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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인들은 왜 저항하는가?
중동에 진정한 평화가 싹트는 길은
 
지오리포트   기사입력  2003/06/05 [10:10]
최근 미국이 마련한 중동 평화안(일명 로드맵)을 이스라엘 정부가 받아들였다.

이라크 전쟁은 끝났지만 이라크인들은 자유와 평화를 맛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라크인들은 석유 자원에만 관심 있는 미국의 점령에 수니파와 시아파 할 것 없이 항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반미 저항의 초점을 형성하여 중동이 또 다른 격변에 휩싸일까봐 조지 W 부시는 서둘러 중동 평화안을 내놓았다.

이번 중동 평화안이 진정으로 중동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스라엘 수상 아리엘 샤론은 미국의 중동 평화안을 조건부로 수용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핵심적인 쟁점인 귀환권 인정, 정착촌 건설 중단,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대의 철수 등의 문제에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아리엘 샤론은 평화를 거부한다는 국제 사회의 비난이 두려워 이번의 중동 평화안을 받아들이는 모양세를 취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아리엘 샤론이 설사 이번 평화안에 서명한다 할지라도 그 내용을 무시하면 그뿐이다.

이스라엘은 무수히 많은 국제 협약과 유엔의 권고를 무시한 채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고 학살하며 지배하고 있다.

두 국가 방안  
▲ 최근 미국이 마련한 중동 평화안
(일명 로드맵)이 진정으로 중동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출처 http://electronicintifada.net 
이번 중동 평화안은 2005년에 팔레스타인인들의 독립 국가를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방안은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공상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공식 이념인 시온주의는 아랍인들과의 공존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을 완전히 절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이스라엘의 국경선을 쿠웨이트에까지 넓히려 한다.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가 건설되고 이 국가가 군대를 가진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항구적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와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서 설사 독립 국가가 건설되더라도 이것은 기형적인 국가일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자신들이 수천 년 전부터 살던 땅을 빼앗긴 채 가자와 요르단 강 서안의 일부 지역에만 만족할 수 있을까! 더욱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경제 수준과 규모가 이스라엘의 10분의 1도 되지 않고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공격과 파괴로 팔레스타인이 독자적인 경제를 영위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국가가 독립적일 수 있을까!

이번 중동 평화안의 운명도 1993년에 체결된 오슬로 협정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슬로 평화 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아라파트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팔레스타인 땅에는 평화가 오지 않았다.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은 더 열악해졌다. 이스라엘은 평화 회담이 진행중인 때에도 가자와 요르단 강 서안의 팔레스타인인 거주 지역에서 정착촌 건설을 확대했다. 정착촌이 건설되면 정착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 군대가 들어온다.

그리고 도로를 닦는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의 수단인 올리브 나무들을 마구잡이로 베어 버린다. 군대가 들어오면 그 지역이 군사시설로 바뀌어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지역을 통과할 수 없게 된다. 학교에 가거나 급하게 병원을 찾을 때 또는 친지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불편함을 겪는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런 불편함은 또 다른 고통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밤이 되면 무장한 채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 지역에 와서 온갖 난동을 다 부리고 돌아간다.

총에 맞더라도 야간 통행금지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다. 어떤 때는 이스라엘 군대가 테러리스트를 잡는다는 이유로 불도저와 탱크, 심지어 F-16 전투기를 동원하여 팔레스타인인 거주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2001년 예닌 학살은 이스라엘이 일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괴롭히는 것의 한 예에 불과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중동에 발을 들여놓은 미국은 중동 민중의 의사를 거슬러 독재자들과 억압적인 정권을 후원해 왔다. 이란의 팔레비 왕,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븐 사우드 왕가, 1991년 이전의 이라크의 후세인,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 이집트의 사다트와 무바라크 대통령 등이 부패하고 억압적인 친미 지배자들이다.

그런 미국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익을 옹호할 수 있을까! 이런 친미 국가들 중에서 단연 최고는 이스라엘이다. 미국은 유엔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 국가를 세워 주었고, 경제적․군사적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도적질한 땅에서 이스라엘 국가를 세워 무장을 하게 한 다음 중동에서 경비견 노릇을 하도록 한 것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진정한 원인이다. 중동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미국의 역할에 기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분쟁의 기원  

