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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유령은 기념하지 말아야 한다
이은상, 조두남 기념관 건립에 관하여
 
정문순   기사입력  2003/07/08 [15:27]

「가고파」,「선구자」 작가의 숨은 이력들

▲ '선구자'의 작곡자 조두남(좌측), '가고파'의 시인인 노산 이은상(우측)
마산 앞바다 "파란 물"을 노래한「가고파」의 시인 노산 이은상은 지역민들에게 애향심을 자극하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이 지역에서 열리는 음악회에서는 앵콜송으로「가고파」를 연주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이다. 이은상에 대한 각별한 흠모는 시 당국으로 하여금 그가 어릴 때 길어먹던 우물물까지 복원하는 정성을 기울이게 했다. 출생지는 아니지만 중년 이후 여기에 정착하여 여생을 마친「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도 마산이 아끼고자 하는 대표적인 인물에 속한다. 그런데 살아서 갖은 명예를 누렸고 천수를 다한 후에도 후학과 지역의 존경을 받아온 이들의 삶은 현재 재평가되지 않으면 안되는 불명예에 직면해 있다. 이들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 문제가, 이전에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거나 남 모르게 묻혀 있던 본인들의 생전 행적을 조명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1.
정문순, 학문없는 봉건적 충성의 세계, 대학원을 고발함, 대자보 53호(2001. 1)
2. 정문순, 다시 민병기교수에게 반론함, 대자보 56호(2001. 3)
3.
김민철, 이은상의 '친일' 문제를 말한다, 대자보 56호(2001. 3)

[동영상보기] 조두남기념관 개관식 항의집회 때 경찰의 진압모습 / 경남 희망연대 제공

이은상과 조두남의 기념관 건립은 애초에 마산시가 지난 1999년 개항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것이다. 당국은 이 기념관들을 문화관광벨트의 하나로 엮는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일제 때의 행적에 대한 증언이 나옴으로써 비로소 기념관 반대 운동이 벌어진 조두남에 비해, 이은상은 친일잡지『조광』에 근무한 전력 등이 시비를 낳아 기념관 건립 추진에 진작부터 제동이 걸렸다. 더 분명한 것은 정통성 없는 정권과의 유착으로 일관했던 그의 정치적 이력이다. 그러나 그의 행적이 마산이 민주주의의 성지라는 지역민들의 자부심에 얼마나 배치된 것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은상이 꿈에도 잊지 못한다던 마산 앞바다는 마산 3.15항쟁 때 희생당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떠오른, 4.19의 기폭제로서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희대의 부정선거이자 독재권력의 무덤이 될 3.15 선거에 즈음하여 이은상이 한 일은 문인유세단을 이끌고 자유당 지지에 발벗고 나선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은상은 박정희 정권에게 "5.16과 유신체제의 이념을 제공한 일등공신"으로까지 평가받는 인물이다. 

▲ 마산시에 위치한 조두남 기념관
빗발치는 반대 여론이 일자 마산시는 이은상 기념관을 '마산문학관'으로 개칭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면서 논란이 정리되는 듯했으나 이은상을 추종하는 일군의 지역 문인들의 압력으로 다시 '노산문학관'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조두남의 경우도, 민족음악가로 그가 추앙 받는 근거가 된「선구자」가 실은 친일 문인 윤해영의 원래 가사에 훗날 손질이 가해져서 항일 노래로 둔갑된 것이며, 조두남도 간도 용정에서 친일위문대에 몸담았다는 등의 증언이 얼마 전 연변의 원로 예술인을 통해 나오자 기념관 개관이 멀지 않은 상황에서 반발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러나 마산시는 조두남의 친일 혐의를 조사하자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아랑곳없이 일정을 그대로 강행했고 개관식에서 시장에게 밀가루를 뿌린 '열린사회 희망연대' 의장을 비롯한 회원 3명은 폭력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밀가루 투척이 폭력이 된 이유

