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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글 글지이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재일동포 김리박 시인 우리 말글 지킴이 뽑혀, 조국통일운동 앞장도
 
이대로   기사입력  2006/12/15 [20:38]
오는 12월 18일 늦은 4시에 한글회관 강당인 얼말글교육관에서 일본 교또에서 일본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재일 한국인문인협회 김리박(64) 회장이 2006년 네 번째 우리말 지킴이로 뽑혀 그 위촉장을 받는다. 
 
일본에서 우리말로 시를 쓰는 유일한 동포 시인이기도 한 김 회장은 경상도에서 태어났으나 2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서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고 있다. 나는 요즘 나라밖에서 일고 있는 한국어 교육 현황과 문제점, 동포들의 말글살이를 살펴보려고 11월 29일에 중국을 갔다가 바로 12월 6일에 일본 도쿄에 가서 민단과 조총련 동포 교육현황을 둘러보고, 이틀 뒤에 교토로 가서 김리박 회장이 일본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모습을 살펴봤다. 그리고 김 회장이 우리말과 우리 얼을 지키려고 애쓴 이야기를 들어봤다.

▲ 히라가타시에서 운영하는 조선어교실 강사인 김리박 선생과 학생들이 이대로 선생을 환영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철우

김 회장은 "일본에 동포가 많지만 우리 말글로 문학활동을 하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일본말로 문학활동을 하는 우리 동포가 더 많다. 우리말을 모르는 젊은이가 점점 늘어나고, 민족차별 때문에 일본에 귀화하는 동포가 한 해에 1만 명에 가깝게 늘어난다. 오히려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말을 배우려는 일본인은 늘어나는 판인데 동포들은 그 반대다"라면서 우리말과 우리 얼이 일본 동포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걸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우리 동포 젊은이들에게 우리말과 우리 얼을 심어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일본 도쿄에 있는 한청 사무실에 들러 젊은이들이 우리말을 배우고 지키려고 한글 교실을 스스로 열고 있다기에 들렀다가 다음 취재는 교토에 있는 김리박 선생님 활동상황이라고 말하니 일제히 "와! 김리박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우리들에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십니다"라면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김리박 선생이 동포 젊은이들을 감동시키는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재일 한국인문인협회 김리박 회장     © 이철우
나는 김리박 선생을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으나 이번에 한글학회에서 우리말 지킴이로 뽑혔다는 것만 알고 그 활동상황을 보려고 찾아가 뵙기로 했는데 동포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저녁에 마침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문화교실에서 김 회장이 일본인들에게 일본말을 가르친다기에 그 상황을 보려고 저녁 6시까지 교토 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도쿄에서 신간선 기차를 탔다. 일본을 처음 간 나는 도꾜에서 교또가 가까운 줄 알았더니 차비가 우리 돈으로 15만 원 가깝게 드는 먼 거리였다.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 돈 걱정을 하면서 교또역에 내리니 개찰구에 마중 나온 김리박 선생이 바로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이 선생이시지요"라면서 두 손을 내민다. 나도 처음 본 분 같지 않고 오랜 친구나 형님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히라카다시에서 운영하는 조선어 교실에 들렀다. 초급, 중급, 고급반으로 나누어 공부를 하는데 김 회장은 초급반을 맡고 있었다. 학생은 30명 정도인데 남자는 세 사람이고 모두 여성이었다. 74살 된 할머니도 있었고 67살 된 할아버지도 있었는데 모두 진지하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

김 선생은 3·1독립 선언문을 학생들에게 따라 읽게 했고 이 태백이 지은 "태산이 높다 하되"를 외우게 했다. 일본인에게 독립선언문을 읽게 하는 모습은 민족주의자임을 보여주고, 시를 외우게 하는 건 시인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인들에게 독립선언문을 읽고 느끼는 점을 묻고 싶었으나 교육 중이고 혹시 민족 감정을 일으킬까 염려되어 묻지는 않고 듣기만 했다. 
 
▲ 재일동포 청년조직인 한청에서 발행하는 우리말 교재.     © 이철우 기자
74살인 구쿠이 아키고 할머니는 "왜 한국말을 배우게 되었는가?"라고 물으니 "동양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가까운 한국에 대해 좀 더 깊게 알고 싶었고, 요즘 한국 연속극과 한류 바람을 즐기려고 공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요즘 일본도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에 여행을 가고 싶어하고 한국말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었다며 좋아한다.

