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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의 악령, 국가보안법 되살아 나다
사진작가 이시우 석방촉구 기자회견 열려, 즉각 석방과 국보법폐지 촉구
 
태윤미   기사입력  2007/05/09 [18:45]
평화사진작가 이시우가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된 지 20여 일만에 검찰에 송치됐다. 검찰은 근 십여 년 이상 분단이라는 폭력을 작가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들여다 본 이시우 작가에게 미군 무기와 기지 시설, 주한 미군의 화학무기 배치현황 등 군사 정보를 외부에 노출시켰다는 의혹 등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구속사유의 핵심인 유엔사 등 군사기밀누설죄는 이시우 작가가 <통일뉴스> 전문기자라는 공적인 신분으로 공개적으로 진행 해 온 일이며, 특히나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미연합사와 유엔사의 공식 취재 지원 하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또한 영장에서 거론된 그의 책 『민통선 평화기행』(창작과비평사)은 지난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 전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책 100권에 선정·전시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경찰청 보안과는 지난달 19일 이러한 역사에 대한 반성과 천착 없이 그간 공개적으로 사진 창작활동과 평화운동, 기자 생활을 병행해 온 이시우 작가를 검거·구속했으며, 구속된 지 단 3일만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시우 작가에게 국가보안법이라는 죄목를 씌웠다. 이와 관련해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석방대책위’(이하 대책위)는 9일(수)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이시우 작가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9일 오전 국가보안법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이시우 작가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 컬처뉴스
 
고정호 통일맞이 사무처장의 사회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상엽 사진작가(이미지프레스 대표), 이준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 정도상 소설가(민족문학작가회의), 최병모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 회장), 문정현 신부, 김은옥 이시우 작가의 부인,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낡은 시대의 낡은 잣대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과 이시우 작가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토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정현 신부(왼쪽)와 이시우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오른쪽)     © 컬처뉴스

이상엽 작가는 “처음 ‘이모 사진가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떴을 때 내가 구속된 것인 줄 안 지인들의 전화를 수 통 받았다”면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업의 유사성 때문에 이후 나라고, 다른 작가들이라고 이시우 작가와 같은 일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며 개탄했다.

또한 이상엽 작가는 2003년에 발행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마이클 야마시타의 ‘DMZ’ 관련 사진들을 펼쳐보이며 “어떻게 보면 서정적으로까지 보이는 이시우 작가의 사진보다 더욱 적나라하게 민통선 부근을 취재하고 보도한 야마시타의 사진은 당시 당국에서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며 국가보안법의 이중잣대를 질타했다.

이번 이시우 사건을 담당한 최병모 변호사 또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토대와 진실과의 괴리는 엄청나다”며 “한미관계,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직시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은 앞으로도 계속 여기 저기에 적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야마시타의 사진 외에도 『하늘에서 본 지구』로 유명한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은 아예 유엔사군정위 비서장 캐빈 매튼 대령과 동행하며 한국 사진가들에게는 한번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지역에 대한 고공촬영을 진행했고 사진을 발표한 바 있다.  

『안녕, DMZ』의 저자이기도 한 최현진 통일원 통일교육전문위원은 “이시우가 찍은 사진 대부분이 남북의 정전협정 위반과 관련된 고발 사진”이라고 강조하면서 “불법적인 사항을 고발한 내용을 군사기밀 누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이 사진들이 군사기밀 누설이라고 말하는 당국은 현재 수많은 포털 검색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더욱 적나라한 사진들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내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기자회견장에는 민통선과 관련된 이시우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다.     © 컬처뉴스

한편 정도상 소설가는 “이번 기자회견이 남녀의 성관계 장면을 적나라하게 찍어서 구속된 작가의 기자회견이라면 여러분은 과연 참석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시대적인 악법 존폐에 앞서 이번 문제의 핵심은 바로 창작의 자유에 있다”고 역설함과 동시에 “현실 그대로의 아름다운 모습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작가에게 있어 소재의 성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날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산 이시우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는 “자신의 말에 늘 책임을 져온 남편이 국가보안법을 안고 죽기로 결심했다고 이야기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전하며 지난 1일(화) 남대문결찰서 유치장에서 보내 온 이시우 작가의 편지를 읽어내렸다.

편지글에서 이시우 작가는 “비무장지대를 대상으로 10년 넘게 사진작업을 해 온 나의 사진은 군사기밀보호법의 혐의가 씌워진 채 어쩌면 <모내기>그림으로 국가보안법의 피해를 당했던 신학철 화백의 그림처럼 철창에 갇혀 영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될 운명에 있다”면서 “역사의 ‘결’, 평화와 통일의 ‘결’을 만들어 가야하는 시대의 요구에 더 이상 국가보안법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전했다.

또한 “몸의 중심이 아픈 곳이듯 사회의 중심도 아픈 곳이며, 세계의 중심 또한 전쟁과 기아와 빈곤으로 인해 아픈 곳”이라며 “사회의 모순과 세계의 모순이 집중되어 있는 시대의 중심에 서고자하는 예술가에게 아픈 곳은 숙명의 자리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강화도 고려산에 위치한 주한미군 레이더 기지를 포착했다는 이유로 군사기밀을 유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시우 작가의 작품.     © 컬처뉴스

이날 기자회견은 권오헌 회장이 기자회견문 ‘평화사진작가 이시우를 즉각 석방하고, 국가보안법 폐지하라’를 낭독하는 것으로 끝마쳤다. “구시대 망령이 다시 이 사회를 배회한다”로 시작하는 기자회견문에는 “일본 제국주의 강점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치안유지법’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이래, 국가보안법은 분단이라는 민족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넘어서기는커녕, 이 고통에 기생하며 자신들의 부조리한 특권 유지에만 골몰해 온 반통일세력, 반민주세력이 저지른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여 온 대표적인 반사회 악법”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이시우는 기자이며, 평화운동가이기도 했지만 작가였다”며 “작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상식을 뛰어넘어 숨겨져 있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회의 진실과 가능성을 캐묻고, 이를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는 자유”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권오헌 회장은 “이 사건은 남북 화해와 교류를 통해 평화로운 통일사회를 앞당기고자 하는 이 긴박하고도 중요한 민족의 시기를 맞아서도 사사로운 특권을 챙기고자 하는 병든 마음들의 발로라 여기며 역사의 퇴행이 아닌 진보를 향해 좀더 우리 사회와 법정이 성숙해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대책위는 참가단체들과 협의해 앞으로 있을 이시우 작가의 재판과 관련한 재판투쟁을 할 것이며, 6월 경 서울에서 이시우 작가의 사진전을 개최하고, 단계적으로는 지방에서도 사진전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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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5/09 [18: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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