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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의 노골적인 베껴쓰기
전체 13문장 중 7문장이나 표절한 한나라당 성명서
 
양문석   기사입력  2003/02/26 [00:36]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이 연일 언론관련 논평을 내고 있다. 괴벨스, 포퓰리즘 등 상당히 자극적인 용어를 구사하며 한껏 유식함을 뽐낸다. 한데 23일의 성명에서 사용한 '나치 괴벨스' 인용은 전혀 문맥과 상관없이 툭 튀어나옴으로써 네티즌들로부터 갖은 희롱을 다 당했다. 한데 24일에는 또 '포퓰리즘'을 특이하게 해석함으로써, 독특한 언어이해능력 및 사용능력을 과시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은 상대를 하지 않고 우호적 언론만을 이용해 '포퓰리즘식'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포퓰리즘은 대중추수주의 즉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만 추구함으로써, 국가의 미래를 고려한 정책결정행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중들의 입맛이란 언론사들의 '입맛'과 일치한다. 그리고 포퓰리즘이 실현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론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언론의 '입맛'에 맞아야 한다. 한데 '우호적 언론' 그것도 여론시장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훨씬 취약한 언론들만 가지고 포퓰리즘이 가능할까.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거대신문들을 배제한 포퓰리즘이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박대변인은 문맥도 맞지 않고, 논리도 없는 '억지'나 '궤변'을 '성명'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괴벨스' 또는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언론이 받아쓰기 딱 좋은 표현인 줄은 알았던 모양이다. 동아일보가 아니나 다를까 '괴벨스'가 포함된 문장을 박대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인용했다.

하지만 박대변인의 '짧은' 지식은 '열심히' 공부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한데 문제의 심각성은 박대변인의 노골적인 베끼기에 있다. 23일 밤에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올라 온 사설과 24일 박대변인이 발표한 내용을 비교해 보면, 박대변인의 베끼기가 얼마나 심각한 지 드러난다. 먼저 제목을 보면, 24일 한나라당 성명 제목이 "노당선자의 언론관 이대로 좋은가? 노당선자의 왜곡된 언론관이 심히 우려된다."이다. 그리고 23일 조선일보 인터넷판 사설 제목은 "盧 당선자의 부정적인 언론觀 "이다. 조선일보 사설제목을 박대변인이 '문답법'으로 풀어 베낀 것이다.

13문장 중 무려 7문장이나 내용 베껴

하지만 이것은 본문과 비교하면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박대변인은 전체 성명서 총 13문장 중 무려 7문장을 조선일보 사설에서 베꼈다. 시간상 조선의 사설이 23일 밤에 공개되었고 24일에 박대변인이 발표했기 때문에 '저작권'은 분명히 조선일보에게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일보: 노 당선자가 인터넷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론을 주도해온 신문을 '족벌체제' '기득권체제'라고 지칭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으로 모는 것은 공인의 발언으로는 격에 맞지 않는다.

박대변인:  자신의 당선에 기여한 특정한 인터넷 매체와 방송, 신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정권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끊고 원칙대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노무현 정부가 언론과의 비정상적 유착관계를 끊고 원칙대로 해나가겠다는 것에 이의를 달 필요는 없다.

박대변인: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정권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끊는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나, 그 실천 방안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 듯 하다.

조선일보: 가판 구독을 금지한다는 발상도 언론의 속보성과 정보성을 무시한 일방적 제동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박대변인: 언론 자율에 맡길 '가판발간' 문제를 대통령이 개입해 막겠다는 것으로도 들린다. 언론의 '정보성과 속보성'은 물론 국민들의 신속히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노 당선자의 언론관은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바탕하고 있는 데다, 신문에는 강한 개혁을 요구하면서 방송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이 사실을 정확히 보도해야 한다면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도 예외일 수 없다.

박대변인: 방송사와 신문사를 편가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 짓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이라면 당장 시정해야 한다.

공부하는 대변인이 됐으면

컨닝해서 베끼면 결국 눈이 사시(斜視)가 된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게 된다는 말이다. 의도적으로 '사시'를 지향하는 것은 말릴 바 못되지만, 정치하는 이가 '사시'가 되면 유권자들의 마음을 결코 읽을 수 없게 되며, 이는 정치인 개인으로서도 불행이지만, 이런 정치인을 대변인으로 내세운 정당으로서도 불행이다. 박대변인이 개인적으로도 정당의 대변인으로서도 불행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단어를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컨닝이나 표절을 하지 않고도 13문장 정도는 만들 수 있는 문장력도 키워야 한다. 그리고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직무대행이 한 때 '名대변인'이었음을 박대변인은 기억해야 한다.


본 기사에 대해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 측에서 다음의 반박글을 보내왔습니다. 기사의 객관성을 위해 반반문을 함께 올립니다-편집자

한나라당 대변인이 조선일보 사설을 베꼈다는 주장에 대해

"2월24일 발표된 '노당선자 언론관 이대로 좋은가?'라는 한나라당 대변인 성명이 조선일보 사설을 베낀 것이라는 전국언론노조 양문석 정책전문위원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동아일보 등 언론경력 13년의 기자출신 정치인을 사설이나 베껴 성명을 내는 형편없는 수준으로 매도한 것은 심각한 명예훼손으로 법적인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예의 그 성명은 당시 노무현 당선자의 「오마이뉴스」인터뷰 기사와 「연합뉴스」의 보도를 접하고 당의 입장과 저의 판단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한 잘못을 지적한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DJ정권의 언론개혁이 몇몇 특정 언론을 겨냥한 편파적이고 기획된 방향으로 이끌어지는 것에 대해 줄곧 문제를 지적해 왔고 이런 사실이 최근 문건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해서도 우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날의 성명은 관련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며, DJ와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견제를 받아왔던 조선일보의 견해도 유사했을 뿐인 것입니다.

한나라당 대변인실은 통상 오후 4시 경에 회의를 통해 다음날의 성명·논평의 주제와 대체적인 방향을 설정한 후 초안을 작성합니다.

다음날 오전 7시 석간신문 기자들에게 대강의 내용을 알려주고 새로운 내용이 있으면 가감 첨삭하여 작업을 완료합니다.

9시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사실관계에 이상이 없는지 최종 확인한 후  공식 발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23일 오후 초안이 작성되고, 24일 아침에 발표된 성명을 내용이 유사하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잘못이 여기에서 입증됩니다.

양문석씨는 정당에서 성명이 발표되는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박종희 개인에 대한 '지식'까지 거론하며 악의적인 글을 썼다고  봅니다.  

그런데 양문석씨의 글이 인터넷 언론을 통해 기사화 되고, 그 기사가 다른 사이트에 퍼 옮겨지게 되어 정치인으로서 명예에 큰 손상을 입게 되었으며 그 피해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에 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양문석씨가 표절이라는 주장에 변함이 없다면 입증 자료를 3월 6일까지 제출해 주기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근거 없는 주장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드러난 현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한편 자기 계발의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밝혀둡니다.  

2003년 2월 27일

국회의원 박 종 희  


* 사진출처 : 박종희 의원 홈페이지 http://www.hopebell.or.kr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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