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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는 신중현, 과연 제대로 평가받고 있나
[교수신문의 눈] '신화 만들기'에 작품 평가 뒷전 … '추앙' 일색 비평
 
박준흠
현재 신중현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인천 송도에서 출발한 전국순회 은퇴공연 ‘신중현-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는 12월 1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냥 조용히 사라질까도 했지만, 그래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산 사람으로서 공개적으로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서울신문)라는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한국록’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Body & Feel(2002)     © 신중현
하지만 50년 가까운 음악생활을 접고자 은퇴를 예정하고 있는 이때까지도 그와 관련하여 아직도 제대로 규정되지 않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의 위치와 온당하지 않은 평가는 씁쓸한 구석이 있다. 그가 음악적으로 복권된 1980년 이후만을 보더라도 한국의 각종 매체에서는 무려 20년 이상이나 그를 가리켜 ‘한국록의 대부’이니, ‘살아 있는 록의 신화’이니 하면서 철저히 베껴먹었다.
 
그렇지만 납득할 수 없는 점은 예술가에게는 가장 중요한 ‘현재 작업물에 대한 평가’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 60~70년대에 그가 다른 가수들을 통해서 히트시킨 흘러간 명곡들에 대한 추억과 소회를 이미 만들어진 ‘안전하고 따듯한 신화’를 기반으로 재생산하는 방식이었고, 누가 썼는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 글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신중현을 생각하면 음악평론의 여러 행태가 떠오르고, “독자 입장에서 매체/평론가의 글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를 얘기하게끔 만든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한 ‘거장’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마저도 말이다.
 
비판 없이 부여된 ‘거장의 이미지’
 
나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신중현을 얘기할 때 크게 여섯 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대부분 뮤지션을 얘기하는 본질적인 평이 아니라서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 첫 번째는 “우리는 아버지가 필요하니까, 그냥 있는 것으로 치자”라는 식의 암묵적인 합의하에서 벌어지는 ‘추앙’에 가까운 평이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아버지를 갖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뮤지션-매체-평론가 간의 직업적인 카르텔이고, 근본적으로 독자(음악수용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매체는 때때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거장을 얘기해야할 때가 있는데, 이는 기획기사 꺼리로 대중음악의 역사를 얘기해야 할 때, 외국의 거장과 비교해서 꿀리지 않을 그 누군가가 필요할 때, 한국 대중음악의 질적 우수함(독보성)의 예를 들어서 독자들을 기쁘게 해야 할 때 등등이다.
 
한마디로 신중현 또는 그의 작업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를 ‘기사 소스로서 이용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거장’으로 미리 상정하고, 그 ‘거장의 이미지’를 두고두고 우려먹는 방식이다. 이에는 상당히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신중현을 ‘거장’으로 상정하는 과정에서 그의 작품들을 밀도 있게 논한 적이 있고, 그의 행적을 음악계 선배로서의 태도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합리적인 논의가 있었다면 지금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90년대에 들어와서 신중현의 재평가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누구에 의해서 어떤 의도로 재평가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의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그나마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의아한 것은, 신중현은 1979년 말에 해금된 후 그의 최고작일 수도 있는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1980)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10년 동안 아무들 얘기도 않다가 ‘록 스피릿’ 얘기가 불거져 나온 시점에서 그것도 1974년에 발표한 ‘신중현과 엽전들 1집’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약 신중현 재평가 얘기를 꺼낸 사람들이 그의 정규 앨범들을 충실히 들어보았다면, 그리고 뮤지션의 작품을 평할 때 먼저 ‘정규 앨범’을 가지고 논하는 것이 상식임을 안다면 기존의 논의 방향성은 시작부터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신중현의 활동 기간을 생각한다면 그의 정규 앨범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편이다. 알려진 대다수의 음반들은 소속 음반사가 돈벌기 위해서 만든 편집음반이거나, 그가 ‘관련한’ 앨범들(펄 시스터즈, 김추자, 장현 등)이다. 정규작 중에서 베스트는 단연코 덩키스 1집과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이라고 생각한다.
 
‘신중현과 엽전들’ 재평가돼야
    
신중현의 초기 작품세계를 알려주는 앨범 
덩키스 1집에는 ‘봄비’, ‘꽃잎’, ‘마음’ 등이 실려 있는데, 이들은 먼저 나온 펄 시스터즈 1집(1968)의 ‘님아’에서 보여준 그의 신기원적인 그루브 감각에서 발전한 노래들이다. 아마 당시 신중현의 연주는 독보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마음’은 20여분의 런닝타임을 가지면서 B면 전체를 채우는 곡인데, 산울림의 3집(1978)에 실린 ‘그대는 이미 나’가 이런 유형으로는 국내 처음이라고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놀라웠다.
 
