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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언론 '거짓말 폭격'에, 알 자지라 방어?
이라크를 가장 먼저 침공한 건 언론이 아닐까 …
 
지오리포트   기사입력  2003/03/27 [23:38]
CNN이 거짓말 공세를 펴면, 알 자지라가 방어한다?

이라크 침공의 두 주역인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방의 주류 언론들이, 국가주의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과장 보도, 또는 의도적인 오보를 일삼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방 언론이 부풀리기 기사와 거짓 소식을 전하면, 카타르의 위성방송 알 자지라 등 아랍 지역 언론들이 ‘상반된 견해’(알 자지라의 대표적인 토론 프로그램 제목이기도 하다)를 내놓는다.

미국 영국 등 주류 언론의 보도가 불과 몇 시간 또는 하루가 지나면, 아랍 언론과 이라크 당국이 반증을 제시하면서 오보로 드러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 켠에서는 이 같은 양상을 언론의 ‘대리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히 ‘대리전’이란 시각으로 바라보는 건 무리인 듯하다.

적어도 이라크 침공 6일째를 맞은 현재까지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오보가 서방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이라크군 대규모 투항’ ‘이라크군 전의 상실’ ‘후세인 생사 불투명’ ‘바스라 함락 임박’ ‘단기전으로 끝날 듯’ ‘민간인 피해 최소화’ 등 보도가 서방 언론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으며, 보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알 자지라에 속보 경쟁에서도 뒤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CNN의 추락은, 이제 더 이상 서방 언론이 전쟁의 실상을 입맛대로 가공하거나 왜곡할 수 없게 된 새로운 조류를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알 자지라가 이번 전쟁에서 서방 주류 언론보다 더욱 신뢰를 받게 된 것은 속보성에서 앞섰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CNN 등 서방 언론이 순전히 연합군의 입장에서 전황을 ‘중계’하는 데 반해, 알자지라는 이라크 민간인 피해까지 상세히 보도하는 등 전쟁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바스라시 봉기’를 둘러싸고 서방 언론과 알 자지라 공방

이 같은 평가는 알 자지라가, 아랍 편향적 보도로 일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알 자지라는 기존의 아랍 언론에서는 금기시해 온 아랍 각국 왕가의 비민주성, 심지어 종교 정책에 대한 비판마저 서슴지 않는 보도로 인해 상당수 아랍 정권과 마찰을 빚어온 터였다.
(<알 자지라>(모하메드 · 엘나와위 아델 이스칸다르 지음, 김용현 옮김, 홍익출판사, 2002년) 참조)

이라크 침공 6일째인 3월 26일에도, 이라크 남부 ‘바스라시 봉기’를 둘러싸고 서방 언론과 알 자지라, 그리고 연합군 측과 이라크가 공방을 벌였다.

이 공방은 25일 이라크 제2의 도시로 전략적 요충지인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서 반 후세인 봉기가 일어났다는 영국 ‘고위 소식통’의 주장이 보도되면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국제 증시에서 주가가 오르고, 유가가 떨어지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25일 영국 방송 BBC는 “바스라에서 후세인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소요사태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군 고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BBC는 이 보도를 하면서 ‘아마도(Possibly)’라는 수식을 붙였다.

이어 제프리 훈 영국 국방장관은 26일 BBC 라디오와 가진 인터뷰에서 "바스라 봉기는 매우 확실하다. 이라크 민병대원들이 같은 국민들에 대해 공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봉기가 아직도 진행되는 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 CNN도 3월 26일 “바스라 시민들 사이에 만연한 적개심이
이라크 정권과 군부에 반대하는 봉기(uprising)를 일으키게 했다”며
영국군 사령부의 간부의 이름을 빌어 보도했다.  ⓒ CNN  


CNN도 이날 “바스라 시민들 사이에 만연한 적개심이 이라크 정권과 군부에 반대하는 봉기(uprising)를 일으키게 했다”며 영국군 사령부의 간부의 이름을 빌어 보도했다.

그러나 알 자지라의 현지 특파원은 26일 “바스라 거리는 매우 평온하고, 봉기가 발생했다는 조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봉기설’을 반박했다.

모하메드 앗 사하프 이라크 공보장관 역시 “이라크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민심을 흐트리기 위한 거짓 보도”라며 일축했다.

이처럼 상반된 주장과 보도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침공 초기부터 CNN 등 서방 언론이 미.영 고위 관계자들의 이름을 빌어 보도한 기사들 중 상당수가 오보로 드러난 것에 비추어, ‘바스라 봉기’설도 섣불리 신뢰하기 힘들다.

더욱이 이번 ‘바스라 봉기’설 또한 BBC, CNN 등이, 구체적 정황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국 정부 및 군 관료 등 소식통의 말을 단순 인용하고, 이를 근거로 주요 기사로 보도하고 있는 점은 의혹을 남기고 있다.

한편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바스라 봉기’ 보도 관련, “1950년대 동유럽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났으나, 무차별 학살된 사실을 기억한다”면서 “(이라크)시민들에게 봉기를 일으키도록 격려하기가 매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워선, 그리고 새빨간 거짓말…

그는 ‘조심스러운 입장’의 이유를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이라크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키려도 할 경우, 그들을 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럼즈펠드의 이 말은 명백한 ‘위선’이다. 12년 전 미국의 행적이 말해 준다.

