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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최병렬 대표체제의 현실적 의미
'개혁하는 보수' 최대표의 한나라당은 어디로 갈것인가
 
김주영   기사입력  2003/06/27 [12:03]

▲ 최병렬 대표     ©시대소리
한나라당 대표경선이 끝났다. 도올 김용옥의 말처럼 ‘보수세력이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대단히 중요한 선거임에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선거’였고, 22만 7천명이란 정당사상 초유의 대규모 선거인단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수구적 이미지와 조직과 돈에 의존한 구태의연한 선거 운동방식 때문에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관중없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버렸다. 

하지만 그 결과 출범한 최병렬 대표 체제가 지닌 정치적 함의는 너무나 크다.

272명의 국회의원 중 153석이라는, 국회 모든 상임위의 과반수를 점할 수 있는 절대과반수에 가까운 거대야당의 수장이 어떤 정치를 펼칠 것인가에 따라 우리 정치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최병렬 대표체제가 가져올 정치지형의 변화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변화할 것인가?

“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서청원이 되는 것이 낫다.” 한나라당 경선과정 중에 은근히 민주당에 회자하던 말이다. 왜 민주당은 서청원 대표 체제를 바랬을까? 그 이면에는 서청원 대표체제로는 한나라당이 변화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었다.

현재 민주당은 신당추진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 근저에는 민주당이 아무리 개판을 쳐도 한나라당이 변화하지 않음에 따른 반사이익적 측면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경선과정 중에 서청원 후보는 ‘화합과 조정의 명수’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보수가 아니라 중도’를 추구했다. 그런데 이것을 민주당만이 아니라 한나라당 지지자들도 현재의 한나라당의 틀을 기본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병렬은 보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개혁하는 보수’라는 아젠다를 설정하고 인적청산을 예고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나라당 지지자들 역시 한나라당의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최병렬의 승리 그 자체가 이미 한나라당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한나라당 경선 결과에서 또 하나 유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투표율이다. 애초 40%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었던 투표율이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57%에 달했고, 특히 대구, 경북 지역 투표율은 80%에 달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계속되는 지지도 하락에 보수층이 대선패배의 허탈감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결속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최병렬 대표체제 하에서의 한나라당은 분명 변화할 것이다. 지지자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고 자신감도 회복하고 있다. 최병렬 역시 ‘변화와 개혁’을 약속했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과 폭이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사실 최병렬 대표의 이념적 좌표는 분명치 않다. 자신은 합리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5.6공 정권과 연관성 하에서 수구라고 규정짓는다. 이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의 쟁점사항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만 한나라당 지지자들도 변화와 개혁을 원하고 있다는 점, 수구라는 이미지가 지닌 부정적 이미지 등은 그를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추동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의 정국상황과 한나라당의 구조, 이번 경선에서 보여준 영남의 결집 등을 보면 그의  합리적 보수로의 선택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는 대표수락 연설에서 노무현 정권은 실패한 정권이고 이것을 심판할 수 있는 세력은 한나라당뿐이라고 밝혔다. 이런 그의 주장과 영남 정서가 결합하는 순간 정국은 강성으로 흘러갈 것이다.

또한 2번에 걸친 대선패배에 더하여 이제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17대 총선에서마저 패한다면 당의 존립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감. 경선과정 중에 지지후보별로 심화된 당 분열, 초선의원 중심의 ‘미래연대’, 재선의원 중심의 ‘희망연대’, 3선 의원급 이상의 ‘중진모임’, 개혁성향 의원들의 ‘쇄신모임’ 등과 같은 파벌간 갈등, 수도권과 TK, PK 등 지역간 대립 양상 등은 최병렬 대표체제가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강성으로 치닫게 할 것이다. 

특히 현재의 새로운 특검 국면은 갓 출범한 최병렬 대표체제의 방향설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병렬 대표는 최틀러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강력한 추진력의 소유자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고 그런 이미지는 그의 정치적 자산이었다. 새로운 특검 국면은 그에게 수구로의 회귀와 함께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할 것이고 그는 기꺼이 그 요구에 응할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최병렬 체제의 한나라당은 입으로는 합리적 보수라는 방향으로 대대적인 변화와 개혁을 외치지만, 현실적으로는 당 개혁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대여.대정부 투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원래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강성 수구로의 길을 걷게 할지도 모른다.                   

신당추진에 미치는 영향

“서청원 후보가 되면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은 (한나라당의 개혁과 변화가 무망하기 때문에) 스스로 탈당하고, 최병렬 후보가 되면 (개혁에 대한 방향과 정체성이 다르므로) 어쩔 수 없이 탈당할 수밖에 없다” 경선과정 중 회자하던 말이다.

하지만 현실을 그리 단순하지 않다. 최병렬 대표체제의 성립은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탈당을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최병렬 대표체제의 성립 그 자체가 한나라당의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변화와 개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체제가 성립했고 더욱이 그 체제가 변화와 개혁을 하겠다고 하는 한 탈당의 명분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둘째, ‘새로운 특검’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세가 거세면 거셀수록 민주당의 대응력 역시 강해질 것이다. 신당추진과는 별개로 신주류, 구주류, 중도가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모티브가 제공되는 것이다. 그만큼 신당의 추동력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나라당 탈당파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은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민주당 신주류와의 거리두기’와 ‘범재야민주화운동 세력의 결합’을 통한 신당이 지닌 한계다.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이 그들의 의식 속에는 아직도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대중에게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신당의 이념적 목표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지역할거주의 극복을 통한 전국정당이라는 신당의 목적은 명확하다. ‘범재야민주화운동 세력의 결합’을 통한 신당이라는 것이 불분명한 신당의 이념을 대체하기 위한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한계를 지닌 신당론일 뿐이다.

결국 최병렬 대표체제의 성립으로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들의 선택권은 오히려 매우 좁아졌다. 분명한 것은 최병렬 대표체제에서 그들의 정체성은 더욱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그들의 정체성과 탈당이 가져다 줄 리스크, 그리고 불명확한 신당의 미래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

‘탈당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은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들의 탈당으로 새로운 신당의 추동력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가?,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따라서 의지가 중요하니까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나는 부정적이다.  

* 본문은 시대소리 (http://www.sidaesori.com/) 에 실린 글입니다. 대자보와 시대소리는 연대 매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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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6/27 [12: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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