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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를 연주하니 검은 학이 날아와 춤추었다
[김영조의 민족문화 사랑] 선비와 함께 한 악기, 한국적 거문고의 모든 것
 
김영조   기사입력  2007/02/21 [18:36]
“세상사는 구름이라 험하기도 험하구나.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는가?
술잔을 잡거니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구나
거문고 줄을 얹어 풍입송(風入松)을 타자꾸나.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렸도다“

송강 정철은 “성산별곡”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험한 세상사를 잊고, 벗과 함께 술을 권커니 자커니 하다가 거문고를 타니 누가 손님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니 술 탓일까 거문고 탓일까? 벗과의 자리뿐만이 아니라 혼자 즐기는 거문고의 세계도 절제와 내면세계로의 침잠을 통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고 소리(琴)와 하나가 되는 주객일체의 경지로 갔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이수자 한민택의 연주     © 김영조

금은 중국 악기, 거문고는 한국음악을 위한 악기

고구려의 옛 도읍지인 만주 지안현[輯安縣]에서 발굴된 고구려의 고분 무용총 벽화와 제17호분에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4현 17괘의 현악기가 그려져 있고, 또 안악에서 발굴된 고분 제3호 분(墳) 후실(後室) 동쪽 벽 무안도(舞樂圖)에도 거문고 원형이 보이는 악기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는 줄이 여섯이 아니고 4줄이며,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괘가 16개가 아니고 17개로서 조금 다르지만 악기를 무릎 위에 놓고 손에 술대를 쥐고 연주하는 모습으로 보아 거문고의 원형일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사기 악지의 현금 부분을 보면 왕산악이 진나라에서 보낸 금을 개조하여 거문고를 만들고, 일백여 곡을 작곡하여 연주했더니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학금이라 했다가 나중에는 그냥 현금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중국 지린성 지안의 장천 1호분 앞 칸 서벽 위쪽 벽화(여성의 거문고 반주에 맞춰 남자가 춤을 춘다,)     © 이태호
중국음악에 사용되던 금이 한국에 와서는 한국음악에 사용될 수 있도록 개조되어 거문고가 되었다. 그것은 중국음악과 한국음악이 같지 않다는 말이 된다. 왕산악이 작곡했다는 1백여 곡도 중국음악과 다른 한국식 음악이었을 것이란 얘기이다. 그러니까 금은 중국음악을 연주하기에 편리한 악기이고 거문고는 한국음악을 연주하기에 편리한 악기다.

거문고나 가야고의 "고"는 현악기(琴)를 뜻하는 우리 말이다. 그래서 가야금을 가얏고로 말하기도 한다. 국어학자 이탁(李鐸)의 ‘국어학 논고’에서 고구려라는 이름 중 ‘고(高)’만이 나라 이름이고 ‘구려(句麗)’는 나라를 뜻하는 것이며, "高"를 ‘감’이라고 읽는다고 했다. 그래서 거문고는 고구려의 나라 이름을 뜻하는 '감(또는 검)'과 고대 현악기를 두루 일컫던 '고'가 붙은 말로서 '감고' 또는 '검고'가 거문고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거문고의 울림통은 아쟁과 같은 상자식인데 머리쪽은 용두(龍頭), 꼬리쪽은 봉미(鳳尾), 용두의 윗면은 좌단(坐團)이라고 한다. 좌단과 통 사이에는 현침(絃枕, 담괘)이 질려 있고, 통 위에는 단단한 회목(檜木)으로 만든 16개의 괘가 차례로 세워져 있다. 
 
또, 통 위에는 6개의 줄이 용두와 봉미 사이를 연결하며, 용두쪽에는 줄이 뒷면 진괘에 매어져 있는데 줄은 가까운 쪽으로부터 문현(文絃), 유현(遊絃), 대현(大絃), 괘상청(법上淸), 괘하청(下淸), 무현(武絃)이라고 부른다. 유현, 대현, 괘상청은 괘 위에 올려져 있고, 문현, 괘하청, 무현은 안족 위에 올려져 있다.

