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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먼저 달을 보면 행운이 와요”
[김영조의 민족문화 사랑]보름달 보며 비손, 정월대보름 유래와 세시풍속
 
김영조   기사입력  2007/03/01 [21:53]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다. 구름 타고 천천히 운명을 항해하는 저 보름달을 본다. 뒷동산에 올라 너그럽고 따뜻한 달빛에 온몸을 맡긴 채 지난 어린 추억을 더듬는다. 바로 이틀 뒤에 다가온 음력 정월 대보름(1월 15일)의 풍경이다.

정월 대보름의 달은 한해 가운데 달의 크기가 가장 크다고 한다. 가장 작은 때에 비해 무려 14%나 커보인다는데 그것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기 때문이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는 농사를 기본으로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였다. 또한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의하면 해를 '양(陽)'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하고, 달은 '음(陰)'이라 하여 여성으로 본다.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여신-땅으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 출산하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이와 같은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면 달은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 정월대보름 달맞이를 하는데 맨먼저 본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 이무성

정월의 명절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다. 옛 풍속은 대보름을 설처럼 여기기도 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 놓고 밤을 지새운다는 기록이 보인다.

약밥, 오곡밥, 귀밝이술은 대보름의 명절음식

대보름날의 먹을거리는 약밥, 오곡밥, 복쌈, 진채식(陳菜食), 귀밝이술 따위가 있다.
 
우선 약밥은 찹쌀을 밤, 대추, 꿀, 기름, 간장들을 섞어서 함께 찐 후 잣을 박은 것이다. '동국세시기'에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했을 때 날아온 까마귀가 왕을 깨닫게 했다. 그래서 보름날 까마귀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약밥은 지방에 따라 오곡밥, 잡곡밥, 찰밥, 농사밥들로 대신 하기도 한다.

대보름날엔 세 집 이상의 성이 다른 사람 집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하며, 평상시에는 하루 세 번 먹는 밥을 이 날은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믿는다. 또 대보름의 명절 음식으로 복쌈이 있는데, 이는 밥을 김이나 취나물, 배추잎 등에 싸서 먹는 풍속을 말한다. 복쌈은 여러 개를 만들어 그릇에 노적 쌓듯이 높이 쌓아서 성주님께 올린 다음에 먹으면 복이 온다고 전한다.

진채식은 고사리, 버섯, 호박고지, 오이고지, 가지고지, 무시래기 따위의 햇볕에 말린 여러 가지 나물을 물에 잘 우려서 삶아 무쳐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한 해를 무사히 지나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또 귀밝이술이라는 풍속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 이것을 귀밝이술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 정월대보름의 명절음식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오곡밥, 약밥, 진채식, 복쌈)     © 김영조

한방에서 대보름 명절음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살펴보자.

우선 오곡밥은 오색이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오장육부를 조화시키고 각 체질에 맞는 음식이 골고루 섞여 있는 조화로운 음식이라고 말한다. 특히 찹쌀은 소화기를 돕고 구토, 설사를 멎게 하며, 차조는 비위(脾胃)의 열을 제거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함과 함께 설사를 멎게 하며, 차수수는 몸의 습(濕)을 없애주고 열을 내려준다고 한다. 또 콩은 오장을 보하고, 십이경락의 기혈 순환을 도우며, 팥은 소변을 잘 보게 하여 부기, 갈증, 설사를 멎게 한다.

하지만, 전통음식이라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차수수는 소화가 잘 안 되는 점을 알아야 하고, 부럼 깨물기는 이가 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빨이 약한 사람은 조심해야 하며 평소 똥이 무르거나 지성 피부인 경우는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부럼깨물기와 더위팔기, 대보름의 세시풍속

전통사회의 농가에서는 정월을 '노달기'라 하여 농민들은 휴식을 취하며 농사준비를 한다. 또 다양한 제사의식과 점치기, 놀이가 벌어진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제관을 선출하여 풍요로운 생산과 마을의 평안을 축원하는 마을제사를 지낸다.

전남 해남군 도둑잡이굿, 전남 완도군 장보고당제, 전남 보성군 벌교갯제, 충남 연기군 전의 장승제, 전북 고창의 오거리 당산제, 경북 안동군 도산 부인당제, 경북 안동군 마령동별신제, 강원도 삼척군 원덕 남근제, 전북 김제시 마현 당제들이 있다.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면 '부럼 깬다'하여 밤, 호두, 땅콩, 잣, 은행 등 견과류를 깨물며 한해 열두 달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빈다. 또 부럼을 깨물 때 나는 소리에 잡귀가 달아나고 이빨에 자극을 주어 치아가 건강해진다고 생각했다.

