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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반대집회, 나도 무기들고 갈란다
[박미경의 삶과 노동] 한미FTA 때문에 차비 들여 서울까지 가야하다니
 
박미경   기사입력  2007/03/25 [04:38]
며칠 전, 아이의 운동화를 사러 시장엘 가는데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민주노동당 울주군 지역위원회 사무국장이었습니다.

"형수, 뭐해요? 나, 00예요. 지금 서울 올라와서 단식하고 있는데, 형수가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나도 한미FTA 반대 투쟁 가야하는데... 일요일에 서울 갈게요. 힘내요!"

▲" 미친소 때려 잡다"     ©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여성대책위

요즘 남편은 삼성SDI 구조조정 문제 때문에 많이 바쁩니다. 거의 매일 모임과 회의 때문에 새벽에 들어올 정도이죠. 남편과 대화할 시간이 없는 저는 울주군 지역위원회에 전화해서 남편이 일요일에 한미FTA반대 집회에 가는지 알아보았더니 남편이 서울에 간다고 했답니다.

귀가한 남편에게 이번 집회는 제가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서울 시청 앞에서 열렸던 한미FTA 반대 집회 참가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남편은 달리기도 못하고, 꾸물대는 제게 걱정스런 듯이 조심하라고 일러둡니다.

"미경이 니 또 어리하게 있다가 경찰한테 붙잡히는 거 아이가?"

"나도 무기 들고 가야겠다. 분무기 안에다 고춧가루 넣어가야지."

"무슨 애들 장난하는 줄 아나?"

"그라믄 도망 안 갈란다. '죽일 테면 죽여봐라!'하며 달라 들지 뭐."

"혹시나 경찰하고 충돌이 있을 때는 재빨리 도망가야한다. 안 그러면 경찰은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나 방패로 찍어버릴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한다."


아이도 걱정이 되는지 제게 "엄마가 왜 서울에 가야돼요? 안 갔으면 좋겠다."며 붙잡습니다.

"엄마도 이 나라 국민이야. 국민들을 절망 속으로 빠뜨리는 한미FTA를 꼭 막아야지."

"엄마, 경찰이 따라오면 혹시 가방 놓고 왔더라도 그냥 버리고 빨리 도망쳐야돼요."

"걱정 마라."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엄마."

열 받습니다. 삼성이나 현대 등 소위 잘나간다는 기업에서도 IMF를 빌미로,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쫓거나 해고를 시켜 이 땅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두룩합니다. 가장의 저임금과 실직으로 가계가 기울거나 가정이 해체되고 여기저기서 "죽겠다"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거대기업, 삼성에 맞서 싸우는 삼성SDI 해고자 송수근의 아내 박미경이 들려주는 그녀와 그녀 가족의 삶 이야기     ©삶이보이는창, 2007
그런데 이제는 국민들의 삶을 더욱 옥죄는 한미FTA. 더군다나 비공개로 이뤄지는 엉터리 한미FTA 졸속 추진으로 국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습니다.

9년 간 삼성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남편 뒷바라지만 해도 힘든 삶입니다. 그런데, 이젠 한미FTA 때문에 차비 들여서 서울까지 가야하니, 왜 이렇게 정부는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지 이해가 안가고 한숨만 푹푹 나옵니다.

요즘 들판에 가보면 쑥이 지천입니다. 시원스레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와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논두렁에 앉아 쑥을 뜯고있노라면 마음엔 평화가 찾아옵니다. 작은 행복을 느끼며 소박하게 살고싶은 시골마을의 주부들까지 오늘 두 팔 걷어붙이고 서울행 버스에 오릅니다.

정부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현재 한미 FTA를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한지, 뭘 원하는지 부디 헤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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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3/25 [04: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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