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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 : 한국인의 범주화 기질과 본질주의 성향
[강준만의 세상이야기] 조승희 사건에 대한 한국의 과민반응과 내면심리
 
강준만
조승희 사건에 대한 한국의 과민반응1)

한국 사회는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한국 문제’로 여기는 과민반응을 보였다. 한국과 미국은 이른바 혈맹(血盟)을 넘어 이미 한 몸이 된 걸까?

대통령 노무현의 세 번에 걸친 애도 표시는 약 4년 전 그가 미국 뉴욕 피에르호텔에서 가진 미국 내 친한(親韓) 인사 모임인 ‘코리아 소사이어티’ 초청 연설 말미에 “미국과 여러분이 한국을 도와줘야 한다”는 말을 다섯 차례나 반복해 강조하면서 “만약 53년 전 미국이 우리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던 걸 연상시켰다.2) 물론 모두 나라를 생각하는 깊은 뜻에서 한 일이요 말이겠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엔 충분했다.

정부는 마치 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정부 차원의 조문 사절단을 보내는 방안까지 적극 검토했지만, 이는 미국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3) 주미 대사 이태식은 “한국 대신 사죄를 표한다”고 했고 “슬픔을 나누고 자성하는 뜻에서 32일 동안 금식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4)

언론도 다를 바 없었다. 집요하게 반복되는,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은 잘못이 없다거나 무관하다는 너무도 뻔하고 당연한 답을 얻어내기 위한 구걸식 또는 강요식 질문은 보기에 민망했다. “송구한 마음으로 애도합니다”라는 신문 사설도 그랬고,5) 소설가 이문열이 때마침 미국 보스턴에 있다는 이유로 그의 ‘조승희 범죄 분석’을 1면 머리기사로 다룬 것도 그랬다.6)

그간 나온 분석들은 한국인의 유별난 민족주의·집단주의·숭미주의 등에 그 원인을 돌렸다. 상당 부분 동의할 수 있지만, 좀더 정교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범주화 기질

한국 사회의 과민반응에 대해 ‘과잉 민족주의’7) ‘천박한 민족주의’8) ‘집단적 죄의식’9) 증후군 등의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과연 그런가? 민족주의와 관련은 있지만 민족주의가 원인은 아니다. 한국인의 세상에 대한 인지 방식의 독특성에 주목하는 게 문제의 핵심을 짚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인은 범주화 능력이 매우 탁월한 사람들이다. 그 능력은 기질로까지 발전했다. 이는 불확실성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상대방의 나이, 고향, 출신 학교 등 신상명세에 대해 매우 궁금해한다. 그런 기본적인 정보로 상대방을 어떤 범주에 귀속시키지 않으면 불편해하다 못해 불안 증세마저 보인다.

그런 기질엔 명암이 있다. 일을 처리하거나 인간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신속을 기할 수 있는 반면, 편견과 ‘편가르기’가 발휘되는 토양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속도에 대한 숭배는 체질로 굳어졌기 때문에 그 어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 ‘범주화 게임’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그런 독특한 기질을 갖게 된 건 인구의 사회문화적 동질성, 1극 집중 구조, 높은 인구밀도 때문이다. 이는 달리 ‘구별짓기’를 할 게 없다는 걸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무의미하다고 보는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를 진지하게 따지는 게 가장 성행하는 나라가 일본과 한국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럽게 ‘구별짓기’가 안 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구별짓기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욕망이 ‘범주화 게임’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그 어느 범주(편 또는 패거리)에도 속하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간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정규직과 프리랜서에 대한 지독한 차별도 바로 그런 문화의 산물이다.