단지 곡이 길어서가 아니라 20여분을 이어가는 에너지라든가 곡 구성이 훌륭했고, 기타 솔로도 충일했으며, 당시의 음반 제작 관행을 생각하더라도 실험적이었다. 아마 이때가 그의 창작정신이 가장 빛날 때였을 것이다.
 
또한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은 9인조 브래스록 밴드로 만든 음반으로, 사실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은 엽전들 스타일이 아니라 뮤직파워 같은 브래스, 키보드 파트가 있으면서 특유의 ‘쩍쩍 달라붙는’ 느낌의 리듬 기타 배킹(backing)이 깔리는 음악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음반의 ‘아무도 없지만’, ‘저무는 바닷가’, ‘떠나야 할 사람’은 멋진 리듬 기타 배킹과 신중현만의 감각적인 솔로 애드립이 돋보이는 매우 훌륭한 곡들인데, 이 음반은 사실 묻혀져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그도 인정하듯이(그는 이 음반의 기타 애드립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였다) 이 음반에서의 감각은 그의 연주 경력에서의 베스트이고, 그의 필은 무척이나 독특하였다.
 
그런데도 ‘신중현과 엽전들’만 거론하는 것은 신중현 재평가 얘기를 꺼낸 사람들이 그의 정규 앨범들을 충실히 들어보지 않았거나, 아니면 식별력이 부족하던가, 그도 아니면 ‘신중현과 엽전들’을 거론해야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발 물러나서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신중현과 엽전들 2집’과 같은 졸작(누가 들어도 졸작!)에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거나 “그게 졸작임을 얘기하지 않고” 슬쩍 넘어가려는 것은 평론가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행위이다.
 
그러니 이런 행위의 본질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매체가 원하는 방향성의 얘기를 평론가들이 ‘대신 그럴듯하게’ 얘기를 한 것이거나, 매체를 위해서 평론가들이 적절하게 ‘기사 소스를 개발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매체-평론가들 간의 직업적인 카르텔이다. 그리고 매체는 그런 종류의 평론가들을 등용하는 것이다.
 
작품성 뛰어난 앨범들,  비평에선 소외돼
 
세 번째는 신중현의 팬으로서 쓰여지는 글들이다. 어찌 보면 가장 순수한(?) 유형의 글일 수도 있다. 신중현이 좋아서 위인전을 쓰든, 그의 동상을 세우든 그건 순전히 그들의 몫이고, 누가 시비 걸 문제는 아니다. 분명 그들은 신중현에게 계속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을 부여하는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 글이 ‘평론의 모양새’로 공중에 발표되어 일반인들에게 강요되면 문제가 있다. 그리고 매체에서 이를 검토 없이 수용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이런 형태의 글들이 대중에게 그리고 음악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 산업에서 매체의 첫 번째 역할은 음악수용자의 음반구매에 대한 가이드이다.
 
그렇다면 매체가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공신력’ 유무가 관건이다. 하지만 그 ‘공신력’이 애먼 얘기들로 무너진다면 그리고 음악 마니아들이 이를 조소한다면 해당 뮤지션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난을 받게 되어있고, 해당 글을 유통한 매체(평론가)는 믿음을 상실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업계에서 종종 벌어진다면 한마디로 “한국에는 믿을 만한 매체가 없어!”라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고, ‘비평’이 산업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박준흠, 대중문화평론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대한인디만세 - 한국 인디음악 10년사’ 등의 저서가 있다. 가슴네트워크 대표이자,     ©교수신문 제공
네 번째는 현재 유통되고 있는 글들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경우이다. 많은 매체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택하는 기사쓰기 형태이다. 이는 논의할 값어치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소수이지만 ‘자신만의 관점’으로 글을 생산하는 경우이다. 이는 당연히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자신의 관점으로 글을 생산하는 것이 ‘현실적’인지를 자문하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신중현으로 대표되는 파행적인 음악 글쓰기의 여러 형태들을 짚어보았다. 신중현이 진정 ‘한국록의 대부’로써 회자되려면 먼저 진정성과 전문성을 갖춘 음악평론 문화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그는 ‘한국록의 대부’라기 보다는 ‘한국음악 창작자의 역사에서의 시작점’으로 얘기되어지고 있을 것이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교수신문>(www.kyosu.net)에서 제공한 것이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사입력: 2006/12/09 [13:3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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