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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성찰이 필요해진 안티조선운동
안도현 시인과 조선닷컴, 그리고 안티조선의 현주소
 
서태영   기사입력  2003/05/29 [16:47]
안도현 시인이 조선닷컴에 돈받고 글을 써준다고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티조선운동의 현주소를 가리킨다. 안도현 같이 뛰어난 시인이 조선일보사에 글을 납품하면 안티조선 진영에서는 게거품 물고 경악할 일임에 틀림없다. 말 많은 언론이 사사건건 시인의 기고행위에 대해 훼절 소동을 벌이면, 오마이뉴스 같은 관변언론에 글을 쓰는 국민기자들은 홍위병이란 말인가.

조선닷컴에 연재중인 안도현의 러브레터. 28일치 아침편지 이부엔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중에서..
"내 보지는 조개입니다. 핑크빛의 부드럽고 둥근 조개, 열렸다 닫혔다, 다시 닫혔다 열리는. 내 보지는 꽃입니다. 이상한 튤립꽃이죠. 가운데는 날카롭고 깊숙하죠. 미묘한 향기가 나고 꽃잎은 부드러우면서도 튼튼하지요.

시인은 말 수가 적다. 안도현은 그 경지를 열어 제낀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인은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울림을 목표로 한다(이문재)." 언어의 경제성에 통달한 시인의 노동이 육화된 한 편의 시 고료는 그렇게 비싸지 않다. 시인은 돈과 시를 맞바꿔먹고 살지 않는다. [성북동비둘기]의 김광섭은 시인을 "한 편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이라고 노래했다. 언론의 문인죽이기로 곪아가는 현실에서 시인이 시를 통해 축재하긴 힘들어졌다. 안도현 곁에 돈이 몰려든 것은 어른을 위한 동화였다. [연어]가 돈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말 많은 언론이 시인의 밥벌이를 양심상의 도둑질인양 매도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안티조선은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보다 시인을 더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시인의 세계관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 시가 아름다운 것은 안도현이 있기 때문이다. 안도현을 안티조선운동과 바꿔줄 순 없다.

"프랑스에는『어린 왕자』가 있고, 이제 우리 땅엔 잘 어울리는 안도현의 감동적인『연어』가 있어, 이 땅을 다시금 소중히 보듬어 안게 만든다. 참 기쁘다.(김용택)"

"[조선] 원고료 받는 편한 삶 원하나?" 손병관 기자는 안씨의 조선닷컴 기고행위에 대해 "▲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지지 ▲ 최근의 보수파 '색깔론' 비판 등의 전력에 비추어 부적절한 선택이라는 지적들이 많다"고 했다. 이 대열에는 문학평론가 김정란씨도 가세했다. 그는 기독교방송 칼럼을 통해 '안티조선 서명 지식인들의 훼절'논의를 부추겼다.

"안도현 시인은 대표적인 진보적 문인으로 꼽혀 왔고, 그 진보성을 자산으로 해서, 높은 상징적 가치를 누리고 있는 지식인입니다. 그는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으로서, 안티조선 운동에 서명했고, 지난 대선 때에는 노무현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문인들의 맨 앞자리에서 뛰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아무런 해명도 없이 조선일보에 기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은 그의 진보성을 믿고 그를 사랑했던 독자들을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
-[안티조선 서명 지식인들의 훼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안티조선 약발 떨어지는 소리로 들릴 법도 하다. 여기서 나는 안티조선운동 지식인의 사실왜곡부터 바로잡을 필요성을 느낀다. 안도현 시인이 마음 깊은 곳에서 안티조선운동에 공감했는지는 모르지만, 안티조선 서명자 명단에서 확인할 길이 없었다.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안티조선 서명 지식인들의 대열을 보면서, 쓸쓸한 마음을 제어하기 힘들다"는 김정란 교수는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았다. 비판의 구성요소에 엄청난 하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는 "조선일보사가 끌어들이려는 필진이 결코 생활이 어려운 무명작가들이 아니라, 이미 물질적으로도 충분한 여유를 누리고 있는 유명 문인들이라는 점"이라고 해, 다시 한번 삐뚤어진 인식의 단면을 드러냈다. 시인의 글쓰기가 무슨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앵벌이짓이란 말인가. 그러면 가난한 지식인이 조선일보에 기고하면 괜찮다는 소리인가.

