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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아니라 한가위, 사랑으로 송편빚는 날
[김영조의 민족문화 사랑] 다시 생각하는 한가위의 뜻과 세시풍속
 
김영조   기사입력  2006/10/05 [17:14]
우리 겨레의 3대 명절하면 설, 단오, 한가위를 꼽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가위’는 가장 큰 명절이다. 조선 순조 때 김매순이 열양(洌陽), 곧 한양(漢陽)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책인 ‘열양세시기’에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라는 글이 있다. 한가위는 햇곡식과 과일이 있어 풍성한 좋은 절기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실감이 될 정도이다.
 
한가위에 단순히 송편을 먹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한가위의 유래와 어원을,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한가위를 어떻게 지냈나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가위의 유래와 말밑(어원) 
 
한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날(15일)로 추석, 가배절, 중추절, 가위, 가윗날 따위로 불러진다. '한가위'라는 말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베짜기)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유리왕 9년에 국내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두 공주로 하여금 그들을 이끌어 7월 기망(음력 열엿새 날)부터 길쌈을 해서 8월 보름까지 짜게 하였다. 그리곤 짠 베의 품질과 양을 가늠하여 승부를 결정하고, 진편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을 대접하게 하였다.
 
이 날 달 밝은 밤에 임금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주와 부녀자들이 밤새도록 `강강술래'와 `회소곡(會蘇曲)'을 부르고, 춤을 추며 신이 나서 흥겹게 놀았다. 이것을 그 때 말로 `가배→가위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가위의 다른 이름인 중추절(仲秋節)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仲秋), 종추(終秋) 3달로 나누어 음력 8월 가운데에 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 가장 많이 쓰는 추석이라는 말은 중국 유가(儒家)의 경전인 ‘예기(禮記)’에 적힌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과 중국에서 중추(中秋), 추중, 칠석, 월석 등의 말을 쓰는데 중추의 추(秋)와 월석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이 쓰는 ‘추석’이란 말은 어원이 분명하지 않을뿐더러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어서 이 보다는 토박이 말인 ‘한가위’ 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겠다.
 
한가위에 뜨는 보름달
 
우리는 예전에 보름달을 보고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믿었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방아찧는 상상만 해도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나라처럼 인도,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달에서 토끼를 보았고, 유럽에서는 보석 목걸이를 한 여인의 옆얼굴, 책 또는 거울을 들고 있은 여인을 상상했다고 한다. 두꺼비, 당나귀, 사자의 모습을 생각한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보름달이 뜨는 날은 정월대보름, 한가위 등 풍요로운 명절이지만 서양에서 달은 주로 마귀할멈이나 늑대인간 등 무시무시한 악령과 연관되어 ‘할로윈데이’처럼 귀신의 날이다.
 
한가위의 세시풍속과 시절놀이
 
한가위에 하는 세시풍속과 시절놀이는 벌초, 성묘, 차례, 소놀이, 거북놀이, 강강수월래, 원놀이, 가마싸움, 씨름, 반보기, 올게심니, 밭고랑기기들이 있다.
 
그중 가장 보편적인 풍속은 벌초와 성묘 그리고 차례이다. 한가위 전에 조상의 무덤에 가서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 주는데 이를 벌초라 한다. 한가위 때에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이 자손의 도리로 여겼다. 한가위 이른 아침에 사당을 모시고 있는 종가에 모여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 성묘를 가는 것이 순서이다.
 
'소놀이'는 풍물패를 따라 소를 흉내 내며, 온 마을을 다니며 노는 놀이이다. 소놀이를 할 때는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머슴을 상머슴으로 뽑아 소 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뽐내기도 한다.
 
또 '거북놀이'는 수수잎을 따 거북이 등판 마냥 엮어 이것을 등에 메고 엉금엉금 기어 거북이 흉내를 내는 놀이이다. 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동해 용왕의 아드님 거북이 행차시오!”라고 소리치며, 풍물패와 함께 집집을 방문한다. 대문에서 문굿으로 시작하여 마당, 조왕(부엌), 장독대, 곡간, 마구간, 뒷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들보 밑에서 성주풀이를 한다.
 
조왕에 가면 “빈 솥에다 맹물 붓고 불만 때도 밥이 가득, 밥이 가득!” 마구간에 가면 “새끼를 낳으면 열에 열 마리가 쑥쑥 빠지네!” 하면서 비나리를 한다. 이렇게 집집을 돌 때 주인은 곡식이나 돈을 형편껏 내놓고 이것을 잘 두었다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쓴다.
 
우리가 잘 아는 '강강술래'는 손에 손을 잡고 둥근 달 아래에서 밤을 새워 돌고 도는 한가위 놀이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이 놀이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칠 때, 의병술로 시작한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또 이러한 집단 춤의 시작은 원시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강강술래는 둥글게만 돌지 않고, 갖가지 놀이판으로 바뀌면서 민요를 곁들인다.
 
"하늘에는 별도 총총/강강술래, 동무 좋고 마당 좋네/강강술래, 솔밭에는 솔잎 총총/강강술래, 대밭에는 대도 총총/강강술래, 달 가운데 노송나무/강강술래” 앞소리꾼이 소리를 내면, 모두는 받아서 강강술래로 메긴다. 새벽이 부옇게 움터올 때까지 강강술래는 그칠 줄을 모른다.
 
