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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서약서의 폐지를 환영하며
 
김정란   기사입력  2003/07/08 [19:32]
법무부는 7일 정책위원회를 열어, 공안 및 노동법 위반 사범에 대해 가석방이나 사면을 실시할 때 받도록 한 준법서약서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해서 관계법령을 개정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정책위원들은 준법서약서가 사실상 사상의 변경을 강요함으로써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형사정책적으로도 실효성이 없는 법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이룬 결과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준법서약서는 지난 시대의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국가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낡고 닫힌 시대의 유물입니다. 지난 98년 10월, 문민정부 시절에 그 동안 사상범들을 대상으로 실시해 오던 사상전향제를 대신해서 도입된 것이 <준법서약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그 뿌리에 있어 사상전향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상의 다름 때문에 구금되어 있던 신체에 자유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동일하고 유일한 사상에 복속할 것을 명하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사상전향>제도란 자유로워야 할 인간의 영혼을 국가가 원하는 하나의 틀거리에 우겨넣는 폭력의 행사였습니다. 장기수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그늘진 구석에서 이데올로기의 비극을 증언하면서 수 십년씩 갇혀 있었던 사상범들은 <사상전향>을 거부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정신적 모욕과 육체적 고통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대체 그들이 그토록 육체의 고문을 견디며 지키려 했던 이데올로기란 무슨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을 버리라고 강요하기 위해서 갇혀 있는 자의 약한 육체를 고문하는 쪽의 이데올로기나, 정치적으로 이미 그 적실성을 잃어버린 앙상한 관념의 형해를 붙잡고 버티는 쪽의 이데올로기나 허망해 보이기는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지나간 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자신의 양심에 따라 선택했다면, 그것을 버리라고 강요하며 육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자의 폭력 앞에서 버티는 일은 의미있는 저항입니다. 그것은 이미 정치의 영역을 떠나서, 인간의 이름으로 사상을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자유의 영역으로 옮겨간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 시대에 도입된 준법 서약서는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시대처럼 극악무도한 방식은 아니었습니다만, 실질적인 사상의 전향을 조건으로 가석방이나 사면을 허용해준다는 점에서 육체를 볼모로 인간의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같은 기본틀을 가진 제도였습니다.

이 법이 새 정부 들어 폐지된다는 것은 따라서 이제 우리가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열린 사회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첫 번째의 분명한 증거로 크게 환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그 동안 준법서약서에 발목을 잡혀 오랜 기간 동안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없었던 많은 해외 민주화 인사들도 고국땅을 밟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독일 뮌스터대 송두율 교수 같은 이들은 오랜 기간에 걸친 민주화 운동과 탄탄한 학문적 업적 등을 통해 고국에 크게 이바지했지만, 준법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귀국이 좌절되고는 했었습니다. 이제 그런 이들도 당당하게 고국 땅을 밟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준법서약서 제도는 결국 국가보안법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사상범들이 바로 이 반시대적이며 반인권적인 국가보안법 때문에 양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준법서약서라는 것도 국가보안법이라는 큰 모순이 용인되고 있기 때문에 용인되어 왔던 작은 모순에 불과한 것입니다. 법무부가 내린 이번 결정이 우리 사회의 열림을 가로막고 있는 마지막 장애물인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키는 데까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 본문은 김정란 교수(상지대, 시인, 아웃사이더 편집위원]가 CBS 시사자키에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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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7/08 [19:3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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