지난해 7월 MBC <PD수첩>이 ‘피랍 100일, 동원호 선원들의 절규: 조국은 왜 우리를 내버려두는가’를 방영하려고 하자, 미리 내용을 파악한 외교부는 MBC에 공문을 보내 “일개 프리랜서인 김영미 PD의 검증되지 않은 취재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문화방송의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에 비추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10)

MBC의 정규직 PD는 믿을 수 있어도 ‘일개 프리랜서 PD’는 믿기 힘들다? 외무부 해외공관 직원들은 모두 정규직이라서 그렇게 자국민 보호에 무성의한 사건들을 수시로 일으키는 건가? 이런 발상이라면, 전 공무원의 비정규직화를 시도해야 비정규직과 프리랜서의 권리가 최소한이라도 보호받을 수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디에 소속되었느냐 하는 범주를 따지길 좋아하는 한국인의 습성은 ‘민족주의’ 이전의 것이다. 비슷한 참사가 국내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이 범인의 출신 지역과 학교를 안 따질 것 같은가? 무슨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거의 본능이다. 물론 나쁜 뜻이 가미될 때도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 소설가 박상우의 다음과 같은 증언을 들어보라.

“처음 중국계 유학생이라고 발표되던 당시 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중국 사람들을 거칠게 힐난하고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범인이 조승희이고 그가 한국계라는 게 밝혀지자 온 나라가 애도와 공범의식에 휩싸여 급기야 주미 한국 대사가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단식을 제안하기까지 했다.”11)

이는 집단주의와 비슷하지만 집단주의는 아니다. 한국인은 강한 집단주의 기질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집단 이익보다는 개인·가족 이익을 앞세운다. 반쪽짜리 집단주의라고나 할까. 이는 서양에서 개발된 ‘개인주의-집단주의’ 모델로는 포착이 안 되는 한국적 특성이다.
 
한국인의 본질주의 성향

한국인들의 집단주의·민족주의가 강하다고 하지만, 집단·민족에 대한 충성도는 높지 않다.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경우에만 충성할 뿐, 이익에 반할 경우 언제든 걷어찬다. 충성도는 낮은 반면 범주에 대한 인식도만 높을 뿐이다. 즉, 세상에 대한 인지 방식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인의 ‘냄비근성’이라는 것도 실은 ‘인지’와 ‘충성’ 사이의 괴리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조선일보의 조승희 씨 관련보도. 사건의 배경이나 사회적 문제는 도외시 한 채 희대의 살인마로 묘사하고 있다.     ©조선일보 4월 20일자 PDF

한국인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인 동시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개방적이다. 모순인가? 그렇지 않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이다. 아는 사람에겐 정(情)이 철철 흘러넘치지만, 모르는 사람에겐 필요 이상으로 쌀쌀맞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한 면을 보고 한국인을 단정짓는 건 무리다. 한국인의 집단주의․민족주의가 강하다는 속설도 바로 그런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한 것이다.

왜 이민 1.5세대를 한국인으로 보는가? 범주화 기질에 따라붙기 마련인 본질주의 성향 때문이다. 한국인의 천성이 된 연고주의도 바로 그런 본질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연고를 본질로 보고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글도 한국인이라는 본질이 있는 것처럼 간주한다는 점에서 본질주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지만, 이는 논의를 위한 전략적 본질주의로 봐주면 좋겠다.

지방에선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곧잘 벌어지는데, 그게 바로 ‘피’로 소속을 따지는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다른 지역도 비슷하지만, 전북을 예로 들어보자.

이 지역 언론사나 공공단체에선 무슨 ‘자랑스러운 전북인상’을 주는데 그 자격 요건 중의 하나가 ‘본적’이다. 즉, 본적이 전북이라야만 그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미 전북에서 수십 년을 살았고 전북에서 죽을 사람이라도 아버지 고향이 전북이 아니면 그 사람은 ‘전북인’이 아닌 반면, 전북에서 성장하기는커녕 태어나지 않았을지라도 아버지 고향이 전북이면 그 사람은 전북인이다. 전자는 상을 받을 자격이 없어도 후자는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2006년 6월 30일 밤 전북 지역 민방인 JTV 뉴스를 보다가 재미있는 게 나와 메모를 해두었다. 생존 중인 역대 도지사 12명 중 1명만 전북에서 생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퇴임하는 도지사 강현욱이 전북에서 살겠다고 공언한 걸 높이 평가하면서 그간 역대 도지사들이 고향을 등져와 소외감을 낳았는데 ‘신선’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 전북의 문화나 정서로는 전북에서 살지 않는 그 11명의 도지사들이야말로 (그들이 모두 전북 출신이라면) 진짜 전북인이다. 전북의 뼈대 있는 집안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지방에선 매사가 이런 식이다. 솔직히 징그러울 정도다. 민주주의? 웃기는 이야기다. 선거 백날 해봐야 그런 ‘징그러움’이 없으면 깨끗하고 유능한 사람 죽어도 안 된다. 막강 연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굳이 좋게 말하자면, ‘연고 민주주의’다.
 