▲  한가위의 유래에도 나온 강강술래 공연 모습   ©김영조
 
'원놀이'는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원님을 뽑아서 백성들의 다툼을 판결하는 놀이로 요즘의 모의재판과 비슷하다. 가마싸움은 이웃서당의 아이들끼리 만든 가마를 부딪쳐서 부서지는 편이 진 것으로 하는 놀이이다. 이긴 편에서 그 해에 과거시험에 급제한다는 믿음이 있다.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를 잘 못 만나던 옛날에는 '반보기'라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반보기는 한가위가 지난 다음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때와 장소를 미리 정하고 만나는 것이며, 중도에서 만났으므로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또 한 마을의 여자들이 이웃 마을의 여자들과 경치 좋은 곳에 모여 우정을 나누며 하루를 즐기기도 했다. 이때에 각 마을의 소녀들도 단장하고 참여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며느릿감을 고르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요즘은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는 속담처럼 한가위 앞뒤로 반보기가 아닌 ‘온보기’를 하기 위한 민족대이동은 온 나라를 들썩인다.

'올게심니'는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묶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며, 다음해에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비는 풍습인데 이 때 음식을 차려 이웃과 함께 잔치도 한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해에 씨로 쓰며, 떡을 해서 사당이나 터주에 올렸다가 먹는다.
 
'밭고랑 기기'는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8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고 믿는다.
 
한가위의 시절음식
 
'설에는 옷을 얻어 입고 한가위에는 먹을 것을 얻어먹는다.'라는 우리나라의 옛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가위는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한 때여서 여러 가지 시절 음식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 시루떡, 인절미, 밤단자를 한가위의 시절음식으로 꼽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절식은 송편이다. 송편은 반죽한 멥쌀가루에 소를 넣고 빚어 솔잎을 깔고 쪄낸 떡을 말한다. 솔잎향기가 입맛을 돋울 뿐 아니라 솔잎 자국이 자연스럽게 얽혀 생긴 무늬가 송편의 맛을 더한다. 송편은 소에 따라 팥송편, 깨송편, 콩송편, 대추송편, 밤송편 따위가 있다.

솔잎에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가 다른 식물보다 10배정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유해성분의 섭취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위장병, 고혈압, 중풍, 신경통, 천식 등에 좋다고 한다.
 
경상도에서는 모시잎을 삶아 넣어 빛깔을 낸 모시잎 송편, 강원도에서는 감자를 갈아 녹말가루를 내어서 끓는 물로 익반죽한 다음 치대어 송편 빚듯이 소를 넣어 쪄낸 감자송편이 있다. 이 외에 쑥송편, 치자송편, 호박송편, 사과송편들도 별미이다.
 
▲  한가위의 대표적 음식인 송편의 모습   ©김영조
 
“보송보송한 쌀가루로 / 하얀 달을 빚는다. / 한가위 보름달을 빚는다. / 풍년에 감사하는 / 마음을 담아 / 하늘신께 땅신께 / 고수레 / 고수레―하고 / 햇솔잎에 자르르 쪄낸 / 달을 먹는다. / 쫄깃쫄깃한 / 하얀 / 보름달을 먹는다.” <송편(최병엽)>
 
얼마 전만 해도 가정에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며 송편을 빚는 정경이 아름다웠었다. 송편을 잘 만들어야 예쁜 아기를 낳는다는 말에 은근히 솜씨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빚은 송편이 예쁘거나 볼품이 없거나에 따라 배우자의 얼굴도 예쁘거나 볼품이 없다고 믿기도 했다. 또 임신한 부인들은 송편에 솔잎 한 가닥을 가로로 넣어 쪘는데 찐 송편을 한쪽으로 베어 물어서 문 부분이 솔잎의 끝 쪽이면 아들이고, 잎꼭지 쪽이면 딸이라고 생각했다.
 
한가위의 차례상에서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다. 한가위 때 마시는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는 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라고도 한다. 추석 때는 추수를 앞 둔 때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풍족해져 서로 술대접을 하는 수가 흔했다. 또 이때의 가장 넉넉한 안주로 황계(黃鷄)를 들 수 있는데, 봄에 알을 깬 병아리를 길러서 추석 때가 되면 적당히 자란다.
 
또 옛날에는 명절에 어른에게 선물하는 데에 닭을 많이 썼다. 친정에 부모를 뵈러 가는 딸은 닭이나 달걀꾸러미를 가지고 갔으며, 경사가 있을 때에도 닭을 선물했고,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손쉬운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특히 사위가 찾아오면 장모는 닭을 잡아 대접하는 일이 흔했다. 
 
▲  한가위 절식인 토란국. 영양이 풍부하다   ©김영조
그밖에 녹두나물과 토란국도 추석의 절식이다. 녹두나물은 양기를 빠져나가게 한다고 하지만 잔칫상에 잘 오르고, 토란은 몸을 보호한다고 해서 즐긴다.
 
한가위는 모든 배달겨레의 큰 명절이다. 이 큰 명절을 단순히 연휴라는 개념으로 보내지 말고, 우리 조상들이 새겼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소나무가 피톤치트로 썩는 것을 막아주듯 사람들 중에도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곧은 인품의 향으로 다른 사람을 건강하게 해주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의 삶을 더듬어보고, 훈훈한 입김을 쐬면 나의 잘못된 생활이 올곧게 정리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함이다. 이 가을에는 솔잎을 깔고 찐 송편처럼 향기로운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또 세월이 풍속을 바꾸는 탓인지 점차 가정에서 송편을 빚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어쩌면 세상살이가 힘들어진 탓일 수도 있으며, 개인주의가 만연되어 식구들의 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게다가 ‘빨리빨리’가 온통 사람들을 지배하여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까닭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따뜻한 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면 한가위에는 온 식구가 둘러앉아 오순도순 얘기꽃을 피우며 송편을 빚어보는 것은 어떨까? 또 주위의 어려운 이웃과 같이 보름달을 보라보는 따뜻한 마음도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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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0/05 [17:1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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