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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부의 '정책불변의 법칙'과 '자기무오류'
외주정책, 지상파와 독립제작사 둘다 죽이는 정책
 
양문석   기사입력  2003/05/22 [09:25]
문화관광부 건물전경 [출처: 문화관광부홈페이지]
단지 ‘합의’라는 문구 하나로 시도 때도 없이 방송정책에 개입하려드는 문화관광부는 어찌해야 하나. 느닷없이 외주전문채널을 들고 나와 초점을 흐리고 쟁점을 의도적으로 변질시킨다. 외주전문채널이 무엇인가. 그 동안 잘못된 외주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작업도 없이, 일단을 밀어 붙여보자는 발상에서 상위정책의 실패를 인정치 않고 하위정책으로 보강하려는 ‘아래 벽돌 꺼내 위 벽돌 쌓는 짓’을 하고 있다.

5월21일자 PD연합회보 5면에 문광부 방송광고과장의 인터뷰가 있다. 기자가 이제까지 외주정책에 대해 문광부의 평가를 묻는다. 과장이 답한다. “외주정책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콘텐츠 제작, 공급이 필요한 바, 외주정책은 다양한 독립제작사들의 제작의욕 고취 및 제작능력 향상에 기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방송산업의 대외 경쟁력 확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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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관료다. ‘정책불변의 법칙’을 통한 ‘자기무오류’를 실현하고자 방송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현실로부터 초월해 있는 관료적 발상이 섬뜩할 정도다. 오로지 독립제작사의 관점에서만 외주정책을 바라본다. 한데 이 마저도 독립제작사를 죽이려는 행위도 모른체 그냥 내지른다. 이런 무능력한 문광부 관료들이 무식하게 추진해 온 외주정책의 본질은 온데간데 없고 외주의무비율만 오롯이 남아 지금 방송사 곳곳을 폐허로 만들어 놓고 있다.

드라마PD 다 죽이려는 외주의무비율

장르별로 드라마와 시사교양에서만 예를 들어 보자. 먼저 드라마 상황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독립제작사는 종합제작사를 포함해서 모두 95개사로 전체의 27.2%를 차지한다. 그러나 드라마 하나를 방송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제작할 수 있는 독립제작사는 적게는 3개사 많게는 5개사 정도이다. 그런데 이들 독립제작사 PD들 대부분이 방송사 출신이다. 13년간 외주정책을 시행해 오면서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드라마 중 독립제작사에서 자체 양성된 PD작품은 거의 없다. 그리고 방송사 출신 PD들은 점점 고령화되어 간다.

한데 심각한 것은 외주의무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이제 방송사도 PD양성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사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이전 같으면 5년 차 PD는 단막드라마, 7-9차 PD는 미니드라마 그리고 연수가 더 쌓이면 일일드라마나 주중 주말 드라마를 맡는다. 그런데 지금은 소위 ‘입봉’하려면 7-8년이 예사로 걸린다. 그나마 한 두 편하고 나면 다음 작품을 할 차례가 언제 돌아올 지 모를 지경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립제작사쪽도 방송사쪽도 경쟁력 갖춘 PD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점점 붕괴하고 있고 몇 년 못 가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전문인력이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른 것을 의미한다. 즉 외주의무비율만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외주정책이 독립제작사도 죽이고 지상파 방송사도 죽이는 ‘동반자살정책’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사교양프로그램으로 대외경쟁력과 상관없다

다음은 시사교양이다. 시사교양 PD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가장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이자 누구나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시사교양물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문광부에서 최근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시사교양을 주로 제작하는 독립제작사가 전체 184개로 무려 52.7%에 이른다. 한데 문제는 시사교양물이 대체로 대외 경쟁력 확보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시사교양물은 지역적 문화적 한계를 뚜렷이 가지는 영역이다. 즉 한 국가 단위 또는 공통의 문화적 토대를 갖고 있을 경우에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시사교양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비평은 철저히 한국 내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것이 해외에 팔려나갈리 만무하다. 즉 우리 국민들의 문화적 교양을 함양하는데 필요한 것이며, 그래서 대외 경쟁력과 거의 상관없는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역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잔뜩 키워 놓고 대외 경쟁력 확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내리는 문광부 관료를 보며 ‘탁상공론’의 본래적 의미를 넘칠 정도로 이해하게 된다.