죄의식인가, 이기심인가?

한국인의 그런 일상적 삶의 태도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과 연고 패거리의 이익 중심이라는 점에서 집단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물론 이것도 집단주의로 볼 순 있겠지만, 전체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게 일본의 집단주의와는 다른 한국적 집단주의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한양대 교수 임지현의 다음과 같은 분석엔 다소 이의가 있다.

“지난 일주일간 극에 달한 한국인들의 ‘집단적 죄의식’은 사실상 모든 한국인은 희생자라는 집단적 희생자 의식의 신화가 무너진 데서 비롯된 정신적 공황의 산물이다. 희생자의식은 해방 이후 남과 북에서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국가적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민족주의의 권력 논리를 정당화해왔다. ‘한국인’이라면 국가의 부름에 응해 기꺼이 개인을 버리고 민족주의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채 자발적 동원체제에 호응하곤 했던 ‘대중독재’의 집단 심성이 얼마나 끈질긴가를 이번 소동은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는지 모른다.”12)

물론 이 주장의 선의엔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대중독재’와 연결시키는 건 무리다. 오히려 소설가 이기호가 다음과 같이 서글픔을 토로한 게 가슴에 더 와 닿는다.

“나는 좀더 솔직하게 묻고 싶다. 이것이 진정 책임감과 죄의식의 문제인가? 그도 아니면, 비자 문제나 반한(反韓) 정서, 대미 관계에 미칠 악영향으로 인한, 어떤 두려움과 불안 때문인가? 혹,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책임감이나 죄의식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진정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죄의식의 산물이라면, 왜 그 다음날 이라크에서 일어난 참상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은지, 나는 궁금하다. 아니, 궁금하지 않다. 나는 다만 서글플 뿐이다. 죄의식 또한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이 존재하고, 그 저울이 지극히 힘의 논리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는 것 같아, 그저 서글플 뿐이다.”13)

이번 사건에 대한 과민반응이 애국·애족심 때문이었을까? 그런 점도 없진 않겠지만, 이미 모든 국면에서 미국화된 한국 사회의 미국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걸 웅변해주는 걸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막연한 숭미주의를 넘어서 미국에서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가 나와 내 가족의 실질적인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게 옳다는 것이다. ‘미국 유학 10만 명 시대’와 최근의 ‘토플 광풍’이 말해주듯이, 이제 서울에선 국내 지방 도시보다는 미국의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한미 FTA 추진의 과정과 절차가 ‘통상독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반민주적 작태로 일관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인의 집단주의·민족주의 비판은 필요하거니와 바람직하다. 그러나 나의 ‘범주 집단’은 알뜰하게 챙기고 관리하면서 그런 비판을 하는 건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징그러울 정도로 자기 편(패거리)만 챙기는 한국 엘리트들의 행태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게 오히려 문제의 본질에 근접하는 길이 아닐까?
 
