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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창씨개명보다 기막힌 미국식 창씨개명
도덕과 상식, 민족감정과 사회정의를 무시하는 법률가들
 
이대로   기사입력  2003/06/15 [21:24]
며칠 전 일본 자민당 간부가 "일제 때 한국인들이 스스로 창씨개명하기를 원해서 한 것이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어떤 신문은 '기막힌 창씨개명 망언'이라는 제목아래 일본인의 잘못을 큰소리로 꼬집었고, 북한 또한 '우리 민족을 우롱하는 못된 말이며 다시 침략하려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 서울에서는 한 시민단체가 비판 성명을 내고 시위까지 했다는 신문보도도 있었다.


▲ 법원에 간 세사람
이렇게 일제 창씨개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은 지난 6월 4일 오후 3시 나는 함께 소송을 한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와 원고측 변호인인 홍영호 변호사와 함께 "미제 창씨개명을 바로잡기 위한 소송 2차 조성 재판"에 원고로서 참석하기 위해 서울지방법원에 갔었다. 그런데 나는 피고측인 케이티(한국통신)와 케이비(국민은행), 그 대리인인 변호사의 무성의한 태도와 영문 창씨개명에 너그러운 재판분위기에 크게 실망하고 분개했다.

피고측은 미국식 영문 창씨개명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고 혹시 재판에 진다고 해도 배상비용이 많지 않으니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고, 돈을 벌기 위해 기업이 한 일인데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배짱이었다. 거기다가 재판부도 영문 창씨개명에 대한 국민 감정과 우리 국어와 민족정기에 끼치는 악영향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적당히 합의시키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일본 정치인들이 일제 때 창씨개명에 대한 망언 풍경보다 더 기막힌 일이 서울 법원에서 벌어지고 있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면 국민감정과 민족정기는 헌신짝처럼 버려도 된다는 것이고, 인륜 도덕과 사회 상식이 법보다 우선이라는 말이 법률가들에 짓밟히는 순간이었으며, 힘있고 돈 많은 사람만 좋은 세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풍경에 맥이 쫙 빠졌다.

그래서 나는 재판이 끝나고 나와서 피고측 변호인에게 "회사에서는 영문 창씨개명을 잘했다고 생각하느냐? 한국통신이나 국민은행이 순수한 민간기업이었느냐? 한국통신은 국가기관인 체신부 전화국을 이름만 바꾼 국가기업이고 국민 기업이었다. 국민은행은 지금도 국민주택기금 사업, 로토복권사업 등 특혜로 힘들이지 않고 떼돈을 벌고 있는 국민기업이다. 어떻게 그렇게 법만 내세우며 뻔뻔스러울 수 있나!"라고 분개했다. 그리고 재판 진행자에게 어떻게 되는 누구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재판할 때 원고에게 눈길도 한번 주지 않고 변호사들과만 말을 했기 때문이다.


▲ 케이티와 케이비 영문 간판
지금 한국의 돈 많은 회사와 법률가들은 " 세계화 시대에 무슨 우리말 타령이고, 미제 창씨개명이 무엇이 나쁘냐? 기업은 돈을 벌자는 것이 목적이고 돈만 벌면 된다. 한 나라나 겨레의 말은 그 겨레의 정신이고 얼이라는데 우리에겐 그게 더 골칫거리다. 사회의 도덕과 상식, 사회관념과 정의도 마찬가지 우리에겐 필요가 없다. 우리의 힘과 돈 앞에는 정부와 언론과 법조계도 다 굽실거린다"는 태도였다.

진짜 그런가?  국민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말과 우리말 식으로 된 이름은 버리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민중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 대기업 사장들이나 대기업에게 돈을 받는 법조인과 정치인, 법률가들 생각은 다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제가 강제로 창씨개명을 하게 한 것만 나쁘고 지금 우리 스스로 미국식 창씨개명을 하는 것은 괜찮은지 알고 싶다. 내가 보기엔 일제 때 강제로 시킨 창씨개명보다 지금 스스로 하는 미제 창씨개명 열병이 더 위험스럽고 부끄러운 일로 보인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에 가있다. 일본은 한국 대통령을 불러놓고 외국에 군사파병을 합리화하는 법을 만들고, 일제 창씨개명 망언을 동조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또 하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의 망언에 큰 섭섭함을 나타내기보다 아주 만족스런 일본 방문이라고 말하니 답답하다. 내가 보기엔 우리는 간도 쓸개도 없는 민족이고 국민으로서 언젠가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또 강대국에 나라를 송두리째 바친다고 해도 반발하거나 저항할 힘이 없어 보여 불안한데 다른 사람들은 무슨 비상한 대책이 있거나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은지 태연하니 이상하다.

참된 동북아 평화와 화합을 바란다면, 일본과 미국 들 강대국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려면 우리 스스로 우리를 업신여기거나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과 겨레 얼을 스스로 버려선 안 된다. 제발 이제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를 내세우고 힘을 키우자.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 그런 다음 일본이나 미국 등 강대국에 너그럽게 대하자. /본지고문

* 필자는 '우리말글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 본부장입니다.

[일제 창씨개명 관련 기사]
北통신 "'창씨개명' 망언, 조선민족 우롱" / 연합뉴스
기막힌 ‘ 창씨개명’ 망언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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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6/15 [21:2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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