거문고, 가야금, 아쟁 따위에 있는 안족(雁足)은 줄에 괴고 위아래로 움직여 줄을 고르는 기구인데 기러기의 발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기러기발이라고 한다. 술대를 사용할 때 통의 앞면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부드러운 가죽으로 된 대모(玳瑁)를 붙인다.

거문고의 규격은 길이 162센티미터, 넓이 22센티미터, 높이 14로 앞판은 오동나무를 5년 이상 자연 건조하여 만들고, 뒷판은 밤나무를 3년 이상 그늘에서 건조한 것으로 만든다. 안족은 돌배나무, 벚나무로 만들며, 괘는 돌배나무, 벚나무들을 쓴다. 거문고를 새로 살 때는 색이 다소 무겁고 장중한 것을 고른다고 한다.

▲ 거문고(위), 거문고 각 부분 이름(아래)                   © 김영조

선비를 매료시키는 거문고 음악들

거문고는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회의 불보살(佛菩薩)을 노래한 악곡인 영산회상(靈山會相)과 궁중에서 쓰이던 관악합주곡인 보허자(步虛子) 계통의 변주곡, 전통성악곡인 가곡 반주 등 주로 정악에 많이 쓰인다.

또 중요무형문화재 16호 거문고산조는 거문고가 지닌 특성을 잘 활용하여 훌륭한 감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산조란 장구 반주에 맞추어 한 악기의 독주형태로 연주하는 것을 말하며, 4∼6개의 악장으로 나누어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서로 연주한다.

거문고산조는 고종 33년(1896) 백낙준에 의해 처음으로 연주되었으나, 일부 층에 의해 거문고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비난을 받아 빛을 보지 못하다가 개화기에 들어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선율이나 흐름이 단조로운 가락이었으나 점차 절묘하고 복잡한 흐름이 보태졌다. 
 
느린 장단인 진양조, 보통 빠른 중모리, 좀 빠른 중중모리, 절름거리는 5박인 엇모리, 빠른 장단인 자진모리 등 5개의 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율을 보면 모든 악장의 첫 부분이나 중간에 잠깐 나오는 담담하고 꿋꿋한 느낌의 우조와 흔히 끝에 나오는 슬프고 부드럽고 애절한 느낌의 계면조로 짜여 있다.

거문고산조는 수수하면서도 웅장하고 막힘이 없는 남성적인 절제미가 돋보이는 음악으로, 우조와 계면조를 섞은 빠르고 느린 리듬이 조이고 풀고 하면서 희노애락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백낙준에게서 비롯된 거문고산조는 박석기, 임석윤, 김종기, 신쾌동, 한갑득, 김윤덕 등의 명인을 거쳐 원광호에게 전승되었으며, 현재 전수조교인 김영재와 김혜경 등이 그 맥을 잇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거문고를 사용한 창작 음악들이 많이 작곡되어 새로운 연주법도 개발되었다.

▲ 거문고 줄 고르기(혜원 신윤복)    

과학이 만들어낸 거문고와 가야금의 아름다움

서울대 뉴미디어 통신공동연구소가 얼마 전 가야금에 대해 실험을 했다. 울림통 위에 가루를 뿌린 뒤 주파수를 달리해 진동을 가하는 ‘클라드니 도형’ 실험이다. 그 결과, 현에서 생기는 주파수인 10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떨렸지만 현이 만들지 않는 주파수인 8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현이 떨릴 때 울림통도 같이 떨려야 한다는 '고운 소리의 비결'을 눈으로 입증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울림통 재료로 쓰는 오동나무의 상피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포의 벽이 얇고 유연하며, 비중도 0.35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바이올린의 재료인 가문비나무는 규칙적이며 촘촘한 세포 구조로 되어 있다. 그 때문에 우리의 현악기는 바이올린에 비해 음색이 부드럽다고 한다.