http://jabo.co.kr/zboard/
▲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기란 고작 돌멩이에 불과하다.
출처 http://electronicintifada.net
이스라엘이 매년 독립을 축하할 때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고 쫒겨난 대재앙의 날(알 나크바)을 떠올린다.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할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도록 했다. 인구의 30퍼센트밖에 되지 않은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영토의 57퍼센트를 주었던 유엔 분할안은 유대인들에게 유리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성이 차지 않았다. 1948년 데이르 야신 마을에서의 테러는 이스라엘이 건국을 전후하여 어떻게 영토를 확대했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우익 민병대 이르군은 4백여 명이 살고 있는 한 팔레스타인 마을 주민 350명을 학살했다. 이스라엘은 이런 공포심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심어 주어 자신들이 살던 고향을 떠나가도록 했다. 이스라엘 건국을 즈음해 고향을 등진 팔레스타인인들은 70만 명이 이른다.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를 패배시킨 뒤 시나이 반도, 골란고원, 남부 레바논, 동예루살렘, 그리고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를 점령했다.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이 많이 살던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 지구는 그 때 이후 최근까지 이스라엘의 직접 지배를 받았던 점령지역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고 국가를 건설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와가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해당하는 가나안 땅을 유대인들에게 약속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바빌론 제국과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살게 됐다.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분산이라는 의미로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를 의미함] 상태를 맞이한 것은 단지 제국의 강제력만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만큼 비옥한 토지가 충분하지 않았다. 더욱이 팔레스타인 지역은 고대 세계에서 무역 요충지였다. 그래서 대다수 유대인들은 상업에 종사했으며, 여러 곳을 떠다니다가 정착 생활을 하면서 그 곳의 사람들과 융화해갔다.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에 대한 애착을 지난 2천여 년 동안 가졌다는 시온주의자들의 주장은 거짓이다. 유럽에서 인종주의적 박해가 심해지고 특히 나찌가 집권하면서 유럽을 탈출했던 유대인 대다수가 팔레스타인 지역이 아니라 미국을 선택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시온주의자들은 ‘영토 없는 민족에게 민족 없는 영토를’이라고 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이 아무도 살지 않은 곳인 양 묘사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은 중동에서도 인구밀도가 높은 축에 속했다.

1930년대에 유대인들이 나찌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규모 이동해 오기 전까지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아랍인들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진정한 테러 국가
▲ 팔레스타인인들의 눈을 가린 채
끌고 가고 있는 이스라엘군.
출처 http://www.jordantimes.com 
아리엘 샤론은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학살과 고문 그리고 파괴는 모른 척하고 오로지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살 폭탄 테러만을 비난한다. 조지 W 부시는 이런 아리엘 샤론을 ‘평화의 사도’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이스라엘 지배층의 인종주의 태도는 아리엘 샤론에 한정되지 않는다. 1982년 레바논 침공 당시 총리였던 메나헴 베긴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두 다리를 가진 동물”이라고 불렀다. 1990년대에 총리를 지낸 벤야민 네타냐후는 아랍인들이 “통제할 수 없는 폭력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동에서 진정한 테러 국가는 바로 이스라엘이고 이를 후원하는 미국이다. 이스라엘의 잔혹한 면은 1982년 남부 레바논 근처의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에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 2천여 명을 학살한 사건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1982년의 레바논 침공은 이스라엘이 미국의 승인이나 재가 없이도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레바논 침공 몇 해 전인 1979년에 중동의 친미 국가인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중동의 주요한 대리인 한 명을 잃은 미국은 이스라엘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레바논 침공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베이루트를 폭격하여 민간인 2만여 명을 학살했을 뿐 아니라 사브라․샤틸라에 있던 부녀자 2천여 명을 학살했다.

이스라엘의 잔혹한 만행은 국가 탄생 이전부터 그 더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1936년 팔레스타인인들이 식민 제국 영국에 항의하는 거대한 총파업을 벌였을 때 시온주의 활동가들은 영국 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영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민병대 ‘특수야간부대’(Special Night Squads)는 팔레스타인인 3-5천 명을 학살했으며, 총파업을 분쇄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부대는 1948년 팔레스타인인들을 고향에서 내쫓은 시온주의 민병대들의 중핵을 형성했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제1차 중동전쟁 이외에도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 아랍 국가들을 공격했다. 1956년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함께 이집트를 공격했다. 1958년 레바논에서 기독교계 샤모운 정권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무슬림들을 진압하는 역할도 미국 해병대와 이스라엘 군대였다.

1970년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에도 이스라엘 군대가 후세인 국왕을 위기에서 구출해 주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중동에서 분쟁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이 개입하여 제국주의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앞장 섰다.

석유와 무기
▲ 지난 해 2차 인티파다 당시,
예닌으로 진격하고 있는 이스라엘군 장갑차.
출처 http://www.aljazeera.net
미국이 이스라엘을 중동의 경비견으로 키운 데에는 석유라는 검은 황금에 대한 지배를 위한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으로 심각한 문제를 낳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왔다.

미국의 석유 사용량은 앞으로 20년 동안 지금의 50퍼센트 더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중동은 확인된 매장량만 보더라도 전 세계 매장량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다국적 석유회사 셰브런의 부회장은 “중동은 우리 산업의 심장이다. 그리고 그 중요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동의 석유 자원을 통제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의 원조는 거의 이스라엘에 편중돼 있다. 1997년을 예로 들면, 이스라엘 국민 1인당 원조액수는 5백 달러 이상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의 평균 원조액은 3달러였다.