이은상과 조두남의 기념관 건립이 몇 해 동안 지역 사회에서 논란을 달구고 있는 것은 지금도 가라앉을 줄 모르는 박정희 기념관 문제를 그대로 떠올리게 만든다. 인물들의 정치적 행보는 물론이고 기념관 건립의 의도 및 이들 기념관에게 국고를 지원하는 것의 정당성 문제 등 논쟁의 방향 역시 비슷하다. 그러나 아무리 열렬한 박정희 옹호자라도 그의 독재와 인권탄압마저 드러내놓고 미화할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에 반해 이은상과 조두남의 지지자들은 그만한 '성찰'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정자문위, 통일촉진회 등 굵직한 직함이 말해주듯 군사 정권과 낯뜨거울 정도로 영합한 삶으로 일관했던 이은상도 그의 후예에게는 "그 정도야"(노산시조문학회장, 김복근) 정권에 협력해줄 수 있는 경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박정희의 경우 도둑질하듯 몰래 기념관이 착공되기라도 했지만, 조두남 기념관은 비판하는 목소리를 비웃듯이 개관으로 치달았고 반대자들은 밀가루 뿌리고 몸싸움 치른 것도 중죄로 몰렸다.

하찮은 밀가루가 폭력으로까지 치부되어 버린 것은 이은상, 조두남 등에 자신의 존재 근거를 두는 친체제적 인사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이 지역의 현실을 말해준다. '마산문학관'을 '노산문학관'으로 바꿔치기한 사람들은 이은상의 문학적 계승자들인 예총, 문협, 시조문학회 등 수구적 문학집단이었다.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경남 지역은 일제 때의 어용문학 단체에까지 기원을 두고 있고 군사 정권의 정치적 들러리로 곧잘 동원된 예총과 문협이 여전히 문화계에 대한 장악력을 놓지 않고 있다. 거기에다 시조문학은 복고적이고 낡은 문학 양식이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고 있음에도 이은상의 영향력 덕분에 다른 지역보다 활발히 창작되고 있다. 게다가 이은상 집안은 장구한 세월동안 지역에서 기독교계와 교육계의 토호로 굳건한 뿌리를 내려왔다. 지역적 기반과 정치적 영향력이 이은상에 미치지 못하는 조두남의 경우는 초대 마산예총 지부장을 지낸 그의 경력과 기념관 건립을 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박정희의 경우보다 이은상과 조두남의 기념관 건립이 순조로워 보일 수 있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저항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으로 선거철만 되면 경상도 정당의 표밭으로 전락하는 지역정서를 빌미로 지역에서 압도적인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수구적 문화계 인사들을 위시한 지역 토호들과, 유력한 문화인 이름을 관광자원으로 삼는 데 혈안이 된 자치단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하다. 

기념관은 왜 세우는가

그렇다면 진작에 과거가 되어야 할 역사는 지금 마산에서만큼은 유령이 아닌 살아있는 현실로 행세하고 있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재야출신의 한 인사가, "70년대는 역사란 이름으로 미화되거나 덧칠할 수 없는, 여전히 우리 삶을 속박하는 현실"이라고 한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우리 삶을 속박하는 현실"을 기리는 기념관들의 존재는 이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말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기념관이란 무엇인가. 기억이 아닌 지금의 현실에 버젓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굳이 기념관이라는 형식이 필요 없을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기념관이나 현재 진행 중인 역사의 기념관이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박정희 기념관이, 이은상 기념관이, 조두남 기념관이 그들이 모두 명을 달리한 직후인 80년대에 거론되지 않은 것은 군부 정권 치하에서 그들은 아직 빛 바랜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이 유물의 시체 안치소일 뿐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현실의 삶의 공기 속에서 더 이상 생명을 잇지 못하는 유물을 후세의 기억에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안치해놓을 공간이라도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박정희, 이은상, 조두남 등의 기념관 건립은 그들로 상징되는 현재가 과거로 넘어가지 않도록 그들의 기억을 어떻게든 현실 속에 붙들어 두려는 수구세력의 안간힘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을 기념하는 건축물을 올리고 싶다는 소망에는 굳건하기만 하던 기득권의 아성이 도전 받는 데 따른 위기감과 패배 의식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셈이다. 

「선구자」를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는 조두남 기념관에는 조잡한 모형의 용두레 우물과 일송정 소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 버젓이 윤해영이 독립운동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역사의 '시체'를 넘어 아예 거짓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왜곡을 기리는 데는 지자체 예산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 당국이 국고지원을 요청한다는 점에서도 이은상과 조두남은 마산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죽은 독재자의 경우처럼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로 확산시키는 것, 그것만이 유령을 기념하는 데 혈세를 쏟아붓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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