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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이 앗아간 사진작가 렌즈에 담긴 평화
[사람] 국보법 위반 구속 이시우 작가 부인 김은옥씨가 말하는 '이시우'
 
박지훈   기사입력  2007/05/10 [01:03]
“남편이 사회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결혼 후 아이가 생기고 가정을 책임 질 시기가 오면 생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왔어요.(웃음) 이젠 남편이 내미는 월급봉투가 아니라 평화와 통일운동에 역량을 쏟고 거기서 맺는 열매를 보길 원해요. 저요? 저는 그 부분(평화)엔 역량이 없으니 이전에도 그래왔듯이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야죠(웃음)”
 
8일 기자와 만난 사진작가 이시우씨 부인 김은옥씨가 풀어 놓은 소박한 꿈이다. 그러나 김씨의 소망은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대한민국 땅에선 결코 소박하지 않다. 이 작가는 현재 국가보안법 5조(반국가단체 자진 지원 등)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 구치소에 수감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이시우씨 부인 김은옥씨. 8일 기자와 만난 김씨는 남편 구명 활동을 위해 강화도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며 빠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도 마포구에 위치한 '통일맞이' 방문으로 시간이 촉박해 인터뷰는 전철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5호선 애오개 역에서 인터뷰 말미에 찍은 모습. ⓒ 박지훈/에큐메니안
 
이 작가는 인터넷 신문 <통일뉴스> 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주한미군 화학무기 배치현황 등 미군기지 정보를 조총련 등에 유출했으며, 간첩단에 연루된 의혹을 받아온 해외인사 및 민간 통일단체 간부 등과 접촉하며 관련 자료를 공유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시우 작가 국보법 위반 혐의 구속, 이 작가와 부인 “당국 허가 아래 취재” 반박
 
그러나 이 작가와 부인 김은옥씨는 당국 허가 아래 취재를 했다며 관련 혐의를 반박했다. 김씨는 “남편은 비무장지대, 미군기지, 대인지뢰 등을 당국 허가 아래 찍었다”며 “허가 해준 관계자들도 다 말할 수 있다. 현재 반박자료를 준비하고 있으니까 재판정에서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남편이 찍은 미군기지 시설 등은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누구라도 볼 수 있다”며 “당국은 이런 정보를 관행적으로 군사기밀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접근 자체를 봉쇄코자 냉전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아울러 “10여 년 전에 찍었던 사진을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도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라며 “남북 노동자가 만나 함께 축구를 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매일 왕래하는 시기에 남편 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김씨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강화도 자택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며 이 작가 구명을 위해 팔방으로 뛰고 있다. 그는 “남편은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전쟁 상징물을 찍고 표현했어요. 16년 동안 오직 평화를 위해 활동하다 보니 가정 생활고는 쪼들릴 대로 쪼들렸지만 언젠간 좋은 날이 올 것이란 꿈을 갖고 살았다”며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믿기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뢰밭에 직접 들어간 것이 군사시설보호법 위반이라고 하는데 지뢰밭이라는 표식이 전혀 돼있지 않고, 미확인 지뢰지대이기 때문에 이는 국가에 먼저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특정재래식금지협약에 정확이 나와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상징하는 무기를 찍는 것은 역설적으로 평화를 표현키 위함입니다. ⓒ이시우 작가 제공
1월27일 강화 자택 압수수색, 필름 2천여 통 및 부인과 아들 물품까지 압수
 
이 작가 가족은 지난해 2월10일 서울에서 강화도로 이사 했다. 생활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남편이 10년 동안 몇 십 만원의 돈을 가져왔을 정도로 수입이 없다시피 했어요. 저 혼자 버는 것 가지곤 도저히 서울 살이가 감당이 안 돼 강화도로 이사 했죠. 또, 남편 작업실이 강화에 있어 저와 아이가 남편과 떨어져 살았는데 아이에게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이사를 결심했어요”
 
1년 남짓 세 가족은 행복했다. 비록 없는 살림이지만 탁 트인 대지에서 아버지와 손을 잡고 시간을 보내는 아들 우성군을 볼 때 마다 김씨는 강화로 온 게 백번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 가족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1월23일경 이 작가가 종적을 감춘 것이다. 다음날인 24일 김씨는 지인에게 ‘남편이 수배를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신문에도 남편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었다. “남편이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는데 주변 사람들은 수배가 장기화 될 지 모른다는 이런 저런 얘기들을 했어요. 너무 걱정돼 뜬 눈으로 밤을 세웠어요”
 
그리고 27일. 10여 명 가량의 서울경찰청 직원이 들이 닥쳤다. 경찰은 이 작가 개인화물 뿐 아니라 김씨와 아들 우성군 물품까지 압수해 갔다고 한다. 남편이 그동안 찍어온 2천여 통의 필름도 물론 압수당했다. 이씨는 “너무도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그러나 “방학중이었지만 아들이 봉사활동 때문에 학교에 가 그 상황을 지켜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덧붙였다.
 
