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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현상, ‘하나의 삶’(une vie)의 문제
[벼리의 세상보기] 신정아의 삶은 ‘소문자의 삶’ 아닌 우리 모두의 삶
 
벼리
정의(definition)부터 내리자. ‘남한 사회는 학력사회다.’ 이보다 확실한 사실명제가 없다. 그리고 ‘남한 사회는 학벌사회다.’ 이보다 더 명쾌한 정의가 없다. 누가 반박할 것인가? 그러므로 이에 대해 중언부언하는 건 부질없다. 지겹기만 하다.
 
대신, (재미삼아라도) 이에 필적할 만한 명제를 생각해 본다. ‘자본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다,’ 또는 ‘미국은 최고 강대국이다,’ …  그런데 말이다,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를 데 없는’ 사실(fact) 자체다. 그러므로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사실이 진리인 사회가 남한 사회다. 어쩔 것인가? 반박해 보라(이쯤 되면 재미 삼는 건 물 건너간다). 내 생각에, 앞서 제시한 명제는 반박될 수 없다. 그것은 일반 명제다.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의 분석명제가 선험적(transcendental, a priori) 진리가 되는 사회라니 말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가짜 학위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 씨     © 인터넷 이미지
신정아 사건은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호들갑들 떨 필요가 없다는 거다. 무슨 큰일이나 벌어졌다는 듯이 신정아를 해부하고, 그의 이력을 들추고, 정신병자 취급하고,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저널리즘이다. 아울러 이러한 저널리즘은 편집증적이며, 가학적이고, 끝내는 체제에 봉사하게 마련이다. 
 
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저 일반명제를 거스르는 삶을 입때껏 살아왔기 때문이다. 반증인 거다(살신성인인가?). 저 일반명제가 신물이 나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고, 아무도 안 가는 지방대에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과를 자청해서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난 삶의 모든 중요한 정수(Carpe Diem!)를 맛봤다. 시인들이 많았으며, 지역 노동 운동가들이 많이 들고나는 학교였다. 책 속에 갇혀 있던 스펙타클들을 삶의 현장 안으로, 내 손을 잡고 데려다 준 선배들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가까운 대학이니 간다, 라고 건방지게 생각했던 것치고는, 운이 좋았던 거라고 밖에 달리 규정 내릴 수 없는 시절들이었다.
 
신정아 사건은 일단 이 ‘하나의 삶’(une vie)의 문제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은 이 경우에 이차적이다. 그렇다면 이 삶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는게 내 주장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사설 따위는 집어치워도 된다. 내 생각에 학력 문제에 있어서 남한 사회에 객관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첫째, 그녀의 과오는 거짓의 삶을 즐겼다는 거다. 아니,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많은 자기기만을 동원하고, 술수를 썼을 것이고, 그만큼 일에 매달리면서 실적에 집착했을 것이다. 비엔날레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것은 굉장한 기회다. 이 일을 해내는 것과 동시에 모든 구구절절, 쉬쉬하던 자신에 대한 의혹들이 잠잠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말했듯이, 능력이지 학위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이 순진한 사고방식이라니!). 그러나 이 견고한 남한 사회 학력주의가 만만한가? 천만에. 불행한 엠마(Freud)처럼 그녀는 그녀만의 사후성(Nachtraghchkeik)을 구성할 수는 있었지만, 고통스러운 각성의 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화들짝, 타자가 자신의 꿈속으로 진입한 거다. 일이 닥친 거다. 그녀에게 타자는 애초에 고분고분하지도, 낙낙하지도 않았고, 항상 ‘불안’(Angst)의 대상이지 않았을까?

둘째, 반응들. 미국으로 떠나면서, 그녀는 “고등학교 정도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가 애초에 생각했던 게 이런 것일까? 그녀는 분명 학력주의 사회의 부실한 검증 시스템을 ‘이용’하려고 했으며, 꽤 오랫동안 성공했다. 여기까지, 난 그녀를 축하하고 싶다. 체제에 엿 먹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성’이라는 기만적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가 친 부비트랩에 빠졌다는 거다. 학력이라는 부비트랩 말이다. 하긴 애초에 그녀는 투사(militant)가 아니었다.

셋째, 그녀를 가만히 놔뒀더라면 아마 영원한 예일대 출신 교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그녀 입장에서 그게 중요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처음부터 학력 따위에 엿 먹이고 시작했는데, 학교는 아무거나 괜찮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일대가 좋다, 는 거다. 다른 이유가 없다. 그게 하버드라면 달라졌겠는가? 웃기는 얘기다. 하버드든 예일이든, 미국 명문대라면 오줌을 질질 싸는 게 남한 사회 학력주의의 본질이지 않은가.
 
이 모든 것들이 심각한가하면,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건만 하더라도 다른 교수들은 신정아씨의 취임 때부터 의혹을 제기했었다. 그 의혹을 무마한 아카데미 내부의 권력도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한 전횡도 많지 않은가?
 
문제는 신정아를 바라보는 그 ‘시선’들이다. 그 시선들은 매우 관음적이다. 한편에서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악명을 부여하고, 한편에서는 그 악명에 마땅한(?) 질시를 보낸다. 그녀가 누렸던 특권들을 질투하는 거다. 아니라고? 그러면 이렇게 가정해 보라. 신정아가 그만한 특권들을 누리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고만고만한 강사 지위에서 이 사건이 터졌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분노하기보다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안 그런가?
 
따라서 이것은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다. 프로이트의 모세처럼 말이다. 이제 신정아의 삶은 소문자의 삶(une vie)이 아니라 대문자의 삶, 전체성, 우리 모두의 삶(UNE VIE)인 거다. 도처에서 ‘아버지, 잘못했어요, 아버지 잘못했어요, 그러므로 난 당신의 고기를 먹어요’라는 아우성들을 이 사건에서 듣는다면 혹, 내가 미친 것일까? -NomadIa
수유너머N에서 공부합니다.
 
기사입력: 2007/07/26 [11:29]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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