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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생물무기 종주국은 미국이다
생물 무기 (Biological Warfare Agent) 파헤치기 (6)
 
예병일   기사입력  2003/05/19 [15:44]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생물무기에 대한 고찰을 전개하면서 생물무기는 위협적인 무기는 될 수 있으나 이를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므로 사용하는 자나 노출되는 자가 모두 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전쟁에서의 승리를 쉽게 쟁취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테러와 같은 방법으로 생물무기를 사용해 보겠다는 충동을 가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와 같은 가능성으로 인하여 생물무기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 이래 생물무기가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고대, 중세, 근대의 생물무기

생물무기란 인체에 병원성을 지니는 미생물 또는 인체에 해가 되는 독성물질을 지닌 생명체를 전쟁 또는 테러용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병원성 미생물의 존재가 알려진 후부터 이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실제로 병원성 미생물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세기 프랑스의 파스퇴르와 독일의 코흐 등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질병에 대한 경험을 가지게 된 인류는 어렴풋이나마 질병이 전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인위적으로 질병을 전파시키는 방법으로 생물무기를 전쟁용 무기로 사용하였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  
최초의 생물무기는 카르타고의 장군이었던 한니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니발은 기원전 184년 페르가몬의 유메네스 왕과의 해전을 준비하면서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 모든 종류의 뱀을 가득 채우라는 명령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한니발은 페르가몬의 병사들이 타고 있는 배에 이 항아리들을 던지게 했고, 결과적으로 두 가지 적과 싸워야 했던 페르가몬은 한니발 군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참고로 뱀이 지니고 있는 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일반적인 뱀의 독(snake venom)과 코브라의 독(cobra toxin)이 그것이다. 무엇이든 인체에 치명적이어서 소량으로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다.

인류는 서서히 전염성 질병이 집단생활을 하는 군대에 치명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질병에 걸린 개체나 열악한 위생상태를 이용하여 적군을 약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죽은 사람이나 동물의 시체를 적군의 우물에 던져넣는 것과 같은 방법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기원전 1세기에 스키타이 궁수들은 퇴비나 썩은 시체에서 흘러나온 물에 화살촉을 적셔서 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물을 오염시키는 방법은 유럽 역사의 수많은 전쟁에서뿐 아니라 미국 남북전쟁 때도 시도되었고, 심지어는 20세기의 전쟁에서도 이용되었다. 중세의 장군들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 자체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346년에 타타르인들이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인 카파(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페오도시아)를 장기간 공격했을 때의 전쟁양상의 변화에 대하여  가브리엘 드 무시스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타타르인들은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으로 피폐해져 갔다. 그들은 건강 회복에 대한 어떤 희망도 없이 죽어간 동료들의 시체를 투석기를 이용하여 카파 시내로 던져 버렸다. 이렇게 하여 페스트는 카파 시내 전체로 퍼져 나갔다.” 페스트가 번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군대는 퇴각을 했지만 이 페스트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서 중세 유럽을 황폐화하게 되었다.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창궐한 페스트는 2,500만명의 유럽인들을 사망시켰고, 1422년 캐롤스타인에서는 죽은 병사들의 시체와 배설물들을 대량으로 적군에 투입하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전략이 1710년에 스웨덴과 전쟁중에 있던 러시아 군대에 의하여 시도되어 페스트로 죽은 시체를 스웨덴군이 진주하고 있던 곳에 투입되었다.

앞선 원고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페스트 뿐 아니라 두창이 자연적인, 그리고 인위적인 전쟁무기로 사용되기도 했다. 1518년 아즈텍 문명 몰락시에는 스페인의 코르테즈 군대가 자연적으로 유행한 두창에 의하여 운좋게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고, 1530년에는 잉카문명마저 자연적으로 전파된 두창에 의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해보기도 전에 자연이 준 선물인 전염병에 의하여 승리를 거둔 것이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영국군은 미국에서 땅을 넓혀 가는 과정에서 두창을 새로운 무기로 이용하였다. 1767년에 프랑스와 동맹한 인디언과 마주친 영국 장군 제프리 암허스트는 두창에 노출된 모포를 이용하여 인디언들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방법으로 13년이나 계속되어 온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후에 두창 예방접종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1796년 영국의 제너에 의하여 두창 예방접종법이 개발된 것은 1796년의 일이었으므로 워싱턴이 의무화한 예방접종법이 그 전부터 있었던 인두접종법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20세기 초반의 발전