부럼을 깨무는 우리 조상의 슬기로움은 영양학에서도 인정이 된다. 잣은 불포화 지방산이 매우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혈압을 낮춰주고 피부를 윤택하게 가꾸어 주며 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해서 변비를 막아준다. 밤에는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 있고 비타민 B1, C 등이 풍부한 영양 식품이며, 호두는 두뇌 발달에 영향을 주는 영양소로 알려진 디에이취에이(DHA)의 전구체가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 부럼깨물기                © 이무성

'부럼 깨기'처럼 옛 사람들은 견과류를 잘 먹었고, 곡식이 주식이었기에 턱이 발달하여 얼굴이 네모났으며, 이 때문에 턱관절이 발달하고, 두되 발달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서양식의 부드러운 음식을 주로 먹기 때문에 얼굴이 달걀형으로 바뀌고, 턱관절 빠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먹거리에서도 신토불이는 건강을 담보하는 일이다.

또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을 보면 상대방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고 한다. 이름을 불린 사람이 그걸 알면 “먼저 더위!”를 외친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그 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한편, 아침 식사 후에는 소에게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이 오곡밥과 나물을 키에 차려주는데, 소가 오곡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대보름날이 되면 '액연(厄鳶) 띄운다'고 하여 연에다 '액(厄)' 혹은 '송액(送厄)' 등을 써서 연을 날리다가 해질 무렵에 연줄을 끊어 하늘로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한다.
 
그리고 초저녁에 뒷동산 등에 올라가서 달맞이를 하는데 맞는 달의 모양, 크기, 출렁거림, 높낮이 등으로 한해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또 달집태우기는 대보름날 밤에 행해지는데, 짚이나 솔가지 등을 모아 언덕이나 산 위에 쌓아 놓은 다음 소원을 쓴 종이를 매달고,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불을 지른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더불어 달맞이를 하고, 쥐불놓기와 더불어 이웃마을과 횃불싸움을 하기도 한다.

볏가릿대 세우기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서 깃대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에 벼, 기장, 피, 조의 이삭을 넣어 싸고, 목화도 장대 끝에 매달아 이를 집 곁에 세워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며, 복토 훔치기는 부잣집의 흙을 몰래 훔쳐다 자기 집의 부뚜막에 발라 복을 기원한다. 용알 뜨기는 대보름날 새벽에 제일 먼저 우물물을 길어와 풍년과 운수대통하기를 기원하는 풍속이다.

또 곡식 안내기는 경남지방의 풍속인데 농가에서는 새해에 자기 집 곡식을 팔거나 빌려주지 않는데 이는 이때 곡식을 내게 되면 자기 재산이 남에게 가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보름날은 점치는 풍속이 많다. 이 가운데 사발점은 대보름날 밤에 사발에 재를 담고, 그 위에 여러 가지 곡식의 씨앗을 담아 지붕 위에 올려놓은 다음, 이튿날 아침 씨앗들이 남아 있으면 풍년이 되고, 날아갔거나 떨어졌으면 흉년이 든다고 믿는다. 나무그림자점은 한 자 길이의 나무를 마당 가운데 세워 놓고 자정 무렵 그 나무 비치는 그림자의 길이로써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 액연 날리기                      © 이무성

달붙이는 대보름 전날 저녁에 콩 12개에 12달의 표시를 하여 수수깡 속에 넣고 묶어서 우물 속에 집어넣어 콩알이 붙는가, 안 붙는가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며, 닭울음점은 대보름날 꼭두새벽에 첫닭이 우는 소리를 기다려서 그 닭울음의 횟수로써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또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놀이로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볏짚을 이용하여 암줄과 숫줄을 만든 뒤에 마을단위로 나뉘어 줄을 당기게 되는데, 암줄이 승리를 해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이 있다.

이 밖에도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으로 지신밟기가 있는데, 지신밟기는 설날부터 대보름 무렵에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이 돌며 흥겹게 놀아주고, 복을 빌어 준다. 지역에 따라서 마당밟기, 귀신이 나오지 못하도록 밟는 매귀(埋鬼), 동네에서 쓸 공동경비를 여러 사람이 다니면서 풍물을 치고 재주를 부리며 돈이나 곡식을 구하는 걸립(乞粒)들로 불린다.

이 밖에 정월대보름 놀이로는 나무쇠싸움(쇠머리 싸움), 놋다리밟기, 다리밟기, 봉죽놀이, 사자놀이 들풀태우기, 고싸움놀이, 월등 달집태우기 당산옷 입히기, 관원놀이(감영놀이), 농기세배들도 있다.

이제는 잊히는 정월 대보름이지만 식구들과 함께 달맞이를 하고, 서로 행복을 빌어보면 좋을 일이다. 김재진 시인은 ‘어머니’란 시에서 대보름을 세상의 섧븐 사람들이 다 모여 힘껏 달불 돌리는 날이라 했다. 고통받는 이웃들도 함께 달불 돌리며, 웃는 그런 날이면 좋겠다. 그러면 나 자신에게도 저절로 행복은 담아지지 않을까?

"어머니,
세상의 아픈 사람들 다 모여 불러보는
이름입니다.
세상의 섧븐 사람들 다 모여 힘껏 달불 돌리는
어머니,
대보름입니다." (김재진의 '어머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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