소감을 말해 달라.
“오늘은 특히 유해발굴 개토제를 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개토제는 지하에 묻혀있던 명예, 인권을 되찾기 위한 유해발굴을 시작하는 것이다. 또 지난 2000년 한국과 미국 정부가 공동으로 벌였던 미완의 조사, 진상조사의 핵인 유해발굴이 빠져 무의미한 조사로 그쳤던 것을 이제야 진실을 확인하고, 신원을 확인하여 진정한 명예회복으로 다가가는 일이다.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현재 유족들의 요구사항은 얼마나 해결이 되고 있나?
“그동안 한국정부는 특별법을 만들어 현장에 평화공원, 추모탑, 박물관, 합동묘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가해자인 미국은 2000년 약속했던 장학금 지급, 추모탑 건립도 흐지부지하다가 결국은 예산도 지난 연말 국고로 환수해 버렸다. 물론 합동으로 유해발굴을 하자는 제안에도 끔쩍도 안 한다. 그들 나라가 진정 세계 최고의 인권국가라면 이것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동안 미국 국내법에 의한 소송을 고려했는데 어떻게 진행되는가?
“미국 국내법상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되어 있다. 정작 소송을 한다고 해도 그들은 분명히 국익을 앞세우는 쪽으로 몰고 갈 것이고, 결국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패소하게 되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것은 물론 다른 양민학살사건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

- 미국이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전쟁에서 미군에 의해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이 200여 건이 된다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전쟁에서 피난민보다 미군에 우선한 정책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 미군의 전쟁 수행 방법이 유럽에서와 한국,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아시아에서는 다르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것은 그들의 이중적 인권정책일 수도 있다. 그런 정책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국은 우리의 중요한 협력자이다.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해서도 안 되는 서로 필요한 존재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중요한 교역대상이다. 하지만, 친구 나라의 죄없는 민간인을 죽였다면 당연히 인정해야 하고, 사후 배상은 절대 필요할 것이다. 인권은 인간의 기본적 가치임은 그들도 강조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인권에 대해서는 간섭하고, 응징까지 하는 그 미국이 한국 양민들을 학살한 것이 대해서 모른 체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구도 부회장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유족회의 중심인 부친 정은용 씨를 받들며, 어떻게 하는 것이 미국을 현실적으로 압박할 수 있을지, 무엇이 진정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인지를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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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7/28 [23: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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