20세기에 들어서자 인체는 물론 동물의 질병도 이용하게 되면서 양상이 더 복잡해지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시 독일군은 화학무기와 함께 생물무기의 사용가능성을 시험하였고, 이를 위해 탄저병과 비저병에 걸린 가축을 이용하여 미군 등에 사용하였다. 당시 유럽에 비저병이 만연하였으므로 이를 실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독일의 한 파괴활동가(saboteur)가 1917년 메소포타미아에서 4500구의 가축을 감염시킨 혐의로 체포된 사실에서 독일의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또한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생페테스부르크에서 콜레라를 전파하기도 했고,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에는 독일 비행기에 의하여 오염된 과일, 초컬릿, 어린이용 장난감 등이 공급되기도 했다. 독일은 영국 땅에 생물무기 투여를 의심받고 있는 것과 위의 모든 행위를 부인하였다. 1924년에 여러 국가가 연합하여 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하였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1925년의 제네바 협정에 의하여 전쟁시 생물무기와 화학무기의 사용을 금하기로 하였으니 당시는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 같이 정립되지 못한 시기였고, 사용만 금지하기로 하였을 뿐 연구와 생산까지 금지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78년이 지난 지금 화학무기 금지협정이 나름대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생물무기 금지협정은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이라크에 대하여 화학무기 사찰을 한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매스컴에 보도되었지만 생물무기 사찰을 한다는 이야기는 보도된 바가 없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생물무기 금지협정이 아무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협정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겠다.

제2차 세계대전

▲ 2차세계대전 일본의 731부대    
제2차 세계대전중 생물무기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만주에 진주한 일본군의 731부대에 대한 것이다. 일본은 1939년에 소련과 몽고에,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중국 일반인들에게, 그리고 1942년에 중국군대에 생물무기를 사용했다고 기소된 바 있다. 일본군은 1940년 10월에 비행기로 추쉬엔에 페스트균을 가지고 있는 쌀과 벼룩을 퍼트렸다고 의심받고 있는데 참고로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페스트가 발병한 적이 없는 곳이다. 1942년 8월까지 일본은 적어도 11개 지역에 페스트균이나 그램 음성세균에 오염된 쌀, 밀, 옥수수 등의 곡식을 살포하여 수천명의 환자와 사망자를 발생시킨 것으로 추산되지만 원인균이 정확히 어떤 것이고 어떤 방법으로 감염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1932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 일본군은 중국, 한국, 몽고, 소련, 미국, 영국, 호주의 죄수들을 대상으로 탄저병, 브루셀라, 콜레라, 이질, 뇌수막염, 페스트 등의 인체실험을 실시하였다. 진균 독소인 테트로도톡신에 대한 실험까지 행해졌으며 일본 정부는 뒤늦은 1982년에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가장 유감스런 일”이라는 논평을 남겼다.

만주에서 인체실험을 행한 일본군 특수부대중 가장 유명한 것이 731부대이며, 그 외에도 여러 부대에서 생물무기 관련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731부대는 생물전을 준비하기 위한 부대였고, 100부대는 세균성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부대였다. 하르빈에 있었던 가장 악명높은 731부대에서 사망한 사람만 3,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살아서 돌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독일의 연구자들도 제2차 세계대전시에 리케차, A형 간염 바이러스, 말라리아 등의 인체실험을 진행하였다. 1941년 12월 영국에서는 정상적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없는 콜로라도 풍뎅이가 발견되어 독일이 용의자로 지목받았다. 1945년 5월에는 보헤미아의 큰 저수지에 이질균이 포함된 분변이 오염되어 이질의 유행을 가져왔지만 독일군의 문서중에는 생물무기에 대한 방어책에 대한 것을 있을 지언정 무기의 사용에 대한 것이 없어서 독일군의 생물무기 사용을 입증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편 독일은 영국이 1941년부터 1942년 사이에 서부아프리카의 모기를 가져와서 인도에서 황열에 관한 실험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하기도 했다. 영국은 1942년에 스코틀랜드 연안 그루이나드섬에서 탄저균이 실린 작은 폭탄을 터뜨리는 실험을 실시한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처칠은 독일군이 생물무기를 사용할 경우 영국군도 생물무기 사용을 심각히 고려해 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여러 지역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전염병들이 유행함으로써 전쟁중에 생물무기를 사용했거나 실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1947년 이집트에 발생한 콜레라, 1949년 캐나다 에스키모인들에게 발생한 페스트 등이 그것이며, 독일은 1950년에 미국이 전쟁중에 독일에 콜라라도 풍뎅이를 전파시켰다는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한국 전쟁 이후의 현황

소련, 중국, 북한은 한국전쟁중에 미국이 생물무기를 사용했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의 요청에 의하여 1952년에 국제적으로 조직된 과학자들은 북한과 중국에 대하여 생물무기가 사용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때 의심된 무기는 황열을 전파하는 모기와 기타 전염성 병원체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은 자신들이 실험한 것들이 생물무기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였지만 무기로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한국 전쟁 이후에 제기된 생물무기 관련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영국이 1957년에 오만에서 생물무기를 사용하였다.
2. 브라질의 지주들은 1970년에 아마존 지역의 인디언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질병을 전파시켰다.
3. 중국은 1961년에 홍콩에서 미국이 콜레라를 전파시켰다고 주장하였다.
4. 1964년 7월에 소련의 신문에는 미국과 콜롬비아 군대가 콜롬비아와 볼리비아의 농부들에게 생물무기를 사용하였다고 보도하였다.
5. 1966년 이라크에서도 콜레라가 인위적으로 전파되었다.
6. 1970년에 한국은 북한이 생물전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부터 탄저균, 콜레라균, 페스트균을 수입했다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현대의 생물무기 종주국은 미국?

