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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정당 입당 이계경씨, 한점 부끄럼도 없다고?
여성들이여 필요한 사안에 따라 '연대'하고 ‘분열’ 하라
 
정문순   기사입력  2003/05/16 [18:37]
▲ 이계경 전 <여성신문> 사장    
한 달쯤 전에 여성신문사 사장 이·취임식이 있었다. 이계경 전 사장의 한나라당 입당 이후 시간이 제법 흐른 뒤다.

그의 '정치적 선택'에 반발해 몇몇 기자들이 사표를 쓰는 등 내부 진통이 있은 후에 경영진이 새로 꾸려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났어도 이 전 사장의 심경에는 별 변화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 행사장의 풍경은 변방에 있다 기득권에 합류한 사람들에게서 익히 보아오던 것과 같다. 당사자는 이임사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드러낸다. 여러 사람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은 미안하다, 그러나 나의 선택에 한 점 부끄러움은 없다고. 듣고 있던 사람들도 눈물로 화답하고 격려한다.

수구정당에 입당한 여성운동가

이제 갈등과 오해는 마무리하고, 화합과 포용으로 뻗어나가자. 이 대열에 이 전 사장의 한나라당행에 항의하는 뜻에서 칼럼 기고를 중단한 상태에 있던 조기숙 씨도 있었다.

“제가 여성이 별로 없는 한나라당에 가면 여성권익을 위해 할 일이 더 많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씨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발언이다. 그는 30여년을 여성운동에 매진해온 운동가를 잠깐이나마 신뢰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고 한다.

[관련기사]
정문순, 여성신문은 차라리 떳떳한 태도를 보여라, 대자보 92호

그러나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인정에 치우친 사고일 뿐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들은 한나라당에 왜 여성이 별로 없는지 생각 안 해보았을까? 무슨 의도로 한나라당이 대선을 앞두고 여성신문사 사장에게 입당을 제의했는지 모르는 걸까?

척박한 땅에서 여성 언론이 15년 이상 버텨오고 성장해온 데는 이 전 사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의 힘만이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독불장군이 아니라면 누구의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수구정당의 여성 정치인으로서 '여성권익'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우재, 이재오, 김문수인들 한나라당에 입당할 때야 민중의 권익을 위해 일할 포부가 없었겠는가. 그만 하자. 비판하자면 끝도 없을 듯하다. 여성과 수구의 결합에는 감정이 앞선 분노를 못 견디는 내가 싫다.

어쩌면 내가 흥분할 이유도 없을 성싶다. 부유층에게 하층민의 권리에 관심이 없다고 따지는 것과 같을 지도 모르니까. 지난 해 박근혜 논쟁이나 장상 전 총리서리 지명자에 대한 여성단체들의 지지와 관련한 논란 등에서 나타난 것은 여성 진영의 급격한 세분화 조짐이었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다 같은 것도, 모두 급진적인 것도 아니다. 박근혜와 장상 같은 기득권 여성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나 수구 정당에 들어가는 여성운동가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의식이 중산층에 기울어져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게 만든다.

학력과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갖춘 지식인 여성들은 그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이 사회에서 기득권의 일부이거나 최소한 기득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다.

그들에게 박근혜나 장상, 보수정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의 확보를 위해서라면 털끝만큼의 해도 끼치지 않을 존재들임을 간과할 수 없다. ‘이프’ 지 같은 페미니스트 잡지의 경우, 그들이 여성 인맥과 여성의 몸에 기울이는 관심에 비해 하층 여성의 삶에 거의 배려가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자신의 사회적 처지에 맞게 사고하는 사람들을 흉 볼 생각은 없다.

그러나 힘있는 여성을 권력에 진입시키는 것보다 일상의 낮은 곳에서 여성 개개인의 삶의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들이 자매애라는 이름으로 비판 없이 수용되기는 힘들 것이다. 가령 여성 정치인 몇 사람 출세한다고 해서 기간제 교사가 학교장의 차 시중을 강요받는 것과 같은 일이 없어질 수 있을까.

필요사안에 따른 연대 중요

여성운동의 분화는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분명 발전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섣불리 하나됨과 단결을 말하는 중앙집권적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사안에 따라 연대하는 자세이리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분열이 아니다. 그것은 지배-복종 의식에 길든 남성의 주류 문화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5월 13일자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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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16 [18: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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