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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와 죽은자, 공동묘지가 혐오시설?
대구지하철참사로 죽은 사람들의 집은 어디인가
 
서태영   기사입력  2003/07/02 [17:36]

지하철참사로 죽은 사람들의 집은 어디인가
대구시의 발뺌행정과 대책위의 협상력 부재로 추모공원사업 겉돈다

▲범안로에서 통행료를 안내려고 슬쩍하는 누수차량을 단속하기 위해서 (주)동부순환도로가 마을 어귀에 설치한 도로 차단시설물. 수성구 삼덕동 4가구 주민들은 범안로 개통 뒤부터 갇힌 생활을 하고 있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DGBNEWS.COM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옹졸하다. 묘지를 흉물로 보는 것은 흉물스런 의식의 내면이다. 묘지가 혐오시설물이라는 인식에서 화장터와 묘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의식의 집단 떼죽음 증상을 보게 된다. 죽음은 삶의 연장선이다.

"삶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의 한복판에서 삶을 생각하는 인간다운 관계가 사라지고 있다(김열규)."

 신은 인간을 두 번 죽이지 않는다. 인간은 한번 죽는다. 그러나 대구지하철 참사로 희생된 고인들은 질식당해 죽고 불에 타서 죽고, 다시 냉동죽음 상태로 보관되는 다단계 죽음을 당하고 있다. 언제 이 다중죽음의 장례식은 끝이 날 것인가. 장지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합동영결식은 찜찜하게 끝났다. 졸속으로 합동영결식을 치르다보니, 아직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유족들도 남아 있다.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죽은 자의 떠도는 영과 표나지 않게 묻고 싶은 산자의 의식이 갈등하고 대립하고 투쟁하고있는 것일까. 죽은 사람들은 어디에 사는가? 무덤이다. 무덤은 죽은 사람의 집이다.

▲수성구 범물동 천주교 묘지 인근에 있는 삼덕동 추모공원 예정지. 그린벨트 안 추모공원 조성사업은 추모는커녕 집단 반발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DGBNEWS.COM
그 집이 보이지 않는다. 장례를 치른 사람들, 치르지 못한 유족들 공히 초죽음 상태에 빠졌다. 막막하다. 뜻밖의 죽음은 인간의 삶을 황폐화한다. 늘 죽음 앞에 서 있는 인간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불온하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들의 세련되지 못한 의식은 살아있어도 긴긴 죽음의 행로를 배회하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들아, '반드시 죽는다 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에 대한 무관심과 회피는 삶에 대한 불안을 더욱 짙게 만든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 불안을 감추기 위해 죽음을 억누르고 보이지 않게 한다. 또는 죽음을 상품화해, 죽음을 소비하고 탕진하면서 죽음의 공포를 잊으려고 애쓴다. 삶은 죽음 위에 군림하는 척하지만 이런 오만은 삶의 황폐화를 가져올 뿐이다." <장석만, 동아일보 2001.10.26일치  >
  
▲박정숙씨는 동부순환도로 관리소에서 자신을 포함한 4가구를 도로차단시설물로 가두게 만드는데 앞장선 사람들이 왜 생난리냐며 인근주민들의 집단반발에 이의를  제기했다 ⓒDGBNEWS.COM
공동묘지는 죽음의 표상이다. 시인의 눈에 비친 공동묘지는 근대성의 이미지다. "일요일 아침마다 양지 바닥에는 무덤들이 버섯처럼 일제히 돋아난다." 1930년대에 들어서야 개인의 죽음은 시에 포착되었다. 김기림의 <공동묘지>는 상여가 거리를 돌다 언덕으로 올라가 생성된 집으로, 삶의 연장으로 나온다.

시간은 미래로 흐르고 의식은 과거를 넘어서지 못하고! 2003년 참사의 도시 대구에서 죽은자의 공동주거인 공동묘지 조성 전망은 밝지 않다. 타인의 죽음은 혐오대상이다. 산사람이 죽은 사람을 잡아먹는다! 공동묘지가 집값을 떨어뜨린다고 데모하는 공동묘지 예정지 인근 주민의 모습은 죽음의 색깔이다.

