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국 지리학계, 보수공세에 침묵만 할 것인가
[기자의 눈] 진보적 학회는 줄지어 폐쇄, 한국사회와 소통 불능 자처
 
황진태   기사입력  2006/12/14 [21:54]
기자가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전공한 지리학은 써먹을 데가 없었다. 지리학의 하위 학문으로 정치지리학, 사회지리학 등의 비판학문이 있으나 '부드러운 지리학'의 일부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러한 지리학의 부드러움에 대해서 학문 자체의 태생적 특성이 아닌 체계의 침투에 의한 결과물이었다는 생각은 얼마 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지난 12월 3일 치러진 2007년 중등임용고시 지리영역에서는 러버트 파크의 도시생태학 이론이 출제됐는데 시험을 치른 예비교사들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문제의 난이도 때문이 아니라 바로 문제 출제의 이적성 때문이다! 그간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임용고시 출제위원을 선발하는 기준은 매우 엄격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공안문제연구소는 이번 기회에 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해서도 사상검열을 요청하는 바다.

왜냐면 지난 2004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듯이 러버트 파크의 인간생태학 이론을 소개한 도시공학자 황희연 충북대 교수의 논문이 공안문제연구소의 검열대상에 오른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상검열의 논리적 오류가 하나 발견된다. 바로 시카고 학파인 러버트 파크의 이론은 이른바 효율성 추구 등을 외치는 오늘날 제도권 주류 도시담론을 합리화하는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황희연을 문제삼으려 했다면 공안연구소는 그간 시민의 참여, 공간의 공공성을 강조한 그의 '운동담론'에 칼날을 들이댔어야 했다.

이념의 양 날개에서 진보가 특히 허약한 사회과학분야가 바로 지리학이다. 그나마 90년대 지리, 공간학문에서 비판적 시각을 담지 해왔던 한국공간환경학회조차도 문을 닫았다. 폐업의 결정적인 이유는 비판학문에 대한 학자들의 기피, 좀 더 깨놓고 말하자면 지리학자들의 보수화도 무시할 수 없다.

학회에서 발행한 <공간과사회>가 학술등재지 심사에서 떨어진 본질적 이유(급진성)는 제쳐두더라도 승진을 향한 논문 쓰기에 혈안인 학자들의 시간부족이라는 핑계로 인한 원고부족 또한 <공간과사회>가 폐간된 결정적 이유였고 이는 국내 지리학계 전반의 보수화를 재강화하는데 기여했다.  

지난해 대한지리학회는 국토연구원의 한반도 산맥체계 연구에 대해서 "국토연구원이 민족주의 이념이나 정서를 앞세우고 있다"며 근래에 보기 드문 사회적 발언을 펼쳤다. 기자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아직까지는 지리학이 한국사회와의 소통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능성을 토대로 지리학계는 앞으로 한미FTA에 대해서도 적극적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한미FTA는 한국의 담론 공간뿐만 아니라 가시적 공간에까지 변형을 초래했다. 가령 FTA 저지 시위를 막으려는 서울 시청광장을 둘러싼 경찰버스들을 보라. 데이비드 하비가 강조한 지리학적 상상력이 발동되지 않는가. 지리학계의 보수성의 쇄신은 한국공간환경학회의 재창립과 소장학자들의 사회적 발언의 분투가 절실하다.

언제까지 공안문제연구소 따위의 지리학 이론 시비에 침묵할 것인가. 지리학도들이여 우리 입 좀 열자!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12/14 [21:54]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