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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성인용이야!
[두부독감 16] 김점선의 《나는 성인용이야》
 
두부   기사입력  2003/07/25 [12:21]

터놓고 말하기 시작하자. 부부가 살면서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한번도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훌륭한 짝을 만나서 흠잡을 데 없이 산다고 광고하고 싶은 내숭일 뿐이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한번도 안하는 것은, 그가 성실해서가 아니라 터놓고 말할 사람이 없는 고독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기> 전문.

웃기는 인간, 김점선

화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문(愚問)임에 틀림없다. 화가는 '그림' 때문에 산다. 화가 김점선은 심심해서 온몸이 비틀려야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다. 그에게 그림이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역일 것이다. 그는 20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열 만큼 작품을 끊임없이 생산해냈다. 천상 김점선은 "그림 그릴 때 그 노동 자체를 즐기는 직업화가"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한 학기 만에 제적당했다. 그 후 매일 그림에 매달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일뿐인 것처럼." 그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경건한 예배'이자, '자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이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는 그를 '금치산자'로 취급했고, 외모도 심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지금도 자신의 머리를 직접 자르고, 아들 옷이나 남편이 남긴 옷을 입고 다닌다. 한 마디로 아무거나 걸치며 산다. 그러기에 그가 방송국에 가면 영락없이 경비원들이 제지하면서 쫓아낸다.

김점선은 웃기는 인간이다. 자신은 거지의 현생이며, 누구와도 우기며 논쟁 따윈 하기 싫어 혼자서 자유발상하며 논다. 썩은 밥을 삼켜 5박 6일 동안 독소 체험을 하기도 하고, 썩은 커피를 마시기도, 종로경찰서 화장실의 쓰레기통에 (점을 본 친구의 부탁으로) 친구의 구두를 넣고 오기도 한다. 스스로 '왕따 체질'이라고 말하고, 메신저를 해왔던 어린 아이들에게 자신은 성인용이라고 말하고 그들과 절교(?)한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가장 좋아한다. 어른들은 '고정관념 덩어리'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는 조금은 편벽되어 있는 것 같다. 아님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그 누구보다 세든가. 청탁 받은 원고를 아무렇게나 써도 뻔뻔스럽게 고치지도 않고 보낸다. 그에게는 못 쓴 글을 발표할 의무가 있단다. (사실 그의 글은 외모만큼 거칠고 투박하다. 그러면서 솔직하다) 그리고 나쁜 글이란 세상에 없고 글은 그냥 글일 뿐이라며 자신의 위무한다. 전시회를 하자든 화랑 주인이 자신의 그림을 보자고 하자, 화가 나 자리에서 일어나 냉큼 집으로 돌아온다. 개인전을 연는데 왜 화랑 주인이 자신의 작품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한 그는 앙꼬빵과 크림빵은 팥과 크림만 먹고 버리고, 곰보빵은 윗부분만 먹고 버리고, 케이크와 카스텔라도 거의 버린다. 그러나 그의 편식성은 보는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하지 않아 보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누구보다도 열정을 내비치는 모습과 그가 지금까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천진난만하게 그린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투가 민중오락이라굽쇼?

그는 그림을 그릴 적에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고정관념 깨부수기'라고 말한다. 그는 30년간 추상화든 구상화든 '사물에 대한 의식 깨부수기'를 해왔다며,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왜곡시키고 가루로 분쇄하고 융합시켜서 단순화해 버'렸다. 그가 많은 사람들과 시끄럽게 이야기하며 놀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논다고 말한 것은 그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무한정이기 때문인 것 같다. 말 그대로 그는 '혼자 논다.' 또한 그의 사전에는 화가로서의 '명성'이 등재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그에게 '명성'은 웃기는 단어다. 그는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절박한 예술가'일 뿐이다.

최근 그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 오십견(五十肩)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사방 10cm 태블릿(tablet)에 펜으로 그려낸 '디지털 화투 그림'이 그것이다. 그의 화두가 화투가 된 것은 깊은 역사를 자랑(?)한단다. 외할머니가 하루종일 가지고 논 화투는 그에게 '아름다운 놀잇감'이자,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귀중한 물건이다. 그래서 그는 화투를 '민중오락, 민중미술, 팝아트'라고 침을 튀기면서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떠들어댄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여행 가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가져가야 할 품목이라거나 화투는 "싸고 재미있고 예술적이고 아름답고 작고 가볍고 운반하기가 편하다"는 화투 예찬론으로 발전한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목단, 청단 패가 들어오면 내놓기가 싫다고 말한다.

▲ 디지털 화투그림  

각설하고, 그의 '디지털 화투 그림'은 어찌보면 생뚱맞다. 그러나 일상적이면서 때론 천박하고 부정적이기까지 한 물건을 예술로 승격(?)시킨 행위는 그의 '고정관념 깨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 책(《나는 성인용이야》(마음산책, 2003))에 들어 있는 57편의 화투 그림(화투 순서대로 1월부터 12월까지 화투그림이 있어 달력을 만들어도 좋겠다)은 기상천외하다는 말로 표현하기가 부족하다. 띠가 있는 패에는 "해라! 점선!, 해! 해! 점선, 해! 점선, 하구말구" 등과 같은 문구가 들어갔고, 광(光) 대신 '빛'으로, 네 귀퉁이에는 "건양다경, 부귀영화, 만화방창, 만수무강, 무병장수" 같은 문구가 들어 있어 극사실주의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화투는 매혹적인 '또다른 그림'임에 틀림없다. 그는 2003년 6월 '30회 개인전'을 열어 디지털 화투 그림뿐만 아니라 다른 디지털 그림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그는 관념미술로 미술계에 기린아로 등장했지만, 그의 의식에 묻어 있는 관념성은 과격하고 비약적으로 보인다. 때론 현실성이 약해 보이기도 한다. 섬약한 그의 정신은 순진성의 극단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외 장수를 보고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는다. "왜 그는 그렇게 겸손하게 말하고 그렇게 하찮은 일에 고마워하며…… 왜 반항하지 않고, 왜 자살하지 않고, 왜 동맹파업하지 않고, 왜 테러집단을 만들지 않고, 왜 마피아에 가담하지 않고…… 왜 어두워지도록 그렇게 먼지 속에 서서 경건하게 참외를 파는 겁니까? 왜 나태하고 타락하고 술 주정하지 않고……."

덧붙임 : 기상천외한 김점선의 '디지털 화투 그림'을 보고 싶으신 분은 스타타워 갤러리(http://www.startowergallery.com)에서 2003년 6월 27일부터 8월 23일까지 <김점선 展>이 열리고 있으니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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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7/25 [12:2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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