컨텐츠의 다양화가 아니라 획일화에 기여했다

위의 관료는 외주정책이 컨텐츠의 다양화에 기여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이 주장이 잘못됨을 증명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통계치가 거의 필요 없다. 상식적으로 접근하면 금방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방송사에 수주를 따기 위해서 현재의 시스템 상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은 전작의 시청율이다. 당연히 독립제작사들은 시청율이 제대로 나올 만한 영역을 선택해서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교양을 섞어서 기획서를 준비한다. 그리고 계약을 체결하면 그 때부터 교양은 없어진다. 오로지 재미만 있을 뿐이다. 갈등지향적 선정적 변태적 프로그램 제작을 할 수밖에 없다. 시청율이 원수라며 누구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은 줄 아느냐고 푸념하면서도 그냥 시청율만 바라보고 달려간다. 결과는 컨텐츠의 다양화는커녕 표준화 획일화의 심화다. 그런데 이것이 콘텐츠의 다양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곳이 있으니 그 곳이 문광부요 그 사람들이 문광부 관료다.

외주전문채널은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모두를 죽일 수 있다

외주전문채널은 분명 외주정책의 기형아다. 특히 문광부와 방송위원회가 추진해 온 외주정책의 껍데기 외주의무비율의 피신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외주전문채널이 어떤 송출방식을 취할 것인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사다. 현재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케이블이니 위성방송이 지상파니 하며 말은 쉽게 하지만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을 통해서 송출했을 때 문광부가 주장하는 콘텐츠 확보와 유통확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의 콘텐츠 대부분이 외주제작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채널의 컨텐츠를 채우기도 급급한 실정이다. 만약에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으로 외주전문채널의 송출방식이 결정된다면 그것은 옥상에 또 다른 옥상을 짓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그렇다면 결국 지상파다. AFKN이나 KBS2가 대표후보다. 미국에 굽실거리는 최근의 대통령 행보를 봐서라도 AFKN 환수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KBS2인데 직접 대놓고 주장하는 집단이나 기구는 없다. 단지 전경련이나 광고주협회 등에서 KBS2를 지나가는 말로 ‘민영화’ 운운하며 툭 쳐볼 뿐이다.

최근의 어떤 세미나에서 문광부가 외주전문채널 연구용역을 맡겼다는 방송영상진흥원 관계자가 대안이랍시고 내 놓은 것이 UHF채널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UHF로 방송을 수신하려면 안테나가 있어야 한다. 이는 지상파의 기본정신인 방송의 보편적인 서비스 원칙에 결정적으로 위반하는 발상이다.

현재 지상파 중에서는 UHF로 방송을 송출하는 데는 경인방송뿐이다. 경인방송관계자들은 누가 경인방송 하나 보려고 안테나를 따로 구입하겠느냐고 자조한다. 마찬가지로 외주전문채널 하나 보려고 안테나를 구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과적으로 독립제작사를 육성 발전시키겠다고 자진해서 나선 문광부가 결과적으로 독립제작사를 몽땅 죽일 연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할 돈 있으면 독립제작사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는 것이 나을 성싶다.

방송서비스시장 개방과 디지털 시대는 안중에도 없다

지금처럼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가 세계를 압도한다면 앞으로 방송서비스 개방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는 성큼 우리 앞에 다가서 있다. 이 두 가지의 미디어환경 변화 요인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 중 하나가 ‘규모의 경제’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한데 문광부 발표에 따르면, 2003년 4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독립제작사 349개사 평균 자본금 규모가 5억원이다. 하지만 68.8%가 3억원 이하의 영세규모다. 또 평균인력이 16명 가량인데 이 중에 관리직 등을 제외하고 실제 제작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수를 따지면 훨씬 적은 인원이다.  

문광부 주장대로 외주정책의 목적이 대외경쟁력 확보였다면 이런 규모로 미디어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문광부 주장처럼, 외주정책은 다양한 독립제작사를 양산했지만, 이후 이들의 생존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부실기업 도산기업만 양산하고 있는 책임은 전적으로 문광부와 방송위원회의 몫이다. 특히 문광부는 결코 인정하고싶지 않겠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문광부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가능한 이제는 문광부가 방송정책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하나 굳이 개입하고 싶다면, 외주정책이 대외경쟁력 확보에 기여했느니 콘텐츠 다양화에 기여했느니 주장하기에 앞서 외주정책이 지상파 방송 자체를 얼마나 피폐화시켰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곱든 밉든 새로운 방송환경의 변화에 그나마 대응할 수 있는 것은 현행 지상파 방송사와 몇 안 되는 능력 있는 독립제작사뿐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한 탁상공론식 대안이 지상파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둘 다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철저한 지난 과정의 평가와 그를 바탕으로 한 대안 모색을 전 시민적 차원에서 시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자격 독립제작사들 모두를 먹여 살리겠다는 오만과 독선을 버리고 말 그대로 경쟁력 있는 제작사들이라도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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