바스라는 걸프전 때 미국으로부터 이용당한 뒤, 철저하게 배신 당한 과거를 갖고 있는 지역이다.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 대항하는 시아파 세력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바스라는 여러 차례 후세인 정권에 대한 봉기를 일으켰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바스라 봉기’설이 계속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뉴욕 타임스는 지난 3월 18일자에서 "바그다드는 몰라도 남부 바스라 시민들은 미·영 연합군을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전쟁 주역의 ‘원하는 바’를 충실히 반영했다.

이 신문은 연합군이 현지 시아파 주민들과의 연대를 모색하게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은 바 있다. 그 전망은 섣부른 것이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대통령이던 아버지 부시는 남부 시아파가 반후세인 봉기를 일으키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그 후, 시아파가 이란과 손잡을 조짐을 보이자 이라크군이 미군 전선을 통과하도록 유도했으며, 이로 인해 시아파가 유혈 진압되는 것을 묵인했다.

두 번씩이나 국방장관 자리에 오른 럼즈펠드가 그런 과거를 잊었을 리 없다. 그런 럼즈펠드가 이라크인들이 목숨을 잃을까 봐 “봉기를 일으키도록 격려하기가 매우 조심스럽다”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을지 의문이다.

결국 26일 ‘바스라 봉기’를 둘러싼 엇갈린 보도의 한 축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사도 도외시한 채 연합군이 침공하면 반후세인 세력들로부터 ‘해방군’으로 환대 받으리라는 미국의 오만과 착각, 그리고 이를 여과 없이 보도하는 서방 언론의 무책임이 자리잡고 있다.

어떤 전쟁이든, 언론을 동원한 심리전이 있기 마련이지만 침공 초기부터 CNN 등 서방 언론은 너무 많은 부풀기기 기사, 거짓 보도를 내보냈다.

CNN은 침공 전부터 미 국방부의 입을 빌어 ‘정밀공격(precision bombing)’ 전술을 홍보하면서, 민간인의 피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보도해왔다.

그러나 24일 알 자지라는 미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머리 뒷부분이 날아가버린 아이의 주검을 화면에 담는 등 이라크 민간인들의 피해를 생생하게 보도하면서, ‘정밀공격’ 주장의 허구성을 폭로했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전했던,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내건 ‘정밀공격’에 대해, 뉴스레터 사이트인 ‘다른 의견의 목소리( Dissident Voice ) 는 지난 24일자에서 냉소적으로 비판했다.

‘정밀공격’을 하는 무기라는 ‘스마트탄(Smart weapons)’에 대해, ‘그리 똑똑하지 않은 무기(Not so ‘smart’ weapons)’라는 제목으로 반박한 글에서 폴 로저스 교수는 네 가지 요약을 통해 비꼬았다.

1) 폭탄이 목표물을 향해 발사되고, 정보가 정확하면 민간인들이 죽는다.
2) 폭탄이 목표물을 향해 발사되고, 정보가 틀렸다면 민간인들이 죽는다.
3) 폭탄이 목표물을 빗나가면, 민간인들이 죽는다.
4) 폭탄이 군사시설에 떨어지면, 민간인들이 죽는다.


이밖에도 CNN 등 서방 언론은 침공 초기부터, ‘이라크군 대규모 항복’ ‘바스라 함락 임박’ ‘후세인 생사 불투명’ 등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는 미국의 ‘원하는 바’를 사실인 냥 보도해 왔다.
 
그러나 이라크군은 대규모로 항복하기 보다는, 명민한 게릴라 전술을 통해 첨단무기를 동원한 연합군에 잇단 타격을 가하고 있다. 농민들이 소총으로 헬기를 떨어뜨렸다는 소식이 들려올 정도이다.

▲ 미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머리 반쪽이 날아가버린 아이의 주검.(참혹한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 Aljazeera  

바스라, 바그다드 역시 ‘함락 임박’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치열한 교전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임박’이라는 표현에도 무덤덤할 뿐이다. 후세인 역시 ‘사망설’이 나오면, 즉시 TV 화면에 등장해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서방 언론의 계속되는 ‘함락 임박’ “몇 Km까지 진격’ 보도에 대해 모하메드 앗 사하프 이라크 공보장관은 지난 24일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조롱한 바 있다.

“미군이 이라크 남부 사막 지역 150 km까지 왔다는데, 대체 사막 어느 지점을 말하느냐? 그리고 미군은 지금 어디 있느냐? (어딘지 모르지만) 실제로 진격해 들어온 것인지 의심스럽군…”

이라크 침공 불과 6일째인 3월 26일. 어쩌면 이라크를 가장 먼저 침공한 것은 미·영 연합군보다도, 크루즈 미사일보다도 ‘언론’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리고 그 의심 때문에 바스라에서 봉기가 일어났다는 ‘대서특필’들을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

긴박한 분위기로 ‘편집’된 보도임에도…. 사실로 드러날지 모르지만….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지구촌을 여는 인터넷 신문" 지오리포트 http://georeport.net/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 본 기사는 유만찬  geot@georeport.net 기자가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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