또 울림통 재료가 되는 나무 무늬의 형태도 소리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좋은 가야금과 거문고는 일반적으로 국수무늬 목재를 사용한 울림통이다. 국수무늬는 늙은 나무의 중심부를 긁어낸 목재가 아래로 쭉쭉 뻗은 무늬를 갖고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늙은 나무 층을 긁어내면 연주된 음이 없어지지 않고 대부분 반사되기 때문에 공명 현상이 극대화되어 소리가 증폭되고 풍부한 연주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 현악기들은 정밀한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울림통 구조, 재료가 되는 나무의 세포 형태, 국수무늬 등이 어울려 빚은 아름다움이다.

선비들, 거문고를 통해 참 자기를 꿈꾸었다. 
 
옛 선비들은 거문고와 함께 한 삶이었다. 선비들은 아름다운 자연의 품 속에서 시(詩)ㆍ서(書)ㆍ금(琴, 거문고)ㆍ주(酒)로 노니는 것을 풍류라 하여 삶의 중요한 영역으로 삼았다고 한다. 선비들이 혼자 즐기는 풍류에서는 거문고가 으뜸이었고, 이 거문고 음악에 간단히 시를 얹어 읊곤 했다. ‘황진이’란 드라마에서도 벽계수 대감이 거문고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 선비들은 이렇게 거문고를 끼고 살았을까?

▲ 보물 제957호 탁영거문고(조선 초기의 학자인 탁영 김일손이 사용하던 거문고)     © 문화재청 제공

‘양금신보’를 비롯한 많은 고악보에는 “금자악지통야 고군자소당어야(琴者樂之統也 故君子所當御也)”라는 글귀가 있다. 그 뜻은 “거문고가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이므로 군자가 마땅히 거느리어 바른길로 나가게 하라.”라는 뜻이다. 이 말은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이라고 하여 가장 귀하고 중요한 악기로 여기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동국대학교 전통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는 “거문고는 줄풍류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로 쓰이고, 늘 합주를 이끌어 가는 구실을 한다. 또 실제 전통사회에서는 피리나 젓대를 하는 잽이들이 전문음악인이고, 거문고를 하는 풍류객들은 아마추어 음악인이었는데도 풍류를 할 때에는 거문고를 하는 선비가 이끌곤 했다. 거문고라는 악기가 합주를 이끌어 가도록 음악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중국의 악기 금은 고대 전설상의 제왕인 복희씨(伏犧氏)가 만들어서 그것으로 몸을 닦고 성품을 다스려서 하늘이 준 참 자기의 경지로 돌아가게 했다고 한다. 이 금이 한국에 와서는 거문고가 되어 그러한 목적을 추구했다. 즉, 선비들은 거문고라는 악기를 통해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래서 거문고의 규격도 우주를 축약해 놓은 소우주로 생각하였다.

거문고는 이제 거의 잊혀가는 악기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선비정신이 잊힌다는 것을 말함이다. 선비란 무엇인가? 선비라는 말의 말밑(어원)을 살펴보면 '어질고 지식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은 ‘선비에 대하여’란 글에서 “선비는 아래로 농부나 악공과 나란하고, 위로는 임금과 벗한다. 지위로는 차이가 없고, 덕으로는 바름을 추구하는데 한 선비가 독서를 하면 혜택이 온 세상에 미치고, 보람이 만세에 드리워진다.”라고 말했다. 또 선비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기쁘게 지킨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긴다.

▲ 거문고산조의 맥을 잇고 있는 김영재의 음반     © 신나라 제공

선비는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키는 것인데 이것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기쁘게 함이다. 거문고를 타는 것은 어쩌면 그것을 추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환하게 하는 악기가 거문고가 아닐까? 거문고를 연주하니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을 잊을까 함이려니
춤곡조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문고줄은 무지개가 됩니다.

거문고 소리가 높았다가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당신은 거문고줄에서 그네를 뜁니다.“
(한용운의 ‘거문고를 탈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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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21 [18: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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