범주화 기질은 공정성을 죽인다

한국인은 범주화 기질 때문에 공정성에 매우 취약한 국민이다. 개인별 평가보다는 이른바 ‘범주 등급제’가 제공해주는 과정·절차 축소의 비용절감 효과를 더 높이 평가한다. 사람들이 ‘명문 학교’에 미쳐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이건 기업이건 응시자들의 자질과 능력을 성의 있게 살펴보려는 생각이 없다. 그렇게 하면 비용이 높아진다는 점을 걱정한다. 출신 학교로 때려잡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 믿고, 비밀리에 각종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그런 체제하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간판’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습속을 키워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젠 이 사실을 미국 <뉴욕타임스>도 알아버렸다. 이 신문은 조승희 가족이 살던 버지니아주 센터빌의 한인 사회에 대해 보도하면서 “이 지역의 한인 교포 신문들은 아이비리그 합격자들의 명단을 게재한다”고 소개한 뒤 “조씨의 누나는 프린스턴대에 합격했을 때 이 명단에 들었지만 조씨는 이 명단에 들지 못했다”며 한인 사회의 분위기상 조승희가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14) 이 기사는 좀 ‘오버’한 것 같으나, 가슴 아픈 이야기인 건 분명하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는 게 이민 생활의 가장 큰 보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역설이지만, 한국인의 지극한 ‘간판 사랑’이 한국 경쟁력의 한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지적했듯이, 과정과 절차를 줄여주는 비용절감 효과 때문이다. 물론 그 대신 공정성은 없다. 잘 되는 놈은 계속 잘 되고, 죽는 놈은 계속 죽어라 한다.

2007년 4월 23일 KBS 1TV의 <시사기획 ‘쌈’>은 ‘80조 보험시장, 유혹의 덫’을 방송했다. 보험사들이 가입자들을 봉으로 아는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한 네티즌의 다음과 같은 소감이 가슴을 쳤다.

“보험 관련 상담전화를(말이 상담이지 거의 민원이다) 금감원에 하면 각 보험사에서 나온 파견 직원과 연결이 된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 울 부부 요즘 건강보험 가입하려 여기저기 가입설계서 보고 있는 중인데 ... 가입의지 완전 소멸!! 얼굴 벌겋게 있는 내 옆의 울 남편 왈 ‘한국이잖아~’”

그렇다. 여긴 한국이다.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하다. ‘특권’이 있어야 산다. 한국은 보험대국으로 컸지만, 억울한 사연을 가진 가입자들의 분노의 함성은 하늘을 찌른다. 언론이 잘 보도해주지 않으니 이 기막힌 판을 뒤엎을 길도 없다. 그냥 무슨 무슨 ‘대국(大國)’ 만들기 위해 ‘봉’이 돼주는 거다. 내가 앞서 지적한 ‘경쟁력’의 이면이다.

개인을 개인으로 보자

평소 삶은 개인주의적으로 살되 사회적 문제의 해결은 집단주의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그게 뒤바뀐 감이 없지 않다. 삶은 집단주의적으로 살면서 사회적 문제의 해결은 개인주의적으로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대학입시 전쟁’은 사회적 문제의 개인주의적 해결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습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일 것이다.

이는 한국의 개인주의가 개인의 존중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하면 니가 출세해라”라는 식의 자구(自求) 전략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근현대사가 “세상엔 도둑놈과 강도 천지이며 믿을 건 나와 내 가족밖에 없다”는 걸 모든 국민에게 풍부한 시청각 자료로 교육시켜온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은 바로 이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방식에 크게 의존하였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회 각 분야의 힘을 가진 기득권 세력은 그 방식을 고집하면서도 그것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익을 위해서라고 굳게 믿게 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체제하에선 집단주의마저도 상징적이거나 도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도 엄밀한 의미의 개인이 아니라 가족으로서의 개인이다. “한국 사람들은 가족 내에서는 서열을 엄청나게 따지고, 집단주의 문화를 보이지만 사회에 나오면 공중도덕 의식이 없고 사회의식이 약하다”는 지적도 바로 그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15)

‘개인’을 주장하는 담론이 풍성해진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추상으로서의 개인 예찬을 아무리 해봐야 참된 개인주의는 결코 융성해지지 않을 것이다. 어느 세미나에 나가 집단주의를 비판하고 개인주의를 역설한 지식인이 그날 밤 동창회에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건 예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상식에 충실한 모습이다. 낮에는 ‘개혁’과 ‘진보’를 외치다가도 밤에는 동문 모임에 나가 초당파적 학연 결속을 다지는 것도 일탈이 아니라 미덕으로 통용되는 게 한국 사회인 것이다.