그 이튿날 저녁에는 김 회장이 가르치는 또 다른 한국말 교실 학생들과 저녁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국말을 배우는 이들이라 그런지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 여러 번 와본 사람도 있고 오고 싶어했다. 많은 일본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면 그만큼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김 회장에게 일본에 있는 우리 문학활동을 더 물어봤다.

"일본에서 문학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은 나와 김윤 시인뿐이다. 따라서 재일한국문인협회 회원도 많지 않고 문학 창작보다 우리말을 배우고 사랑하자는 모임인 셈이다. 본래 이름은 '날나라에 머물어 사는 한겨레 글지이들의 모임'이고 줄여서는 '한글모임'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우리말로 글을 많이 쓰게 하는 게 목적이다. 한흙(大地)이란 동인지를 41호 째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동인지 40호에 김 회장이 쓴 "우리 한글 글지이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쓴 머리글에 "우리가 우리를 멋지게 내세울 때는 꼭 우리말과 글로 내세워야 하며 그 말과 글은 올바르고, 쉽고, 아름답고, 씩씩하며, 따뜻해야 하고 상냥해야 하고 또한 날카로워야 하며 맘을 뛰게 하고, 힘이 나게 하고, 꿈이 되게 해야 하고, 값있는 것으로 하여야 한다."고 쓴 것에서 김 회장과 모임의 뜻과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도꾜에서 만난 한 동포는 김 회장을 고집쟁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글에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그 고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재일 한국인문인협회 김리박 회장의 두 번째 시집인 믿나라 시집     © 이철우
그는 지난해 서울 범우사에서 '믿나라'란 이름으로 두 번째 시집을 냈는데 '믿나라'는 '본국(本國), 조국'이란 우리말이란다. 그는 '인생'을 '죽살이'라고 하고, 일본을 '날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우리말과 우리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는 '믿나라'의 머리글"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그 이음배(연락선)로 검은 바다 너울(현애탄)을 건넌 뒤 61해 만에 우리 새(동)쪽 바다를 건너 내 믿고장(고향)이 있고, 한어버이와 김구 큰 어른의 나라, 최현배 스승님을 비롯한 겨레의 거룩한 분들이 고이 주무시는 무덤이 있는 믿나라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에서도 우리말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정신을 느낄 수 있다. 
 
김 회장에게 어쩌다가 우리말과 우리 얼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일본말을 못하는 우리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6살 때까지 일본말을 하지 못하고 우리말만 했다. 그런데 일본 초, 중학교에 들어가니 일본말을 하지 못해 민족차별이 심해서 일본말만 하게 되니 우리말을 잊어버렸다. 민족차별을 받다 보니 민족의식이 깨어나고, 이게 아니다 싶어서 고등학교와 대학은 한국말을 하는 조총련 학교를 다녔다. 사회에 나와 보니 더욱 민족차별과 학대를 느낄 수 있어서 우리말 우리 얼 지키는 일을 더욱 고집스럽게 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한밝 김리박 선생의 조국사랑, 한글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한흙 39호] 머리글을 전재한다.
 우리 한글 글지이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날나라 땅서 한글로 글월을 짓는 것은 이제는 쓸데없는 짓일까? 또한 한글 글지이는 자나깨나 죽은 글을 짓는 한갓 심심풀이 놀이꾼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젊은이들 속에서 힘있는 글노랫꾼이나 줄글 지은이가 덜 나오는 것을 보면 깜깜해질 때가 한 바탕 두 바탕이 아니다. 요즈음 둘레에 눈을 내돌리면 날나라 사람들이 우리말과 한글을 배운다고 맘을 세우고 키돋음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말과 글을 알고 있어야 일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일들이 해 마다 많아지고 있으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 말과 글로 좋은 글노래나 줄글을 지어내는 솜씨 있는 새 글노랫꾼이나 줄글지이가 좀처럼 자라 나오지 않는다.
 
