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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대통령 만들기, 9부능선까지 갔었다"
한겨레 설문조사, 한나라당이 기업에서 대선자금 더모아
 
윤익한   기사입력  2003/07/21 [17:40]

굿모닝시티 윤창열 사장의 정치권 불법로비 의혹을 담은 '윤창열게이트'가 정가의 화제로 등장한 가운데, 정대철 민주당 대표가 윤씨로부터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밝힌 데 이어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대선자금 공개를 두고 논란이 일면서 정국이 일시에 긴장되고 있다.

논란은 동아일보가 7월 16일 여권 실력자들이 윤창열씨로부터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실명보도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동아일보 보도에 거론된 정치인들이 이를 강하게 부인, 동아일보를 상대로 수 십억원 대의 소송을 건 상태이고, 한나라당은 겉으론 강하게 비난성명을 내면서도 내부단속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최근 윤씨가 정치인 수십 명을 상대로 거액을 뿌렸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한나라당 의원 중 상당수가 윤씨의 리스트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7월 20일자 기사, 대선자금 관련 기업인 설문조사     ©한겨레홈페이지
그 와중에 한겨레가 7월 20일 '대선자금 관련 기업인 설문조사'를 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겨레가 지난 20일 10개 그룹 고위임원 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자금 관련 기업인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대선 당시 한나라당에 더 많은 정치자금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는 조사대상에 삼성·엘지·SK·현대차·KT·한화·두산·효성·동양·코오롱 등 20대 그룹 중 10곳의 구조조정본부 고위 임원이나 계열사 사장 중 한 명씩이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여야간 공방이 치열한 대선자금 문제를 제공자 쪽인 기업인들은 어떻게 보는지 살펴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게됐다고 밝혔다.

[참고기사] 박순빈 기자, "지난해 대선자금 한나라당에 더 많이 줬을 것", 한겨레

조사에서 기업인들은 '대기업들의 대선자금이 여야 중 어느 쪽에 더 많이 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명이 한나라당을 꼽았고, 3명은 ‘여야가 비슷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이 더 많았을 것이라는 응답은 없었다. 조사 결과에 대해 응답자 대다수는 “대선 8∼9부 능선까지는 모두들 ‘이회창=대통령’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5대그룹의 한 임원은 “민주당의 경우 처음에는 열심히 기업들을 찾아다녔지만 모금 실적이 신통치 않다가, 마지막에는 돈이 쏟아졌고, 선거일 임박해서는 골라서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기업들의 대선자금 제공 이유에 대해 9명은 ‘정치권의 요구와 나중에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는 보험가입 성격이 반반’, 1명은 ‘정치권의 요구’ 때문이라고 답했다. ‘자발적’이라는 응답은 한 명도 없었다.

조사에서 기업들의 대선자금이 현행 법정한도 안에서 제공됐을 것이라는 응답은 3명에 그친 반면, 법정한도를 넘어 음성적인 제공도 많았을 것이라는 응답은 7명이나 됐다. 5대그룹의 한 임원은 “법정한도 내의 정치자금보다 음성적으로 제공된 돈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고, 10∼20대그룹의 한 임원은 “규모가 큰 그룹일수록 음성적 선거자금 규모가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16대 대선자금으로 5대그룹의 경우 10억 원씩 총 70억 원을 모금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사실일 것’이라는 응답은 2명에 그친 반면 8명은 ‘민주당이 실제로 받은 돈은 더 많았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여야 대선 자금을 함께 공개해 검증을 받는 방안에 대해서는 9명이 깨끗한 선거를 통해 기업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고, 별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응답은 1명이었다.

이는 대선 당시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적은 정치자금을 기업들로부터 받았을 것이라는 예측에도 불구, 민주당에 들어간 돈이 합법적인 수순과 금액이 전달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여야의 대선자금 공개검증 방안도 결국 정쟁의 수단으로 그칠 뿐,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 없이 '양심선언' 수준의 공개는 정당이나 기업 양측 모두에게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점도 시사하고 있다.

응답자들은 이런 맥락에서 돈 안드는 선거와 정치자금 투명화를 위한 방안으로 정당구조 개혁,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와 직능대표 도입 등 국회의원 선거제 개선, 정당 선거자금에 대한 회계법인의 감사 등을 제안했다.

한겨레의 이번 조사는 한나라당이 대선자금 공개문제를 민주당만의 문제로 국한시켜 정쟁화 하려는데 대해 정치자금 제공자 측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한나라당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준 셈이다.

따라서 7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자금의 전모를 양당이 함께 공개하자고 한 제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여론을 무시하고 이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일단 정대철 대표가 연루된 윤창열게이트로 촉발한 사건이어서 야당을 빗나간 측면이 있다는 점, 또 결국 정치자금은 어느 정당이든지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것인 점 등으로 볼때 한나라당이 이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대선자금 공개에 대한 목소리는 숱한 의혹과 양측의 공방만 남긴 채 정치권과 재계, 검찰이 합의하에 관련 당사자들을 사면하는 성격으로 넘어가, 진실규명은 다음 기회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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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7/21 [17:4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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