▲"자꾸 시체만 들여오면 어떡하노! 고산땅이 대구사람 시체받아내는 곳이냐?" 두 노인은 대구시의 지역불균등발전 정책에 이골이 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DGBNEWS.COM
미국의 공동묘지는 주거지역과 인접한 곳에 만들어져,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하는 공원으로 승화된다. 주검집을 지역주민의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활용한다. 장례식장에서 결혼식도 올린다.

 "내가 이름 모를 무덤가를 즐겨 찾듯이 생이 피곤할 때마다 찾아가 햇볕바래기와 산들바람을 즐기고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공원이 내 주위와 내 이웃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 축복일 수 있는 그런 곳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 <마지막 가는 길에>, 한겨레신문 김선주 논설위원.

 

대구시, 지하철참사 수습할 의지 있기는 한가?     
대구대공원 예정지에 추모공원묘역 조성 집단반발 불러

▲ 추모공원으로 결정된 대구대공원(예정지)내 삼덕동 지도     ©DGBNEWS.COM
합동영결식을 마쳤지만 참사는 끝이 나지 않았다. 죽음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해서 이렇게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도심 인근에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일이 난관에 봉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가장 민감하게 살아있는 현안이 되었다.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사업 추진위원회는 대구대공원 예정지와 수성구 범물동 천주교 묘지 사이의 수성구 삼덕동 산 118의1 일대 3천~6천㎡ 그린벨트에 추모공원을 조성하기로 내정했다. 시와 희생자대책위는 양측 인사 5명씩, 모두 10명으로 추모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추모사업추진위원회는 6월 2일 5차 회의 끝에 추모위원 100% 참석하여-10명중 10명이 참석- 찬성 7명 반대 3명으로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천주교 묘지 근처에 안전교육관, 위령탑, 묘역을 같이 두기로 결의(희생자대책위홈)"를 모았다. 행정 절차를 밟아 공사를 마치기까지 2년 정도 시일이 걸린다고 한다. 초읽기에 몰린 사람들은 지키지 않으려고 약속을 할 때도 있다. 집단 반발을 일찌감치 예상했는지, 대구시는 주민 반대만 없으면 묘역 조성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원묘지 조성을 반대하는 대흥동 청년회 현수막. 대흥동은 삼덕동으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다.     ©DGBNEWS.COM
대구시는 '주민동의'라는 가장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고, 희생자대책위는 "묘역 조성 절차에 들어갈 것"을 확대해석했는지 가망없는 합의를 했다. 수성구 삼덕동(행정동으로는 고산2동)민의 주거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추모공원 지정하기에 급급했던 추모사업추진위의 결정은 사려깊지 못했다.  추모사업도 중요하지만 추모사업으로 인해 또 다른 눈물을 발생케 하는 것 또한 피했어야 했는데, 민-유족-관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사고 백삼십일이 지났다. 마지못해 개별 장례도 치렀지만 추모공원 조성사업은 감감 무소식이다.협상 결과가 진척되지 않고 있는 것은 실패한 협상의 실상이다. 성공한 협상을 하려거든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라고 했다. 상대를 알고도 실패한 내용의 협상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추모공원 예정지 산 아래 삼덕동에는 4가구가 살고 있었다. 주민 신동준씨는 집 위에 묘지를 조성하면 얄궂게도 공동묘지 수위가 될 처지였다. 그는 몇대째 살아온고산땅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현실 앞에 착잡해했다. 범안로 길 건너 편에 살고 있는 동민 박정숙씨는 "대구시가 사람 못살게 구는 동부순환도로 편의만 봐주고 있다"며 행정당국에 쌓였던 악감정을 토해냈다. 그는 "대구시가 그린벨트라고 수도물도 넣어주지 않더니, 이제는 송장물을 마시게 하려 한다"고 비판을 했다.

