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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
[손봉석의 컬처 지오그라피] 매트릭스2 - 리로디드
 
손봉석   기사입력  2003/06/03 [16:39]
영화는 언제나 예술과 산업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지닌 야누스였고, 수많은 감독들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와 압박 속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다.
    
▲매트릭스 리로리드 포스터   ©대자보
'매트릭스' 2편의 첫 장면은 엄청난 파괴와 폭력으로 시작된다. 연관이나 인과관계도 없이 터지는 엄청난 폭발 앞에 관객들은 어리둥절하고 워쇼스키 형제가 '블록버스터' 워너브러더스 영화사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부터 어떤 관객은 이 영화를 그저 그런 '2탄'이나 '블록버스터'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엄청난 액션이 일어나기 전 감독이 보여주는 것은 시계다. '매트릭스2-리로디드'는 이렇게 처음부터 이 영화가 1편에서 보여준 사이버와 현실이라는 이분법외에도 시간과 운명의 조율에 대한 다양한 화두를 제기할 것임을 알려준다.

즉, "이 영화는 단순한 블록버스터는 아닙니다"라는 첫 인사를 한 셈이다.    

그리고 2편의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 느껴지는 것은 사상초유의 블록버스터 속에서도 여기저기 작가로서의 목소리를 넣은 영화를 대하는 기쁨이다.

'매트릭스-리로디드'는 사이버에서 벌어지는 기계와 인간의 항쟁이라는 기본구도는 그대로 두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강렬하고 새로운 화두를 여럿 제기하고 있는데 그 본질은 다소 도식적이지만 압축해 본다면 '인간본성'과 '아날로그'에 대한 지지와 '자기의지에 의한 선택'의 중요성 이라고 볼 수 있다.

초반에 격렬한 액션장면이 지나간 후 시온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토론에서 보이는 것은 인간의 감성과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모피어스적인 사고와 그렇지 않은 인물들의 대립과 반목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계에 의해 학살당한 후에도 '이성적'이라는 말로 포장된 기계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이 늘 권력의 핵심에 있고 인간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인간의 의지를 믿는 인물들은 '과격'한 인물로 색깔이 칠해 짐을 알 수 있다.

모피어스가 마치 영화 '십계'에서 찰톤 헤스톤이 계명을 전하듯 시온의 주민들 앞에서 하는  연설의 요점은 바로 '인간의 솔직한 본성을 믿고 싸워 나가자'는 것이다.        
  
그 다음에 펼쳐지는 시온의 축제장면과 이어지는 네오가 자신의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씬은 인간의 본성과 본능이 살아 숨쉬는 곳이야 말로 꾸며지거나 조작된 세계가 줄 수 없는 환희와 따스한 교류가 있는 곳임을 알게 한다. 이는 뒤에 펼쳐지는 사이버세상에서 등장하는 우스꽝스런 악당부부와 대비되며 관객에게 자연과 본성에서 나오는 솔직함과 따듯함을 지지할 것을 호소한다.

주인공 일행이 컴퓨터 속의 세상에서 만난 악당부부의 인간관계는 묘사가 다소 상투적이지만 본성에 대한 비난과 욕망이 뒤엉킨 모순투성이의 기괴한 모습이다.

두 부부는 서로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격식을 차리고 우아하게(?) 살고 있다. 이런 이들의 모습을 서양예법의 기본을 만든 프랑스의 배우들로 설정한 것은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이어지는 '키메이커'와의 만남과 그를 지키기 위한 인간들의 사투는 다양한 의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키메이커'는 사이버 세계에 살면서 쇠를 깎아서 열쇠를 만드는 인물이다. 사이버 세상에도 존재하는 아날로그적 정서의 은유라고 할 만하다. 이 영화에서는 그가 지닌 열쇠뿐 아니라 그가 지닌 '기술'도 시온에서 파견된 전사들이 지켜야 할 소중한 것으로 설정이 되고 있다.

모피어스는 원초적인 몸을 동력으로 하는 무술과 칼을 가지고 아날로그의 화신인 '키메이커'를 디지털 세계의 사이버 전사들로부터 지켜낸다. 그리고 키메이커(한국계), 모피어스(흑인), 네오(혼혈)등으로 구성된 구원자들이나 모두 유색인종이나 마이너리티들이고 스미스 등 메트릭스의 요원들은 백인 남성이라는 점도 다층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물론 이 작품은 후반부의 활극이 시작되면서 부서지는 자동차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활동사진'으로서의 재미도 만만치 않다.  

워쇼스키 형제는 뒷바퀴 이후가 뭉텅 잘려나간 차체를 보여주며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매력중 하나가 시각적 쾌감임을 잊지 않는다.

{IMAGE2_RIGHT}이 후 영화는 '블록버스터'로 이 영화를 기다려온 관객들을 위해서도 충분한 보상을 한다. 특히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가는 고속도로를 배경으로 장검으로 자동차를 가르고 유령 같은 쌍둥이 사이버 전사들을 불로 폭파시키는 장면은 원초적인 활극영화로서의 재미가 가득하다. 작가주의와 오락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런 처절한 싸움이 끝나고 찾아간 마지막 방에서 매트릭스의 프로그래머와 네오가 마주하고 주고받는 대화는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사이버냐 현실이냐(즉,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이를 뛰어 넘는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임을 강조한다.

이와 연관하여 이 영화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신'의 은혜나 네오로 대변되는 그(THE ONE)의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인간자신의 의지와 선택이라는 점을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워쇼스키 형제가 멋진 사이버 활극을 펼쳐 보이는 속에서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성경이나 노장사상 같은 폼 나는 이론이 아니라 '프랑스대혁명' 이후 우리가 그토록 노력하면서도 관성화한 억압들 속에서 아직도 당당히 지니지 못한 '인간본성'의 권리회복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중요성이다.
  
결국 이들은 가장 강력한 힘은 '날아다니는 네오'(SUPERMAN THING)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의지'라는  것을 관객에게 알려 준다.

자기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강압이나 조작에서 나온 것은 글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임을 이 영화는 통쾌한 액션과 재미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르쳐 준다.

이 영화를 찍는 촬영장에서도 감독들은 철학자를 초빙하여 계속 대화를 나누며 작업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2탄은 <매트릭스>가 준 충격과 흥분에 비하면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3탄 <매트릭스-레볼루션>에서 혁명이 사라진 21세기에 은막에서나마 '기계' 혹은 '매트릭스'로 은유된 부당한 억압에 항거하는 진정한 혁명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기대이상으로 하고 있다.  

* 본지에서는 문화평론가 손봉석의 [컬처 지오그라피]를 연재합니다. 필자는 회화, 음악, 방송, 영화 등 다양한 장르와 인터뷰에서 비평까지 인터넷에 걸맞는 자유로운 글쓰기 형식을 선보일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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