이스라엘 핵 과학자 바누누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2백기 이상의 핵무기까지 보유한 국가다. 중동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유일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도록 그 손에 무기를 쥐어준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인티파다와 제2차 인티파다
▲ 인티파다 포스터.
출처 http://electronicintifada.net
1987년은 팔레스타인인들이나 이스라엘 지배자들 모두에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수십년 동안 가슴에 켜켜이 쌓인 분노를 쏟아냈다. 돌멩이를 던지며 세계 4위의 군사 강국에게 도전하는 팔레스타인 10대들의 투쟁이 전 세계 민중을 고무시켰다.

1936년 총파업 이후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사회 전체가 해방을 향한 대중 투쟁에 참여했다. 망명지의 PLO가 아니라 점령지가 인티파다의 핵심이었으며, 이 봉기는 수많은 젊은 활동가들을 만들어냈다. 이런 거대한 봉기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측과 협상을 벌이지 않으면 안됐다.

1993년 오슬로 평화 협상은 1987년의 인티파다 덕분이었지만 그 진행 과정은 팔레스타인 대중의 열망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평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이스라엘은 대규모 정착촌 건설 프로그램을 통해 점령지에 대한 지배를 강화해 왔다. 결국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평화 협상을 통해 가자 지구의 60퍼센트, 요르단 강 서안의 4퍼센트만 직접 통치할 수 있었다.

평화 협상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가난한 팔레스타인 경제도 더 강력하게 지배했다. 팔레스타인 경제와 이스라엘 경제를 비교하면 제3세계와 선진국의 차이다. 1995년 이스라엘의 총수출액은 1백90억 달러인 반면, 팔레스타인의 총수출액은 3억4천만 달러였고 그나마 그 중 94퍼센트는 이스라엘로 수출한 것이었다.

평화 협상 과정에서 점령지에 공항과 항만 시설을 건설한다는 수많은 합의가 있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에서 사실상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스라엘은 국경 봉쇄를 체계적으로 이용해 팔레스타인 경제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팔레스타인 상품에 대한 이스라엘의 검사 비용 때문에 점령지와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상품의 가격은 상승한다. 또 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우대 때문에 흔히 팔레스타인 과일과 채소는 상점에 도착하기도 전에 썩어 버린다. “유대인의 땅, 유대인의 노동, 유대인의 상품”이라는 구호가 여전히 이스라엘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인권 유린이 계속되는 동안 점령지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치정부 자체의 억압에도 직면해 있다. 자치정부 보안군은 잡아 가둔 사람들을 고문하다 죽이고 언론인들과 학자들을 탄압했으며 테러 용의자들을 재판 없이 처형했다.

2000년 9월 28일 당시 국방장관이던 아리엘 샤론이 팔레스타인 지역인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하면서 제2차 인티파다를 촉발시켰다.

아리엘 샤론이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한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도발시키려는 목적이 있었지만 이번의 인티파다는 단지 이스라엘의 억압에 대한 저항의 의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평화 협상 과정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의 수준이 결코 더 나아지지 않았을 뿐더러 자치 정부 관료들의 억압과 무능 그리고 부패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 2000년 10월 봉기 직후에 작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영국 신문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평범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배신감을 이렇게 묘사했다.

“새 팔레스타인 인티파다의 일부는 아라파트를 겨냥한 것이다. 그는 거짓 약속으로 자기 국민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독점기업들을 보유한 부패한 관리들을 감싸고 돈다. 심지어 그들이 그를 대신해 협상하는 과정에서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때조차도 그렇다.……그의 국제적 후원자들은 이것을 ‘평화 협상’이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확실히 이 말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일 것이다.”

중동에서 진정한 평화에 이르는 길은?

2000년 9월말의 새로운 인티파다는 평범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반영했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은 중동 전역을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 민중들을 고무시켰다. 그리고 평화 협상 과정은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통해서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드러냈다.

중동에서 평화에 이르는 길은 석유 자원 때문에 중동에 제국주의 질서를 강요하는 미국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 초강대국의 후원과 원조를 받는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인들만의 투쟁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은 중동에서 제국주의 질서를 거부하는 아랍인들의 투쟁에서 그 일부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아랍인들의 반미 투쟁에서 노동자 대중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진정 중동에서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평화롭게 잘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 중동에서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정부의 수립만이 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중동에서 유대인, 아랍인, 기독교도, 무슬림들이 제국주의에 맞서 함께 싸운 전통이 있다.

석유를 매개로 중동의 아랍인들을 억압하는 바로 그 세력이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우리는 공통의 적을 대면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보여 준 불굴의 저항 정신이 우리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었듯이, 우리 또한 그들의 투쟁에 연대를 보낼 필요가 있다.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지구촌을 여는 인터넷 신문" 지오리포트 http://georeport.net/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 이정구 기자는 <인티파다-시온주의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저항>(필 마셜, 책갈피, 2001))의 역자이며, 진보 단체 '다함께'( alltogether.jinbo.net/)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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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6/05 [10: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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