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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두려워 하는가
[논단] 2.13 합의와 한반도 비핵화 흐름에 ‘한나라-미 동맹’ 훼방 말아야
 
이재봉   기사입력  2007/03/08 [14:53]
 북한핵 문제를 풀기 위한 지난 2월 13일의 6자회담 합의에 따라 관련 국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남한과 북한 그리고 북한과 미국 사이엔 뉴스를 따라잡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빈번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남한과 북한은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평양에서 장관급 회담을 열어 남북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로 했다. 3일엔 남북 대표들이 뉴욕에서 만나 2.13 합의를 어떻게 이행해갈지 논의했다고 한다. 9일엔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을 위해 실무자들이 만나고, 14-15일엔 남북 간의 열차 운행과 경제 협력을 위해 접촉을 가지며, 27-29일엔 이산가족들이 TV 화면을 통해서나마 만나기로 했단다. 나아가 4월엔 그야말로 봇물 터지듯 각종 접촉이 이루어질 것이다.
 
북한과 미국 관리들은 2월말 마카오와 홍콩에서 만나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으며, 5-6일엔 뉴욕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을 갖는다. 이 회담이 잘 진행되면 머지 않아 평양에서의 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밖에 남한과 미국은 3월 2일부터 뉴욕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접촉을 갖고, 7-8일엔 북한과 일본이 하노이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만남을 갖는다. 12일경엔 6개국 사이에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안보에 관한 회의가 열리며, 19일엔 제 6차 6자회담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렇게 자주 만나다 보면 그 동안 품었던 불신이나 오해가 풀리고 갈등과 긴장이 누그러질 테니,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고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먼저 미국에서는 부시 행정부를 떠받쳐오고 지지해온 전,현직 고위 관리들과 보수적 신문 잡지들이 2.13 합의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른바 네오콘으로 잘 알려진 엘리어트 에이브람스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2.13 합의에 당혹해하며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려는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이메일을 관리들에게 보냈다.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존 볼턴은 2.13 합의가 부시 행정부 초기의 대외 정책 원칙을 위반한 '나쁜 협상'이라며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하고, 3월 5-6일에 열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 자체가 북한 정권을 정당화해준다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특사는 북미 관계 정상화와 북한 인권 문제를 연계해야 한다며 북미 관계 진전에 딴죽을 걸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영향력이 큰 신문이랄 수 있는 [워싱턴 포스트] 3월 4일자 기사는 주목할 만하다. 정치인들이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완고하고 단호하며 절대 양보하지 않는 지도자 (stubborn, resolute, 'never give in' leader)"인 부시 대통령이 요즘 들어 자신의 결정을 자주 뒤집는다는 내용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해임, 북한과의 직접 대화, 중동 평화 협상에서의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에 관한 토론 등을 거부해오다 작년 11월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자 받아들이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이란 및 시리아와의 대화를 거부하다가 이젠 그 두 나라와 협의하기 위해 밀사까지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신문은 2.13 합의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부시가 북한핵 문제를 6자회담 틀 안에서 논의하기를 고집하며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거부해오다, 지난 1월 베를린에서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허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합의 (breakthrough agreement)"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급변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세력이 다시 살아나고 있고, 이라크는 이미 제 2의 베트남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란도 미국의 위협에 맞서 핵무기 개발을 진전시키고 있고, 중동에서는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등과의 갈등과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중남미에서도 반미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북한을 더 이상 몰아붙이기 어려운 것이다.
 
이와 달리 남한에서 대표적이고 영향력이 큰 신문들인 이른바 '조중동'은 2.13 합의를 부정적으로만 왜곡하고 있다. 2.13 합의 내용엔 '북한이 이미 보유한 핵무기'에 대한 조치가 없고, 합의가 이루어지려면 남한이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며, 6자회담의 성과를 애써 깎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첫째, 이들은 지난 2월 6자회담의 목적이나 2005년 9.19 공동성명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왜곡하고 있고, 2.13 합의문의 제목 자체가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초기 행동 (Initial Actions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Joint Statement)"이라는 것도 외면하고 있다. 9.19 공동성명 제 1조는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것인데, 여기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기로 이미 약속했다. 이에 따라 지난 2월엔 6개국이 회담을 갖고 북한은 '우선' 어떤 과정을 밟을 것이며 나머지 5개 나라는 '초기에' 무슨 조치를 취할 지에 관해 합의를 본 것이다. 앞으로 북한이 기존 핵무기까지 완전히 폐기하는 '최후 행동'까지 실행하게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텐데, 이제 시작 단계에서 '북한이 이미 보유한 핵무기'에 대한 조치가 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 아니겠는가.
 
한편, 우리는 9.19 공동성명 제 1조에 명시된 '한반도의 비핵화'를 북한의 핵무기 폐기나 포기로만 해석하기 쉬운데, '한반도의 비핵화'에는 미국이 핵무기로 북한을 위협하지 않는 것과 남한이 미국의 핵무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남한은 북한의 침략을 걱정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침략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려면 북한의 모든 핵무기가 폐기되는 것뿐만 아니라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도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핵미사일을 실은 미국 잠수함이 동해를 어슬렁거린다는 언론 보도는 가끔 나와도 그게 '한반도의 비핵화' 위반이라는 비판 기사는 본 적이 없다. 증거가 불확실한 북한의 우라늄 핵무기 개발 의혹에 대해서는 1994년의 제네바합의 위반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북한에 대해 핵무기로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미국의 공개적 위협에 대해서는 제네바합의 위반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작년 7월 북한이 태평양 쪽으로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을 때는 온 세계가 뒤집힐 만큼 떠들썩했지만, 그 보다 1주일 앞서 미국이 태평양 쪽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을 때는 거의 모든 언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켰다. 또한, 작년에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자는 유엔 결의안에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찬성하는데도 미국은 반대하는 등 '세계의 비핵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이런 사실은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미국의 핵무기와 미사일은 세계 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은 남침과 적화 통일을 위한 것이라는 비뚤어진 인식과 편견을 가지고 진정한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도록 다그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안심하고 폐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며 달래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둘째,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게 하려면 5개국 가운데서도 특히 남한이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남한만 덤터기를 쓴다는 식으로 과장 보도하는 데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다. 설사 남한이 바가지를 몽땅 쓸지라도 갈등과 대결을 통한 안보 비용보다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 경비가 더 많이 들까. 대화를 포기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통해 북한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나라 안팎의 정치가 혼란스러워지고 경제가 불안해지며 사회가 긴장될 것이고 자칫 전쟁 위기까지 불러오기 쉬울 텐데 만에 하나 인명 손실로까지 이어진다면 이런 것을 돈으로 환산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갈등과 대립을 일삼으며 전쟁을 부추기는 파괴 비용은 단 한 푼이라도 아깝지만, 평화를 지향하며 화해하고 협력해서 더불어 잘 살자는 건설 비용은 천문학적 액수라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북한핵 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의 9.19 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면,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이 더욱 진전되고 북미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누그러져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정착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과 분위기가 올해 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여, 6자회담의 성과를 한사코 폄하하며 2.13 합의 이행에 훼방을 놓지 말기 바란다.
 
* 글쓴이는 원광대 교수로서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이며, 본문은 소식지 96호(2007. 3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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