세계의 경찰임을 자부하는 미국이 그다지 도덕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점은 모든 일에서 자국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할 뿐, 별다른 경찰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1925년의 제네바 협정에는 서명을 했지만 그 후 생물무기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어떤 협정에도 미국은 각종 이유들을 내세워 나서지 않고 있으며, 아무리 그들이 자국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방어용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이를 믿는 다른 나라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옳은 말이다.

결론적으로 731부대를 비롯한 일본의 엽기적인 군인이자 의학자였던 사람들은 종전 후 법정에 서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 모든 실험결과를 인수받는 조건으로 미국이 일본 관계자들을 그냥 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KBS 일요스페셜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이 방송된 바 있다) 731부대의 부대장 이시이는 탄저균, 페스트 등에 대한 각종 인체실험 자료를 미군들에게 넘겨 주는 대신 전범재판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때 일본은 8백건이 넘는 인체실험 자료와 약 8천점의 슬라이드, 35종 이상의 보고서를 미국에 넘겨주었다. 이 자료들은 미국 생물무기연구의 본부격인 디트릭 부대로 전해졌고, 이를 토대로 미국의 생물무기 관련 지식이 엄청나게 방대해졌다.

매릴랜드주에 있는 디트릭 부대가 생물무기 관련 책임부대로 선정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였다. 1941년에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시작한 미국은 다음 해에 생물전 프로그램을 전담할 부서를 신설했으며, 미 육군의 화학전 연구부대에 생물무기 연구개발을 의뢰하면서 무기개발을 시작하였다.

한국 전쟁에서 미군의 생물무기 사용이 의심받고 있는 것은 미국의 생물전 프로그램이 1950년대 이후 최우선 사업으로 부상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1951년 12월에 미군은 생물무기를 공격용으로 사용할 준비를 시작하였고, 다음해 2월 실제 실험을 위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때마침 중국과 북한이 미국이 생물무기를 시험하고 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미국의 생물무기 사용이 의심되고 조사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하여 미군은 생물무기를 사용한 것은 중국과 북한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으나 세월이 지나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지금 미국의 주장을 믿지 않는 군사전문가들이 대부분이며, 미국에서 발행되는 단행본 책자중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1969년 닉슨 미 대통령은 미국의 모든 공격용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종식시킨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1972년의 생물무기 금지협약 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물무기의 생산 및 보유를 금지하는 생물무기 금지협약은 현재 140개 이상의 국가들이 이에 가입하고 있으나 실제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알맹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화학무기 금지협약과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언뜻 보기에 생물무기 금지협약에 무슨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는 미국은 생산금지에는 동의하면서도 방어용 연구금지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방어연구를 빙자하여 생물무기 관련연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지난 2001년의 9.11 테러 직후 탄저균의 백색가루가 미국사회를 공포에 몰아넣었을 때 우편물로 배달되는 이 탄저균은 미국내에서 생산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백색가루를 제조하는 방법이 화학물질을 이용하는 방법이며, 그 기술은 미국만이 보유하고 있다는 방법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라크, 리비아, 북한 등에 대하여 생물무기에 대하여 통제를 하려고 하니 이제는 핵우산이 아니라 생물우산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고, 그 우산 안에는 미국 혼자 들어가 있을 생각인 모양이다.

*다음 호에는 1970년대 이후의 생물무기에 관한 내용이 게재됩니다.

참고자료

1. Robert Halery. Bioterrorism: Summary of Issues and ecommendations. In Public Forum on Bioterrorism History by Southwestern Medical Foundation. 2001, Oct. 23
2.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 The Rise of CB Weapons. Vol. 1, 1971
3. 미군 Medical Research of Institute에서 발간한 텍스트북
http://www.nbc-med.org/SiteContent/HomePage/WhatsNew/MedAspects/contents.html
4. 서재정. 미국과 생물무기. 통일뉴스. 2001. 12. 15
5. Judith Miller 외. Germs: Biological Weapons and America's Secret War. Touchstone Books, 2002 ([세균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판이 나와 있음)
6. Ed Regis. The Biology of Doom: The History of America's Secret Germ
Warfare Projects. Owl Books, 2000
7. Jared Diamond.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W. W. Norton & Company, 1999 ([총 균 쇠]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판이 나와 있음)
8. Ken Alibek & Stephen Handelman. Biohazared: The Chilling True Story of the Largest Covert Biological Weapons Program of the World-Told from Inside by the Man Who Ran It. Delta,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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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19 [15: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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