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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생물무기 개발은 계속된다
생물 무기 (Biological Warfare Agent) 파헤치기 (7)
 
예병일   기사입력  2003/06/15 [22:29]

모든 학문이 인류 역사상 최근에 가장 많이 발전했듯이 생물무기에 대한 지식도 최근에 많이 발전하고 있다. 아무리 생물무기가 일반인들은 물론 군인들에게까지 거부감을 일으키므로 통제하려고 해도 미생물학, 세포생물학, 분자생물학, 유전공학 등 다른 분야에서의 학문 발전은 직간접적으로 생물무기에 대한 인류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호에 이어서 이번에는 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생물무기가 어떻게 연구되고 시험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생물무기 개발 및 억제를 위한 노력

1970년에 우리 나라는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탄저병, 콜레라, 페스트의 원인균을 수입하여 생물무기 공격을 획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상황이 한반도에 심각한 해를 끼치지는 않았지만 원인이 불분명하게 국내에서 전염병이 특정 지역에 국한하여 유행할 때면 북한의 소행이 의심되곤 했다.

 ▲ 화생방 훈련중인 군인들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베트남 전쟁시 황우(yellow rain)의 사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익히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베트남전시 미국은 화학무기의 한 종류라 할 수 있는 고엽제를 무기로 사용하여 한국과 미국의 참전군인들에게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야기시켰으며, 황우는 독성을 가진 진균(곰팡이)에서 추출한 독소무기(trichothene toxin)의 한 종류이다. 미생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이 생산해낸 독성물질만을 추출하여 사용한다는 점에서 독소무기는 근본적으로 생물무기이면서도 화학무기의 성질을 지닌다고 할 수 있으며, 이 때부터 독소를 이용한 생물무기 개발 가능성이 오늘날까지 점점 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원고에서도 소개했지만 미국 대통령 닉슨이 1969년 11월 25일 어떤 상황에서도 생물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생물전 정책을 발표하고, 1973년까지 연구목적으로 극히 일부의 생물무기 재료를 남겨 놓는 것 외에 나머지들을 파기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나라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편 1969년에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와 UN은 공동으로 생물무기와 화학무기 사용시 예상되는 효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 보고서와 이전에 18개국이 연합하여 구성한 군비무장 해제를 위한 위원회에서 작성한 내용은 각 무기의 효과에 대하여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생물무기 효과를 예측할 때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자료이다.

1969년 6월과 9월에 영국과 소련은 각각 독소무기를 포함하는 생물무기 제한을 UN에 제안하였고, 1972년에는 공격적 생물무기의 연구, 개발, 생산을 금지하고 생물무기에 대한 예방 활동만을 허용하는 생물무기 협정(Biological Warfare Convention, BWC)이 체결됨으로써 1925년의 제네바 협정이 빛을 보게 되는가 하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현재까지 이 생물무기 협정에는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과 북한까지 포함하여 세계 약 150개국이 비준하였지만 화학무기 협정(Chemical Warfare Convention, CWC)과 달리 실제로 거의 활동을 못하고 있으므로 그 효과는 회의적이라 할 수가 있다. (생물무기 협정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소개하겠다)

그래도 생물무기 개발은 계속된다
 

생물무기 파헤치기(5)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1979년에 소련의 스베르들로프스크에서는 탄저병으로 최소한 66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당시 소련 정부는 탄저병에 걸린 고기를 주민들이 섭취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했으나 이 곳은 군사시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많은 이들이 생물무기에 대한 연구과정에서 비롯된 사고임을 의심하면서 생물무기 협정의 효능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1992년에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이 사고가 생물무기 연구시설에서 유출된 탄저균 포자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였다. 결국 여러 나라의 의문이 사실로 증명된 셈이다.

이보다 앞선 1978년에는 불가리아 출신의 망명자 마르코프가 런던에서 우산 모양으로 생긴 무기를 가진 암살자에 의하여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다리에 공격을 받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마르코프는 세상을 떠났으며, 부검 결과 우산으로부터 그의 다리에 주입된 독성 물질은 라이신(ricin)으로 밝혀졌으며, 암살범은 불가리아 정부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었고, 라이신은 소련에서 개발되어 불가리아에 제공된 것이었다. 참고로 라이신은 피마자(아주까리, Ricinus communis)에 존재하는 독성 단백질의 하나로 현재까지 개발 및 사용 가능성이 높은 독소 작용제의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또 한 명의 불가리아 망명객인 코스코프를 살해하기 위한 테러도 자행되었다. 마르코프가 공격을 받기 10일 전, 파리에서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불가리아 정부를 공격하던 코스코프가 거리에서 갑작스럽게 등 쪽에 통증을 느꼈다. 그는 우산을 든 사람이 도망가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워낙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던 까닭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약 2주가 지난 후 마르코프에게 행해진 테러에 대한 소식을 들은 직후 옷과 등에 묻은 물질을 조사한 결과 라이신독소에 이리듐과 백금합금이 함유된 물질로 판명되었다. 라이신은 체온에 의하여 녹을 수 있는 왁스에 싸여 있었으며 코스코프의 경우 왁스가 완전히 녹지 않았으므로 살상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에서도 버지니아주 Tyson's Corner에 있는 쇼핑몰 주차장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을 비롯하여 지난 20여년간 최소한 6회 이상 라이신 독소 무기의 사용이 의심되고 있다.