4월19일 이 작가 검거, 국보법 혐의 인정 부인하며 20일 넘게 단식 중
부인 김씨 경찰 도청 의혹 제기, “명백한 사생활 침해 손해배상 청구 할 계획”

 
그렇게 3개월이 지난 4월19일 남편 검거 소식을 들었다. “수배 중일 때도 <통일뉴스>에 기사를 쓰고 있었나봐요. 경찰은 그런 정황을 알고 피씨방에 잠복해 있던 서울경찰청 보안과에 의해 검거됐어요”
 
이 작가는 구속 된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인정 못 한다며 단식 중에 있다. 8일 현재 20일째다. 김씨는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활동에 족쇄를 채운 것에 항의하며 단식 중인 남편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며 “특히 예전에 생활이 어려워 남편을 힘들게 했던 때가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은옥씨는 남편의 사진 작품은 당국 허가 아래 찍은 것이라며 국보법이라는 족쇄를 채워 이 작가 활동에 제동을 거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 박지훈/에큐메니안
아울러 김씨는 이번 일을 겪으며 남편 구속보다도 더 섬뜩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구속 영장을 보면 그간 전화 통화 내용 뿐 아니라 저희가 결혼해서 10여 차례 이사 한 정황까지 다 나와 있었어요. 경찰에서 수년 간 도청하고 미행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는 “남편과 전화통화 했던 것까지 경찰이 들었다면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압수된 필름도 보관이 제대로 안 돼 절반 가까이 훼손된 것을 확인했다며 그는 “작가가 20여 년 동안 발로 뛴 결과물을 이렇게 함부로 다룬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찰 도청과 관련, 김씨는 “예전에도 남편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된 전례가 있어 그 때부터 감시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씨 말대로 이 작가가 국보법에 걸려 수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4년 이 작가가 소속 된 노동자민중문화운동연합(노민문연)이 이적단체로 몰려 그 해 9월 구속, 11월에 석방됐다. “노민문연은 당시 회사 노동조합에서 풍물패를 만들면 풍물을 지원하고 가르쳐줬어요. 그런 단체를 당국은 이적단체로 규정, 남편과 함께 7명을 구속했어요”
 
국보법 폐지 이유 당해보니 알겠더라.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옭아 맬 수 있는 법
 
앞서 1992년 김씨는 현대건설 노조 문화부장으로 활동할 당시 남편이 단장으로 있던 노민문연을 방문, 이 작가의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에 반해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할 당시만 해도 이렇게까지 평화 운동에 열성으로 뛰어들 것이란 생각은 못했어요. 아마 그 때 이럴 줄 알았다면 결혼 안 했을 것 같아요.(웃음)”
 
그는 그러나 “남편이 하는 일을 만류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을 남편은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남편 활동이 인정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 믿어요. 아들도 학원 몇 십군데 보내는 것보다 남편이 하는 활동을 제대로 알려주는 게 훌륭한 교육이라 생각해요”
 
   
▲경찰은 이 사진에 기밀유출을 목적으로 한다는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저는 이 사진을 찍기까지 대상에 대해 수집가능한 모든 정보를 확보하고 그 연관과 실체를 연구했으며 정보전쟁의 수단으로서의 전자파와 또 다른 파동으로서의 평화를 상징할 빛의 극적 대비를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헛걸음을 하고 기다리며 인내하던 끝에 즐탁동시의 순간을 만났고 원하던 사진을 얻었습니다. ⓒ이시우 작가 제공
중학교 2학년인 아들 우성군은 이번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들은 국보법 자체는 몰라요. 그러나 아빠하고 19박20일 동안 통일을 염원하며 평화통일대행진 등 다양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란 것은 충분히 알죠. 요즘 아빠가 없어서 많이 우울해 하며 말이 많이 없어져 안타까워요”
 
김씨는 또, 이번 일을 계기로 국보법이 왜 폐지돼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예전 노조 활동을 했지만 저완 딱히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완 상관없는 법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남편 일을 통해서 이 법이 누구든지 옭아 맬 법이란 것을 깨달았죠”
 
“그러나 아직도 일반인들은 국보법을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남편이 예술을 하거나 신문사 기자, 사회운동가, 전쟁과 평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에게 국보법은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법이라 생각해요. 또, 언론의 자유나 국민의 알권리, 창작의 자유를 국보법으로 옭아맬 수 있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우리 나라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서울 구치소 별관을 새로 지어야 되지 않을까요.(웃음)”
 
누구나 국보법으로 구속될 수 있다는 말을 김씨는 이같이 에둘러 표현했다. 이 작가는 5월말까지 검차 조사를 받고 6월 둘째주께 첫 공판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도 남편은 국보법 혐의를 인정 못 한다며 단식을 하고 있어요. 계속 그렇게 나가면 몸이 축날까 너무 걱정돼요. 문정현 신부님에게 부탁해서 조만간 단식 중단 요청을 해 볼 생각인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1시간 30분가량의 인터뷰를 마치고 김씨는 돌아섰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처음과 달리 무거워 보였다. 김씨가 꾸는 소박한 꿈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 본 기사는 개혁적 기독교 인터넷언론인 <에큐메니안>(www.ecumenian.com/)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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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5/10 [01: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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