그렇지만 "추모공원 조성에 결사반대하진 않는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원치 않은 인근 주민은 "사유지에 무슨 추모공원이라예?"하며 추진할 뜻이 있기나 한지를 되물었다. 땅도 사놓지 않고 남의 땅에 공동묘지 쓰겠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한심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추모공원을 할 생각이 있으면 불도저 소리로 꿍쾅거려야 하는데, 수성구에는 시위소리만 요란하다.

▲"사람을 죽였으면 중앙로 목좋은데 묻어 주이소! 왜 땅도 안 좋은 돌밭에다 사람을 묻을라카능교?" 두 내외는 단단히 토라져 있었다.     ©DGBNEWS.COM
삼덕동은 행정구역상 고산2동에 속한다. 고산 땅은 수성구의 절반을 넘는다. 그 대부분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 행정당국은 행정편의주의에 따라 그린벨트를 마음대로 훼손하면서도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에 대해서는 환경보전과 계획개발의 이름으로 철저히 묵살했다. 따라서 공동묘지 결사반대 시위를 벌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주민의 삶을 거들떠 보지 않는 과오가 지탄받고 있는 것이다. 추모공원 조성에 반대하는 수성구민의 목소리에는 "돈 안되는 혐오시설만 들어서면 어떡해"하는 노인의 원성과 함께 그린벨트를 해제해 달라는 민원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수성구민들의 추모공원조성 반대보다는 선심행정을 베풀어달라는 시위인지도 모른다. 추모공원 조성 반대를 명분으로 기왕의 짓누르는 행정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수성구청 담당부서 공무원은 "아직 추모공원 조성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한 일은 없다"면서, "시가 추진하는 일이라 뭐라 입을 떼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참사 수습에 성의를 다했다면 다섯달이 가깝도록 죽은 이들을 가매장하거나 냉동상태로 보관하고 있을 턱은 없다. 대충대충 하다 덮자는 행정당국의 어기기 작전이 통했는지, 추모공원 조성사업은 시작하기도 전에 흐지부지해져 가고 있다. 평소 일반 민원 수렴을 등한시했던 대구시가 유독 추모공원 반대시위에만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은 전에 없이 새롭다. 추모공원 예정지로 수창공원, 대구대공원을 오락가락하다 삼덕동산으로 약속했으면 그 잘 하는 막개발부터 시작할 일이지, 이렇게 한참 뜸을 들이는 저의는 무엇일까. 대구시의 무책임행정과 희생자대책위의 협상력 부재로 유족들의 애간장만 타들어가고 있다. "지하철참사의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섭시다!"는 7월 1일 조해녕 시장의 취임 한돌 담화문은 서둘러 사고수습 막바지 단계를 선언한 것에 별다름 없다.

목민심서 애민육조 <구재>편에서 가르치기를, "무릇 재액이 있으면 그 불에서 구해내고 물에서 구해내는 것을 마치 내가 불에 타고 물에 빠진 것 같이 하여 늦추어서는 안된다. 그 재해가 사라지고 나면 어루만져 주고 편안히 모여 살게 해야 하니, 이 또한 수령의 어진 정사"라 했다.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지만 행정에 임하는 목민관의 자세는 백년 넘게 후퇴한 느낌이다. 조선 고종 때, 재임중 큰 흉년을 당하여 백성들 가운데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조정에 상계-명을 받고 외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의 일을 왕에게 보고하거나 청하는 문-를 올려서 쌀 1만석과 진전(賑錢) 30만량을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 관찰사 김명진의 백년전 선정이 오늘 우리 대구의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 참으로 애닯다. 그렇게 추모공원 지어주기 싫으면 어서어서 허공 위에라도 망자들의 집을 지워주고, 차라리 없던 일이라고 발뺌하라. 그것이 신속하고 원만한 수습을 바라는 국민여망 앞에 덜 추해지는 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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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7/02 [17: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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