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의 초록세상 만들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대학 중앙도서관과 스타벅스 공존의 풍경
[비나리의 초록공명] 스타벅스의 공간 구조는 한나라당 지지로 이어져
 
우석훈   기사입력  2007/07/07 [11:55]
도서관이라는 장소는 때때로 미스테리에 가득 찬 공간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장미의 이름>의 음모가 진행되는 그 공간도 바로 도서관이다. 유학 가기 전 4년 동안 주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을 이용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장길산과 지리산을 비롯한 소설들을 읽을 때 영문학과의 어떤 여학생하고 나와 읽는 패턴이 같았기 때문에 상당히 괴로웠던 기억이다. 공교롭게 7권짜리 책들이 연타로 내 바로 앞에 빌려가서 몇 주 동안 동동거리다가 결국 지리산은 3, 4권을 뛰어넘었다.

요즘도 '중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정치적 의미의 중도라는 단어보다는 중앙도서관이 먼저 연상된다. 나도 상당한 중도파인 셈이다.

90년대 중반에 연대 중도에 갔다가 책들이 전부 토플책과 고시용 수험서로 바뀐 걸 보고 기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 그 어느 곳 중앙도서관을 가봐도 이런 나라는 없다.

굳이 책을 빌리지 않을 때에 주로 갔던 곳은 신학대 도서관이었다. 천정에 있던 도서관은 창문이 위로 달린게 있어서 담장이 넝쿨이 지나가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정말 장관이다. 에드가 알렌포우나 드라큐라 시리즈를 읽으면 기분이 딱이다. 미학 공부하던 시절에 리얼리즘 미학책들은 꼭 이곳에서 읽었었다.

유학 간 다음에는 가끔  퐁피두 도서관과 파리 기숙사촌에 있던 씨떼 도서관과 가끔은 경영학 위주로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파리제9대학 도서관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10대학 도서관에서 살았다. 저녁에는 경제학과에서 밤늦게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조그만 강의실 하나를 개방해주었는데, 경제학동 수위가 엑셀을 산 다음부터는 나에게 아주 잘해주었다. 건물 앞에 검은 엑셀을 세워놓고 수위는 마치 외제차를 애지중지하듯이 매일 털걸래로 닦았는데, 선글라스 낀 수위아저씨의 위풍당당이 장난 아니었다. 학생들끼리 게슈타포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그래도 이 수위 아저씨가 나 혼자 남아도 내쫓지 않고 몇 년간 참 친하게 지냈었다.

파리 10대학 도서관은... 다른 건 모르겠는데 경제학만큼은 세계 최고였던 것 같다. 나중에 런던 비지니스 스쿨 도서관이나 영국의 유명한 대학 도서관에서도 몇 주씩 공부했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도서관만큼은 파리 10대학 도서관이 최고였다.

2층으로 된 아주 넓은 건물에 한 쪽 방은 철학과 사회학과 같은 인문학과 법학, 정치학이 같이 있었고, 그만한 또 다른 방에는 경제학과 통계학이 한 방을 구성하고 있다. 완벽한 개가식 도서관인데, 나란히 서 있는 책장들 틈틈이 책상이 몇 개씩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4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은 혼자 앉을 정도로 한산했다. 주제별로 잘 분류가 되어 있는데, 특히 기본 배치가 학과 수업 위주로 되어 있어서 그날 필요한 자료들은 한 칸에서 처리될 수 있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한 번에 한 칸에 있는 스무권씩 옆에 쌓아놓고 읽더라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김일성 전집도 별도로 한 칸을 가지고 있었고, 생시몽도 한 칸, 프루동도 한 칸이었다.

1층으로 내려오면 저널과 잡지가 모여있는 아주 넓은 홀이 있는데, OECD 자료칸에는 국가별 보고서가 마치 편지함처럼 국가별로 나란히 디자인되어 50칸 정도가 있고, 이 칸마다 매년 나오는 OECD 국가보고서가 연도별로 모아져 있다.

물론 모든 자료가 10대학 도서관에 다 있는 건 아닌데, 사서에게 신청하면 사서가 자존심을 걸고 구해다준다.

"구하실 수 있겠어요?"

독일이나 프랑스가 구현하고 싶던 사회주의 요소를 가미한 자신들의 경제 시스템을 지키는 사람들이 바로 사서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사람들 덕분이다. 자료를 구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이 전문 사서들은 가장 좋아한다. 꼭 필요하다는 눈빛이면 대충 충분하다.
 
"물론이지요, 제가 이런 일 하라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 번은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에서 낸 보고서가 급히 필요해서 부탁을 했는데, 보너스로 관련된 보고서 몇 권까지 같이 빌려주면서 덤으로 보고서 몇 권은 선물이라고 주었다. 감동적이었다.
 
