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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한 건 징계가 아니라 인권이었습니다"
[인권사랑방의 눈] 동성고 오병헌 학생 징계결정에 분노한다
 
전누리   기사입력  2006/07/05 [17:45]
4일 오전 10시 30분,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는 서울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정문 앞에 한두 명씩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내 그들은 갖가지 피켓을 들고 마이크를 들고 외쳤다. '학생인권 침해행위 즉각 중단하라! 부당한 징계시도 철회하고 학생인권 보장하라! 징계받아야 할 것은 오병헌 학생이 아니라 억압적 규칙이다!' 이들은 바로 지난 5월 8일 이 학교 교문 앞에서 1인시위를 했던 오병헌 학생에 대한 학교의 징계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빗속에서의 외침은 학교에 의해 무참히 외면당했다. 몇 시간 뒤, 동성고 선도위원회가 오병헌 학생에게 외부기관에서의 '특별교육 이수'라는 징계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4일 오전 서울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오병헌 학생에 대한 학교의 징계 철회를 요구했다.     © 인권운동사랑방 제공

인권보장 요구에 징계로 화답

두 달 전 오병헌 학생은 "오랜 침묵을 깨야 할 시간이 왔다"며 학교의 인권탄압 실태를 사회에 고발하는 교문 앞 1인시위를 시작했다. 그가 일인시위를 시작하면서 학교측에 요구했던 것은 두발규정 폐지, 비상식적인 징계 금지, 강제 0교시와 보충·자율학습 폐지 등 총 8가지였다. 그러나 동성고는 오병헌 학생의 요구에 대해 고개를 돌렸고, 가혹한 체벌의 가해자였던 담임교사를 교체해주는 등 미봉책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대신 두발규정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수업시간 중 교내봉사를 하라는 명령을 들었다.

그런 학교의 책임회피에 분노한 그는 재차 정당성 없는 두발규정과 일방적인 징계에 불복종하면서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전단지와 서명용지를 돌렸다. 그러자 학교는 그의 '불온한' 행동을 억압하기 위해 '복장용의규정 불이행, 징계 거부, 교사의 정당한 지도 불응, 허위사실과 허락받지 않은 사실 유포, 학생 선동과 질서 문란' 등의 사유를 들어 결국 중징계를 결정했다. 학생의 인권보장이라는 요구에 징계라는 탄압으로 화답한 것이었다.
 
닥치고 굴종하라고?

동성고가 징계 사유로 제시했던 5가지 사항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인권기준은 제쳐두고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볼 때도 어이없는 사유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 자체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기에 부당한, 아니 좀더 양보해서 납득할 만한 제한 사유도 제시하지 않고 학생의 의견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기본적인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한 두발규정에 불복종한 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나? 부당하게 '인권의 반납'을 요구하고 징계를 받으라는 요구가 어떻게 교사의 정당한 지도가 될 수 있나? 학교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학생은 입에 재갈을 물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부당한 학교규정을 바꾸기 위해 친구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고 동참을 촉구한 행위가 학내 질서를 문란케 하는 일인가? 학교가 소중히 지켜야 한다고 강변하는 학내 질서는 과연 '누구'를 위해서 지켜져야 할 '어떤 질서'인지 의문이다.

   © 인권운동사랑방 제공

허위사실이라고 학교측이 주장하고 있는 제식훈련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이 학교 학생부장은 두발단속에 걸린 학생들에게 머리를 잘라오지 않으면 제식훈련을 시키겠다며 분명 예고한 바 있었고, 그 이전에도 학생들에게 차려를 시키는 등 제식훈련과 다름없는 일들이 일어났었다. 그럼에도 학생이 사용한 문구 하나를 꼬투리 잡아 학생에게 허위사실이라는 죄를 덧씌우는 게 과연 '교육자'다운 일인가? 징계의 명분을 쌓기 위해 학생에게 강압적으로 경위서 작성까지 강요했다 하니 과연 이곳이 '학교'라 부를 만한 공간인가 의심이 든다.

학교로부터 격리해 교정교육 시킨다고?

이런 비판에도 학교는 '특별교육 이수'라는 징계를 결정했다. 특별교육 이수는 퇴학처분 전 단계에 해당하는 중징계다. 만약 인권단체들의 대응이 없었다면 바로 퇴학처분을 했을 텐데 그나마 눈치를 본 게 이 정도인가 싶다. 특별교육 이수라니…. 학교에서는 도저히 교정이 불가능한 '문제아'니 외부 특별기관에서 교정을 받으라는 말 아닌가. 꼴 보기도 싫고 다른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학교로부터 격리하겠다는 말 아닌가. 이는 학교 안에서 빚어지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라고 요구한 학생에게 오히려 '네가 문제'라고 비난의 화살을 돌려버리는, 그야말로 치사한 행태에 불과하다. 
 
▲ 학교의 부당 징계를 거부하겠다고 밝히는 오병헌 학생     © 인권운동사랑방 제공

이날 징계 결정이 나오기 전, 오병헌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원한 건 징계가 아니라 인권이었노라고. 그러나 학교는 지엄하신 학교의 말씀에 불복종한 죄, 입 닥치고 가만있지 않고 학교의 비밀을 떠들고 다녀 고귀하신 학교의 얼굴에 먹칠하게 한 죄를 물어 학생을 내쳤다. 수많은 학생들이 탄압을 불사하고 '저항의 역사'를 새롭게 기록해 왔지만, '학교왕국의 역사'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사회에 다시금 묻는다. 학교는 억압의 성역인가? 학교는 대한민국 헌법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공간인가? 과연 학생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존재인가? 도대체 이 우문들을 과연 언제까지 던져야 하는가? 

* 글쓴이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가입니다.
*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2006년 7월 5일자 (제1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인권운동사랑방(http://www.sarangbang.or.kr)이 발행하는 주간 인권소식 <인권오름>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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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7/05 [17: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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