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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총기사건과 한국의 왜곡된 쇼비니즘
[뉴스툰의 입장] 백무현 시사만평,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인가?
 
박세열   기사입력  2007/04/19 [13:12]
▲반한 사이트 채널 2에 올라온 만평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대학생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신문 백무현 화백은 이를 두고 만평을 그렸다. 부시대통령의 말풍선엔 ‘한방에 33명...이로써 우리 총기기술의 우수성이 다시한번...’이라는 대사가 삽입되었다. 하지만 마감 후 범인이 한국인으로 밝혀지자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서울신문은 만평을 내려야 했으며 백무현 화백은 사과의 말을 전해야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 만평에 비난을 쏟아부었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백무현 이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왜 이 만평은 비난받아야 하는 것일까?

일단 너무나 꼬았다. 만평은 처음 ‘총기 난사 사건의 근본원인’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라이플협회(NRA)'의 로비와 정부의 의도적 방관을 비판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NRA보단 그 로비를 받아주고 있는 미국 행정부의 잘못이 더 크다고 판단한 후, 대상을 좁혔을 것이다. 미국 행정부의 수장은 부시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가 만평에 등장했고, 대사가 삽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사 삽입 과정에서 지나친 비약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육두문자로 비난을 받을 만 한 일이라면 다음 노르웨이 작가의 만평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난을 쏟아 부어야 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총을 팔고 있어?"라고 말이다.
 
 ▲노르웨이 작가 Herbjørn Skogstad의 만평, "중개자입니다."   © Herbjørn Skogstad 출처 : cagle.com 
이번 사건의 팩트는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가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 총을 쏴 서른 두 명의 사망자를 내고 자살한’ 것이다. 미국 CNN 방송엔 한국 언론이 그토록 우려하는 ‘한국과의 외교 재검토’니, ‘한국 비자면제 재검토’니, ‘한미FTA재검토’니 하는 말들은 커녕, 그가 ‘한국인’이라는 점 이외에 한국과 관련된 어떤 것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는 ‘히스패닉’이나 ‘미국계 중국인’이나 다른 미국계 소수민족들 중 한명일 뿐이다. 이를 두고 오마이뉴스의 유경근 기자는 ‘미국인들에게 사과하고 추모 촛불 집회를 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히스패닉 계 미국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맥시코를 비롯한 남미 사람들이 촛불집회를 해야 하고, 중국계 미국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중국인들이 전부 사과해야하는 것인가?

유 기자는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떠올려보라며 그 근거를 들었다. 하지만 두 사건은 어떤 연관성도 없다. 14년동안 미국에서 교육받은 한국계 청년의 미국에서의 범죄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한국에 파병된 미군 청년의 한국에서의 범죄는 완전히 다른 케이스다. 후자는 사건의 이면에 있는 한미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드러난 사건이지만, 전자는 미국의 소수민족 청년이 일으킨 사건이다. 굳이 따지자면 ‘국가간 외교’차원이 아니라 ‘미국 내 인종차별’ 문제로 가야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쇼비니즘의 극치다.  

한국 언론의 호들갑은 둘째 치더라도 네티즌들의 반응은 무서울 정도다. 특히 백무현 화백의 만화에 대한 비난의 수위는 지나치다. 네티즌들의 백무현 화백에 대해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 심하지 않느냐’ 하는 비판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풍자가 지나친 점이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 만평이 이미 번역되어 외국에 돌고 있다며 ‘한국인 망신시킨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문제가 된다는 것은 주로 가쉽을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 ‘부채질(http://pulug.com)’이 보도한 일본의 반한 사이트인 ‘채널 2’ 뿐이다. 그리고 유투브에 하나 있다는 소리를 듣고 확인했을 뿐이었다. 슬라이드 형식의 동영상에 달린 댓글은 주로 일본어로 되어 있는데, 간혹 일본을 비난하는 댓글도 있다. 인지도는, 글쎄, 2000여회 조회수를 기록했을 뿐이다. 필자는 구글, 야후, 마이스페이스, AOL, 슬레이트닷컴, MSNBC 등을 돌아다니며 검색해봤지만 백 화백의 만평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가 백 화백의 만평이 “전 세계에 정신없이 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찾게 된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미국 작가 Steve Nease 의 만평, 이 만평도 희생자를 조롱하는 것인가?     © Steve Nease 출처 : cagle.com  
조인스닷컴은 “네티즌 'onesuc'는 "만평이 미국 뉴스사이트에 이미 퍼졌고 미국.일본 학생들이 지금 이 그림을 돌리느라 정신이 없다"며 "현지 한국학생들은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어느 해외 어느 사이트인지는 언급이 없다. 네티즌 'onesuc'가 얼만큼의 정보 신뢰도를 가지고 있는지 역시 언급이 없다. 그냥 네티즌 한명이 해외에서 만평이 돌고 있다고 쓴 댓글을 뉴스화 한 것이다.

조선닷컴은 한 술 더 뜬다. 중앙일보의 이 근거없는 보도를 토시하나 바꾸지 않고 인용했다. 더 가관인 것은 제목을 ‘외교문제 비화 우려도...’라고 붙였다는 것이다. 그 근거라는 게 바로 ‘만평이 영어로 번역되어 일본, 미국 등에 퍼나르고 있다’는 네티즌의 말이다. 네티즌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정도는 판단해서 기사를 써야 하지 않을까?

문제가 된 만평 정도의 풍자는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네티즌들의 말대로 “사람이 죽었는데 만평을 이렇게 그리나?” 하고 의문을 가질만한 것은 많다. 그런 만평은 전세계 어디에나 돌려지고 있다. 하지만 범인이 단지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우리가 호들갑스럽게 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엄숙하게 애도만 표명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사과할 일도, 통탄할 일도 없는 것이다.

미국 뉴스블로그 사이트 AOL은 범인이 학부시절 레포트로 작성했던 희곡작품까지 입수해서 ‘특종’이라는 이름으로 까발리고 있다. 그 희곡작품이 ‘가정폭력’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근거로 범인의 심리상태를 캐는 선정적인 기사들이다. 그들의 호들갑과 한국의 호들갑은 약간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오버’한다는 것. 그나마, 한국에서 ‘오죽 했으면 한국인이 저런 짓을 했겠느냐? 미국은 반성해라’ 라는 말이 안 나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본 기사는 <카툰저널 뉴스툰>(http://www.newstoon.net) 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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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4/19 [13:1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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