▲ 한흙 동인지     © 이철우
날나라에 머물어 사는 우리 한겨레에게는 피눈물 나는 해적이가 있고, 또한 믿나라를 뜨겁게 사랑하고 하나 된 믿나라를 하루라도 빨리 이룩하려 무릎을 굽히지 않고 떳떳이 싸우며 살아 온 빛나는 해적이가 있고, 따라서 이름 있는 글노랫꾼이나 글지이가 없는 것은 아니며 좋은 글월이 없는 것도 아니온데 새 글노랫꾼이나 글지이가 좀처럼 자라 나오지 않는 꼴을 새삼스레 곰곰이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오늘날 날나라 한겨레 글지이들 앞을 막아 선 큰 바윗돌은 우리 뒷핏줄들에게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한겨레의 핏줄과 해적이와 얼넋과 아름다운 버릇들을 올바르게, 굵게, 뜨겁게, 즐겁게, 물러 주느냐 아니면 뭇김처럼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얼마당(思想)을 따지고나 한 쪽만의 나라 다스림(政治)의 눈으로 보거나 몸담고 있는 마당을 캐묻는 일들에서 아주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더 대수롭게 여기고 무겁게 생각하여 밝혀야 하는 일은 어떻게 하면 우리 한겨레의 참얼을 곧곧게 지키고, 맑게 다듬고, 뜨겁게 데우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졌을 때만 우리 다음 핏줄들에게 그것을 곱게 넘겨 줄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므로써만이 좋은 글노래와 줄글들을 써낼 힘있고 줄기찬 글지이들이 나올 것이다.

두루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글원은 짓는이와 읽는이와 글월 들을 써낼 힘 있고 줄기찬 새 글지이들이 나올 것이다. 두루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글월은 짓는이와 읽는이와 글월을 도마질하는 이가 있어야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고 좋은 글월들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 믿나라가 아직도 둘로 쪼개져 있는 누리꼴 흐름과 섬나라의 아주 못된 나라일꾼들과 적지 않은 날나라 사람들의 덜된 짓들로 해서 우리의 새 핏줄들이 말과 글을 제대로 못 배우고 있을 뿐 아니라, 배울 수 있는 마당을 챙겨 주더라도 배울 맛을 못 느끼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말과 글을 깊이려는 맘을 잃고 있다.

▲ 저녁식사를 마치고 김리박 선생과 우리말을 배우는 일본사람과 함께.     © 이철우 기자

이 가슴 아픈 꼴은 우리 어른들이 저지른 잘못이며 꼭 씻어내주어야 하며 덜어 주어야 할 무거운 짐이다. 우리가 우리를 멋지게 내세울 때는 꼭 우리말과 글로 내세워야 하며 그 말과 글은 올바르고, 쉽고, 아름답고, 씩씩하며 따뜻해야 하고, 상냥해야 하고 또 날카러워야 하며 맘을 뛰게 하고, 힘이 되게 하고, 꿈이 되게 해야 하고, 값있는 것으로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좋은 글갈(文學) 옛글(古典)을 많이 읽고 읽혀야 할 것이다.

맘뜀이 솟지 않는, 눈물이 돋지 않는, 마음이 치솟지 않는, 사랑이 따오르지 않는, 주먹이 불끈  쥐어지지 않는 글월은 참된 글월이 아니며 그것을 가지고 젊은 핏줄들에게 마주 서지 않으면, 또한 가르치지 않으면 우리 섬나라 한겨레는 껍데기만의 한겨레, 속이 없는 빈털털이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 뒷핏줄들은 똑배기도 좋고 장맛도 좋아야 할 것이다.

우리 글지이들은 더 눈과 귀를 돋구어 앞날에서 들려오는 밀물 소리를 날카롭게 알아들어서 지어가는 길에서 외롭고 피눈물나는 일이 있어도 꿈을 버리지 않고 돋구어 뜨겁게 품어서 새 글들을 많이 지어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참 글지이, 참 노래글지이라 하겠다.

▲ 김리박 선생이 독립선언서 읽기로 일본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다.     © 이철우 기자

나이테 많으시고 솜씨 좋으신 우리 어른 글지이와 글노랫꾼 들이시여 우리 뒷핏줄이 가는 길을 더 너그럽게 베푸셔서 아름답게 남은 줄살이를 다 바치시어 쌓으신 솜씨 맘씨 말씨로 곱게 닦아 줍시다.

어리고 젊은 글지이들아. 더 머리를 낮추어 글지이 어르신, 글노랫꾼 어르신을 잘 모셔 배우고 더 좋은 옛글을 많이 읽어 익혀야겠고 아직도 하나가 못된 채 동강나고 있는 믿나라를 가슴 아파하고 하나된 믿나라를 되찾는 데에 힘과 마음을 쏟아 붓고 죽도록 겨레 사랑, 믿나라 사랑을 돋구어 가라.

[믿나라 = 고국.  날나라=일본]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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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2/15 [20: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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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친이반 2006/12/16 [16:50] 수정 | 삭제
  • 끝없는 영광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