"와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우와아 그랬싸노 뭐라캐싸노 뭐라캐싸노
니 우짤라꼬 니 우짤라꼬 그라노 웃짜랗고 웃니 웃짜랗고 그라노오 마
고마해라 니 고마해라 니." [강산에, 와그라노]


딴지일보의 농설우원 뚜벅이씨는[딴피니언]을 통해, "이거..한마디로 몹시 조깥은 일이 아닐 수없다. 최소한 이 시점에서는 어떤 이유가 됐든 좃선에 글을 쓴 안도현보다, 사고뭉치 좃선보다, 오마이뉴스의 그 선정성이 몹시 씨바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선정성의 피해가 한 개인에게 온전히 몰리는 짓거리는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씨바...안도현, 좃선에 글올리고, 궁색하게 변명하고 하는 거, 안도현 조아했던 본우원도 졸라 실망이다만(글구 왜 우리랑 이너뷰 한담에 그러냔 말야?), 글터라도 지금 그가 받는 이 모든 욕지거리, 그리하여 그가 세상과 인간과 그의 문학행위에 환멸을 느끼고 절망할 수 있게 만드는 권리는 이 세상에 누구에게도 없다. 있다면..그렇게 하는 놈이 아주 철딱서니 없는 놈"이라고 오마이뉴스를 씹어댔다. 문제는 오마이뉴스의 이 같은 지식인 때려잡기식 선정보도가 한 두 번이 아니라 공공연한 경영전략이라는데 있다.

지식인 실천의 새길-인터넷 게시판에서 놀아주기!-을 걷고 있는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오마이뉴스의 안도현 사냥]이라는 글에서, "안티조선운동은 더 이상 언론개혁 운동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는 언론을 공격하는 민주당표 정치운동이 되어 버렸음을 알 수 있지요. 이런 상태에서 안티조선은 더 이상 시민들의 보편적 동의를 얻기 어려워졌다"고 안티조선운동의 변절을 개탄했다. 안티조선운동의 대명사격이었던 진중권씨는 "그(안도현)가 조선일보에 글 쓴 게 왜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 그는 비판받아야 할 것은 안도현의 조선일보 기고행위가 아니라 오마이뉴스의 어용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성 글을 비중있게 게재하는 몰도덕성의 편집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http://jabo.co.kr/zboard/
"내 몸의 급수 탱크에도 물이 가득 차면/
詩, 그것이 바람난 살구꽃처럼 터지려나/
보일러 공장 아저씨는 살구나무에 귀를 갖다대고/
몸을 비벼 본다"-[시인]
2003 청도복사 꽃 축제 전야제 현장.
대건고 출신 3인 시화전 문학의 밤을 준비하고 있는
안도현 시인
칭찬과 비판에는 얼마만한 정성이 필요한가. 안티조선운동의 변질과 함께 우리사회에는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양상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경거망동하는 안티세력에 엇나간 보수세력이 충돌하는 사회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모습이 생활중심에 뿌리를 내릴 조짐이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이 망할 것 같은 예감마저 든다. 기우가 아니기를 바랄 따름이다. 안티조선표 지식인의 떼거리 성장은 세상을 불편하게 만든다. 눈 앞에는 안티조선운동의 운동의 우중화가 감지된다. 지금 그 폐해가 조선일보를 뛰어넘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한 어조로 질타할 수 있다. 조선일보를 닮아 버렸다고!!! "조중동 때문에 김해 땅이 투기가 되었다"는 안티조선식으로는 불협화음만 가중시킨다. 안티조선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가.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의 안도현 시인 훼절시비 기사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뒤따랐다. 오마이천민들은 우르르 안도현시인 홈페이지로 몰려가 소견머리 없는 이야기로 시인을 닥달했다. 댓글기사 게시판은 오마이스러운 반응으로 달떴지만 역비판도 만만찮았다. 네티즌 오마이달랑씨는 "유치한 논리, 비겁한 선동.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하겠소?"하고 기자를 나무랬다. 문예인씨는 [니들이 안시인 먹여살릴래?"]라는 댓글에서 "오마이뉴스 니들이 안시인 먹여 살릴래? 함부로 한 사람을 여론재판하지 말자. 조선일보가 그러는 것만 가지고도 괴롭다. 이런 방식의 기사라면 조선일보와 다를 바가 뭔가. 안시인의 선택이 마음에는 안 들지만 무슨 자격으로 그것을 비판하려 하는가?"하고 되물었다. 보다못해 씨는 오연호사장에게 "공정한 편집과 차별성있는 기사로 경쟁할 생각은 안하고 맨날 헐뜯어 반사이익 챙기는 수작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라고 그 치부를 건드렸다.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지식인이 사라지면 조선일보가 영향력이 줄어들거나 망할 것이라는 단순논리는 썩 현명하지 못하다. 조선일보 괴롭히는데 그치지 않고 지식인 괴롭히는 것도 운동이 되는 시절이 하수상하다. 안티의 그늘을 벗겨 내지 못한 운동의 종착지는 자명하다. 권력에 대한 표적비판이 정도언론의 길이 아니듯 끊임없이 최고 정치권력을 비호하고 쟁점을 흐리는 관변언론을 사회의 목탁이라고 말하긴 께름칙하다. 방종에 가까울 정도로 언론의 자유는 증대되었지만, 사회의 공기는 혼탁해졌다.