또한 1970년대 후반에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지방에 헬리콥터와 비행기에 의하여 다양한 색을 지닌 에어로졸이 살포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베트남전에서 사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trichothene 독소로 판명되었으며, 노출된 사람들과 동물들에서 질병이 발생하여 일부는 사망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과연 생물무기의 사용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야생 벌꿀의 분변에 포함된 물질이 그 지역을 오염시켰기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생물무기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의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걸프전에서는 생물무기가 사용되었을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이라크와의 전쟁이 끝난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미국이 전쟁의 이유로 든 이라크의 대규모 살상무기를 찾아냈다는 뉴스는 아직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라크가 이란과의 전쟁 및 쿠르드족 말살 시도 등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인데 과연 생물무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걸프전이 끝난 후 1991년 8월부터 UN은 이라크의 생물무기 시설에 대한 사찰에 들어갔으며, 이 때 이라크 정부 관리는 탄저균, 보툴리누스 독소, Clostridum perfringens균의 독소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이것은 최근에 생물무기 연구가 진행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라크는 여러 도시에 생물무기 관련 시설을 가지고 있었으며, 걸프전 때 파괴된 것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리고 1995년 7월, 망명한 이라크 장군 후세인 카말 핫산에 의하여 이라크의 생물전 능력은 UN의 조사관들이 의심했던 것보다 더 수준이 높다는 사실이 공표되었다. 걸프전시 이라크가 생물전을 위하여 준비했다고 그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폭탄(bomb) 166개: 보툴리누스 독소 100개, 탄저균 50개, 아플라톡신(곰팡이 독소의 하나) 16개
2. 스쿠드 미사일 탄두 25개: 보툴리누스 독소 13개, 탄저균 10개, 아플라톡신 2개
3. 보툴리누스 독소, 탄저균, 아플라톡신으로 채워진 122mm 로켓
4. 원격조정 항공기 및 전투기에 장착할 수 있는 분무용 탱크와 2000리터의 분무용 재료
5. 포탄(artillery shells)

워낙 첩보 및 정보전이 치열하므로 이와 같은 자료들이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공식적인 자료 외에 비공식적으로 민간인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걸프전 말미에 이라크는 변형된 신종 탄저균을 이용한 생물무기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참전 미군들에게서 만성 피부병과 같은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라크와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라크가 생물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똑같이 하고 있으므로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편 1995년 옴 진리교에서는 사린가스를 이용한 도쿄 지하철 테러를 일으키기 직전 탄저균을 살포하기도 했으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음으로써 조용히 묻혀진 일도 있었다. 사린가스 사건 이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와 같은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믿을 수 없는 세상

생물무기 협정에도 불구하고 생물무기의 위험성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이것은 무기 개발에 노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학문에서의 비약적인 발전은 생물무기 개발을 더욱 손쉽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소련이 생물무기 협정에 서명한 지 20년이 지난 1992년, 옐친 대통령은 생물무기 관련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그 때부터 공격용 생물무기 개발과 관련된 어떤 연구도 중지하겠다고 했지만 소련이 붕괴되어 과거의 통제력을 상실한 지금 각종 무기와 관련 시설이 통제력을 벗어나 세계시장에 유출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다.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 보유를 구실로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생물무기 협정에 대한 검증의정서 채택에도 비협조적일 뿐 아니라 생물무기 개발 작업을 광범위하게 해 왔음이 여러 경로에서 폭로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걸프전 미군 참전용사들에게서 발생한 특이한 증세의 피부병이 1990년대 후반에 미국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탄저균에 의한 것이라는 의심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전공학을 비롯한 생명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변형 생물체 발생을 현실화하여 주었으며, 이에 의하여 러시아나 이라크 등에서 기존의 백신이 효과를 지니지 못하는 변형균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비하여 미군도 변형균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생물무기는 개발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운반 및 살포기술인데 이 기술 또한 “공격용 무기개발”에 포함되므로 생물무기 협정에 의하면 연구되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방어를 위한 생물무기 탐지기술에 대한 연구는 물론 무기 사용을 위한 연구는 여러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관련당사국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연구는 방어용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이 억지궤변이라는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참고자료]

1. Robert Halery. Bioterrorism: Summary of Issues and Recommendations. In
Public Forum on Bioterrorism History by Southwestern Medical Foundation. 2001, Oct. 23
2.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 The Rise of CB Weapons. Vol. 1, 1971
3. 미군 Medical Research of Institute에서 발간한 텍스트북http://www.nbc-med.org/SiteContent/HomePage/WhatsNew/MedAspects/contents.html
4. 서재정. 미국과 생물무기. 통일뉴스. 2001. 12. 15
5. Judith Miller 외. Germs: Biological Weapons and America's Secret War.
Touchstone Books, 2002 (<세균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판이 나와 있음)
6. Ed Regis. The Biology of Doom: The History of America's Secret Germ Warfare Projects. Owl Books, 2000
7. Meselsen M, Guillemin J, Hugh-Jones M et al. The Sverdlovsk anthrax outbreak of 1979. Science 1994; 266: 1202-1208
8. Smith JR. Yeltsin blames '79 anthrax on germ warfare efforts. Washington post 1992; June 16th
9. World Health Organization. Health Aspects of Chemical and Biological Weapons: Reports of a WHO Group Consaltants, Geneva, Switzland, WHO, 1970 
10. Ed Regis. The Biology of Doom: The History of America's Secret Germ Warfare Projects. Owl Books, 2000
11. 미국 질병통제 센터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홈페이지. http://www.bt.cdc.gov/agent/anthrax/index.asp

* 필자는  '의학과 생명과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전문연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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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6/15 [22:2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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