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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엔까'에 눈물... 일본군복 즐겨입은 박정희
박정희에서 김영삼 등 민족반역자들은 왜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나?
 
이창기
11월 3일 한겨레 신문에 심수봉 가수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몇 가지 고백한 내용을 담은 기사가 실렸다.

["대통령은 내가 <눈물젖은 두만강>, <황성옛터>를 부르자 눈물을 흘렸다. 미소라 히바리의 <슬픈 술>(가나시이 사케)을 부르니까 눈을 크게 뜨면서 ‘어, 누가 일본 아이를 데려왔어. 너 일본 사람이냐’며 좋아했다."

'그때 그 사람'의 가수 심수봉 씨가 최근 일본 <아사히 신문>에 1979년 10.26 사건 당시 상황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지신의 견해 등을 털어놓았다.

심수봉 씨는 일본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익혀두었다가 한 레스토랑에서 불렀는데 그 자리에 있던 박종규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의 마음에 들었고 나중에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 자리에 불려갔다고 토로했다. 심씨는 박 대통령의 만찬에 세 차례 참석했다고 말했다.]
-도쿄 연합뉴스 김도형 기자

이 기사를 보면 박정희뿐만 아니라 박정희 아래에서 일한 박종규 경호실장 같은 자들은 일본노래를 즐겨 감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정희의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뻔히 알면서 박정희는 일제에 충성을 다한 군인답게 죽을 때까지 일본 노래를 즐겼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우리 민족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박정희의 이런 미친 친일 행각은 중앙일보에서도 고발한 적이 있다.

[ .....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 대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중앙일보. 1991. 12. 14

심수봉 씨의 증언과 강창성 씨 증언의 공통점은 박정희는 일본 노래를 듣거나 일본 군복을 입고 있을 때면 '항상 기분이 좋았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정상적인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체질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이번 심수봉 씨의 기사를 통해서는 박정희는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의 비정상적인 행각은 여성관계에서 특히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를 변론했던 강신옥 변호사(69)는 2005년 1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의 여성 편력과 관련된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하였다.

[<오마이뉴스>는 그(강신옥 변호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1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그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박지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씨가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상대로 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임박한 터라 그것부터 얘기를 꺼냈다. 당시에는 법원 결정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어떤 게 논란이 되는지는 들었어. 아마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야. 영화가 꼭 사실만 정확하게 다룰 수는 없는 법이지. 허위사실로 한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 모르지만, 실재했던 사건의 일부를 영화화한 건데…."

- 영화를 본 기자들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자관계를 다룬 부분은 일부 지나치다는 평이 있는데?

"그게 전부 사실인 걸 어떡해? 요새 젊은 사람들이야 그걸 잘 모르지. 우리가 자제해서 박의 여자문제를 재판에서 정면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박정희의 여자문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 영화에서 박 대통령의 사생활 부분을 다룬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얘기인가?

"실제로 있었던 일에 비하면 영화에서 다룬 건 1/10, 1/100도 안돼. 당시 소문이 거의 공공연한 사실이었어. 그런 행동을 한 것만으로도 박정희는 대통령으로서 당당한 사람이 아니었어. 일정한 선을 넘었던 거야. 혼자 살면서 예전의 로맨틱한 관계 때문에 여자를 만났거나 결혼을 목적으로 여자를 만난 게 아니라 박정희는 연예인들을 아주 밝혔어. 결국 권력을 업고 인간들을 성적으로 정복한 거야.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건 말도 안되지."

- 김재규 등의 변호인단 접견기록에 박정희를 접대한 연예인들의 이름이 남아있나?

"그건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우리끼리 은밀하게 얘기로 나눴다. 하지만 좀 심하게 얘기해서 당시 현역 연예인들 거의 대다수가 걸려들었지. 안 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 묘하게도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여자연예인들이 자기만 박정희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더라."
 
- 박정희의 여자관계를 부각시키는 게 당시 변론전략 아니었나?

"처음에는 그렇게 작정했었는데, 주변에서 '뭐 그런 것까지 다루냐'고 말렸다.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 법정에서 그 얘기를 하려고 하면 김재규가 가로막기도 했고, 대통령을 상대한 여자들이 연예계의 일류스타들을 망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게 다 밝혀지면 그들의 일생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었지."]

박정희! 그는 이렇게 권력을 등에 업고 무수한 여성들을 성적으로 무참하게 범했다. 그것도 당시 정상에 서있던 수많은 여성 연예인들도 마구 범했다. 그런 연예인들은 이름만 알려지는 것으로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그래도 김재규는 어려운 재판을 하면서도 그 연예인들이 공개되지 않도록 애를 썼다. 김재규는 이런 정상적인 판단력이 있었기에 박정희를 더는 두고 보지 않았던 것이리라.

박정희의 미친 행각!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일까.

박정희는 정말 그런 무지막지한 행동을 영원히 숨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언젠가는 공개될 것을 알면서도 그런 권력형 범죄를 마구 저지른 것이다.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인간 추물이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민족을 배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을 배신한 순간 그는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존재가 된다.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욕을 먹는 일이 민족반역이다.

민족을 팔아넘긴 상대국에서도 그런 배신자들은 영원히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조국을 배신한 자는 언제든지 누구라도 배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배신자들은 그런 굴욕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판단력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지 않는다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힘과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향수만 찾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서도 일본 노래를 듣고, 일본 군복을 입고 즐거워하는 미친 추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친미 민족반역자들도 다를 것이 없다.

한때 미국 LA의 '민족통신'이라는 인터넷언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바람을 피워 낳은 딸과 그 어머니(미국 거주)가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홀대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분노하여 그 자세한 내막을 만천하에 공개하려고 한다는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시절 황태자로 불린 그 아들 김현철도 성병에 걸려 그 것을 치료한 비뇨기과 의사가 언론에 고발을 하기도 했고. 연예인들과의 염문설이 끊이질 않았었다.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대매국 세력들 속에는 이제는 정말 듣기도 싫은 이런 비정상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사대주의를 쓸어버리고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것은 우리 민족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절박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 본문은 '자주민보'(http://www.jajuminbo.net)에서 제공했습니다.  
기사입력: 2006/11/03 [16:4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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