"조중동보다 신뢰도가 앞선다"는 오마이뉴스가 저질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기사를 대서특필한데 대해서는 참으로 낯짝 두껍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손병관 기자는 기사의 대미를, "안 시인은 큰 고민 없이 결정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의 행동은 '안티조선'의 대의를 잃지 않으려는 동료문인들과 네티즌들에게 크나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는 글로 마무리지었다.

그렇다고 조선일보 기고자 살생부를 만들어 지식인을 괴롭히는 운동이 언론운동의 정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보수우익지의 뚱딴지 같은 소리로 해가 뜨고, 안티조선 깃발 들고 지식인 매도하는 언론 주변 자해공갈단(!)에 의해 해가 지는 언론환경을 뜯어고쳐야 하는데 딴생각이 있을 수 없다. 딴지로 흥한 자 딴지로 망하리라.

'시민단체참여정부' 치하에서는 운동도 감시받아야 한다. 조선일보 반대편에서 권력만들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는 운동은 경계대상이다. 조선일보 비호운동에 박수를 쳐주기 어려운 것처럼 운동의 악용에는 가차 없는 회초리질이 뒤따라야 한다. 심각해진 운동의 일탈을 경계한다. 안티조선운동의 영의 시절은 가고 이제 욕만 남았는가.

상처의 근원은 권력 가진 자와 그 주변부로부터 유래한다. 안티조선의 몸통은 변질되었다. 언론개혁운동은 깃털이고 정치권력 비호운동이 몸통에 해당한다. 안티조선의 주축세력은 권력주변 인사들로 보강되었다. 단체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진 않겠다. 지난 5.18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 앞에서는 감히 조선일보도 엄두도 못낼 일이 안티조선 구호 아래 자행되고 있었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들이 5.18 국립묘지 앞에서 "광주의 아픔을 함께 한다"며 대통령 지나가시는 길에 억울한 심정을 보고 지나가라고 목좋은 곳을 차지하고 서 있는데, 일부 몰지각한 노사모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리를 비키라고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대통령을 믿고 따르는 건 개인 신념에 따른 자유선택 사항이지만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통령 비호세력들 위주로 재편성되고 있는 무늬만 운동인 안티조선을 언론개혁운동이라고 할 시기는 지났다. 언론개혁운동을 권력비호 활동으로 후퇴시킨 세력은 깃발을 놓고 퇴각하는 것이 맞다. 권력현상에 중독된 의사 언론개혁운동에는 박수치기 민망해졌다. 열광은 끝났다.

안티조선운동은 위험해졌다. 명예훼손하기 딱 좋은 운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안티조선 침대 위에 시인을 눕혀 놓고 훼절 부위를 찾아내려는 사람들은 어리석다. 시인의 글은 어느 매체에 실리느냐보다 어떤 내용이냐를 먼저 따져야 옳다.

문명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안티운동의 그늘을 보라. 안티조선운동은 사회의 응달을 만들어내는 뺄셈운동을 접고 진보의 배경이 되는 운동으로 회귀하는 연어가 되라. 그것이 위기에 빠진 안티조선운동을 정상화하는 길이다.

「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죠?" "그렇지"
"그리고 꽃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고요?"
"그렇지" "그러면 연어 떼가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인가요?" "그래,그렇고 말고"」[연어: 은빛연어와 강의 대화 중]


안티조선 운동가들에게 강산에 풍으로 흥얼거린다. "단디해라이!"
시대와 친화하고 시인과 불화하며 훼절딱지 아무한테나 갖다 붙이는 안티운동은 새롭게 등장한 사회병리현상이다. 치유불가능한 사회병리현상은 없다. 안티조선운동의 자가진단과 자기성찰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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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29 [16: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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