92~93년도에는 19세기 이전에 나온 책들을 위주로 읽었는데, 복사가 금지되어 있는 고서적들을 뒤지면서 메모할 때의 뿌듯함은 도대체 왜 내가 태어났는지를 스스로 납득하기에 충분했었다. 개가식 도서관이라도 책 한 권에 천 불은 족히 넘어갈 고서적들은 따로 신청을 해야 나온다. 물론 그날 보고 다시 돌려줘야 하지만, 전설로만 내려오던 가브리엘 따드의 경제학에 관한 책이 정말로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희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요즘은 서울대 중앙도서관을 가끔 이용하는데, 별로 마음이 편해지는 곳은 아니고, 특히 사서들이 무섭다. 책을 빌릴 때마다 학생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라는 시선으로 위아래를 스캐닝 하듯이 쭉 훝는데, 꽤 많은 나라의 도서관들에 여권 하나 들고 종종 가봤어도, 다만 책을 빌린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이렇게 고깝게 쪼개는 사서들이 있는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사서들 눈치가 워낙 무서워서 어지간해서는 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끔 가게된다. 저들은 왜 나를 이렇게 갈구는가라는 고민을 좀 해봤는데, 내가 찾은 답은, 그들은 전문사서가 아니었다는게 내가 찾아낸 이유이다. 진짜로 그럴까? 양복 입고 가면 좀 나을까? 그래도 사서들 무섭다고 갑자기 넥타이를 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운찬 총장이 떠나기 전 마지막 해에 이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인테리어 공사한다고 한참 학기 중에 리노베이션을 이유로 도서관 문을 닫아버렸는데, 항의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보였다.
 
도서관이 매우 인상적인 도시는 스위스 쮜리히였는데, 이곳에는 도서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 시스템이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에게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엄청난 문화 충격을 준 것도 쮜리히의 도서관 사서들이었다. 여기는 큰 도서관이 있지는 않은데, 특화된 전문적 도서관이 어림짐작으로도 100개가 넘는 것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그야말로 4만불 국가인 스위스를 만들어낸다. 아인슈타인도 이 시스템이 배출했고, 로자 룩셈부르크도 바로 이곳에서 배출된 사람이다.
 
도서관은 정말로 책 빌리는 곳이고, 쮜리히 공대의 복도에 서로 모양과 색깔이 다른 책상과 의자들이 코너마다 배치되어 있고, 스무살 안팍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앉아서 나름대로 뭔가 읽고 있는 모습은... 이곳이 선진국이라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내가 갔을 때는 방학 중이었는데, 꽤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있었다. 학생들이 주로 읽는 책들이나 자료들을 살짝 훝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와 뭐가 다른지를 알기에는 충분하다. 저렇게 편한 책상과 의자들을 복도에 놓아주면 나도 저기 앉아서 책 읽을 것 같다.

스타벅스가 들어와 있는 우리나라 대학의 공간들과 도서관 시스템은 끔찍하기는 하다. 이런 공간구조를 해놓고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제 정신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 그 공간 기획자들이 대체 어떤 사람들이던가. 그야말로 '적들의 음모'이고, 흉악한 괴한들의 잔혹극이 아닐 수 없다. 저 공간에서 숨을 쉬고 화장실도 가고, 커피도 마시고 있으면서 결국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게 된다면 이상할 것 같다.
 
파리 10대학 도서관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가 이제는 10년도 넘는다. 그래도 그곳에서 정말 몇 년간 아무 생각없이 책만 읽던 순간들이 잘 잊혀지지는 않는다. 하루에 내 손을 스쳐갔던 책들이 스무권이 넘었는데,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이런 공간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부 보겠다"는 황당하고 야무진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껍데기는 전부 봤다"는 얄량함으로 다 읽을 수 없던 아쉬움을 대신했다. 그래봐야... 하드커버에 껍데기를 벗긴 책들이라 몇 장은 넘겨봐야...
 
덧글) 요즘 책을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고 표지 디자인이나 글자체에 신경 써야하는 출판 문화가 여전히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단테의 <신곡>이 표지가 멋져서 사람들이 읽는거야? 로자 룸셈부르크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챙겨들고 갔던 가방에 파우스트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7/07/07 [11:5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독자 2007/07/07 [23:28] 수정 | 삭제
  • 마지막 덧글에 '아테의 '은 단테의 의 오자인 듯 합니다.
  • 지방대생 2007/07/07 [18:10] 수정 | 삭제
  • 연세대 이사장으로 호통치고 다니는 방우영 좃선일보 명예회장에게 바꿔달라고 해. 괜히 국고 낭비할 생각말고..

    어케 윤동주 시인을 배출한 연희전문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좃선의 방우영 일가를 이사장으로 앉힐 수 있남? 멍청한 연새대생 같으니라구..
  • 연세대생 2007/07/07 [17:31] 수정 | 삭제
  • 도서관을 바꿔 주세요...


  • neung1an 2007/07/07 [14:36] 수정 | 삭제
  • 정원식이 달걀 세례를 받은 것 말이예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로 그 사건이...
    이 땅의 대학이 지니는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터닝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군요...
    그 당시에... 김지하두 크게 한 몫... 거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훌륭한 퍼포먼스였죠...
    그때를 곰곰 돌이켜보면...
    바로 그 사건이...
    벌써 오늘날 이 땅의 대학들을 충분히 예고하구 있었던 것 같군요...
    아직두 정원식은 '실세' 교육부 장관이구요...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이를테면... 정원식의 그늘 아래에 놓여있는 셈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