뇌관을 건드려주려면 추상보다는 구체를 지향해야 한다. 적어도 ‘개혁’을 외치려면 모든 연고를 배격해야 한다. 그러나 연고에 의존해야만 개혁을 외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게 가능하니, 이 또한 하나 마나 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역사를 공부하는 매력의 또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긴 호흡! 길게 보는 것이다. 참된 개인주의의 이상에 충실하면서 집단적 대응의 방법론을 몸에 익히는 건 오랜 시간과 더불어 인내와 공부가 필요한 일이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 공부가 필요하다. 너무도 비슷한 일들이 너무 자주 반복되고 있다는 데에 깜짝 놀라면서 무언가 배우는 게 꼭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개인을 개인으로 볼 수 있는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런 노력을 효율성 운운하는 담론으로 누르면 안 된다. 그런 공정성이 확보돼야 한국인은 기존 ‘범주화 게임’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간판’이 아니라 ‘개인’으로 볼 때에, 공정 경쟁도 가능해지고 진정한 실력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참고문헌]

1) 이 글은 『한겨레』 2007년 4월 30일자 칼럼과 월간 『인물과사상』 2004년 8월호에 게재된 「한국 ‘개인주의’의 역사」의 일부를 재활용해 쓴 것입니다.

2) 김정훈, 「[노 대통령 방미] “미국이 한국 도와줘야” 다섯 차례 반복」, 『동아일보』, 2003년 5월 13일.

3) 정용환, 「조문사절 사양한 미국 “이민자도 미국인… 한국이 나서면 곤란”」, 『중앙일보』, 2007년 4월 19일, 2면.

4) 이제훈, 「“자성의 뜻으로 32일간 금식하자”: 이태식 주미대사 추모예배 발언」, 『한겨레』, 2007년 4월 19일, 9면.

5) 「송구한 마음으로 애도합니다(사설)」, 『국민일보』, 2007년 4월 19일, 22면.

6) 배영대, 「보스턴 거주 소설가 이문열 ‘조승희 범죄’ 분석」, 『중앙일보』, 2007년 4월 20일, 1면.

7) 김광호·박영흠, 「미(美)도 놀란 한국의 집단 책임의식」, 『경향신문』, 2007년 4월 21일, 1면.

8) J. 스콧 버거슨, 「한국인들의 지나친 ‘한국 걱정’」, 『조선일보』, 2007년 4월 21일, A31면.

9) 임지현, 「‘집단적 죄의식’ 증후군」, 『조선일보』, 2007년 4월 24일, A35면.

10) 김미영, 「“독립 피디 저널리즘 침해” 논쟁 불붙어」, 『한겨레』, 2007년 4월 12일, 21면.

11) 박상우, 「총기참사, 한국인의 잘못된 관점」, 『경향신문』, 2007년 4월 26일, 26면.

12) 임지현, 「‘집단적 죄의식’ 증후군」, 『조선일보』, 2007년 4월 24일, A35면.

13) 이기호, 「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서글픔」, 『한국일보』, 2007년 4월 24일, 38면.

14) 장인철, 「“명문대 집착이 전인교육 망쳐”: 미(美) 언론, 아시아계 자녀교육 도마에 올려」, 『한국일보』, 2007년 4월 24일, 6면.

15) 탁석산의 말; 탁석산·조긍호, 「대담서평: 『한국인 이해의 개념틀』로 나눈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대화」, 『교수신문』, 2003년 5월 5일, 9면.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www.inmul.co.kr) 2007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이며, 출판사의 허락하에 전재합니다.


기사입력: 2007/05/22 [18:3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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