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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제 목소리가 묻혀버렸습니다
반전 호소한 13세 소녀 샬롯 앨더브런, 그 뒷 이야기
 
지오리포트   기사입력  2003/05/09 [00:57]
'반전 호소문'으로 세계인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미국의 13세 소녀 샬롯 앨더브런(Charlotte Aldebron)은 최근 자신이 살고 있는 메인주에서 다시 한 번 연설을 했다. 샬롯은 자신의 연설문이 각국어로 번역되면서 전세계에서 3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는 묻혀졌다고 말한다.

샬롯은 미국에는 언론의 자유는 있겠지만, 그 자유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현실에 머무를 뿐이라고 한숨지었다. 그래서 미국에 진정한 언론의 자유가 있냐고 반문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당시 한국에서도 전교조 교사들의 반전 교육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반전 교육을 비판한 이들의 주요 논거는 '판단력이 미숙한' 청소년들에게 '정치적'인 내용을 주입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대국이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켜, 힘없는 나라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현실에 침묵하는 것이야말로 (부정적 의미에서)'정치적'인 태도가 아닐까. 청소년은 '판단력이 미숙'하기에 예쁜 꿈만 꾸게 하고 끔찍한 현실을 알게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진보적 주간지 Wire Tap에 게재된 샬롯의 연설문 'Do We Really Have Free Speech?'를 통해 전쟁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교육을 생각해본다. <옮긴이>


"우리는 다른 생각를 억압하기 위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귀를 막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지금의 이라크 침략전쟁은 저에게 언론의 자유에 대한 커다란 교훈을 주었습니다.

혹은 제가 언론의 자유라는 사상과 언론의 자유라는 현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발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혹은 제가 따돌림을 당하거나 아무도 제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언론의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지난 3월 초에 제가 다니는 학교 사회 선생님께서는 토론 주제를 이라크로 정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담 후세인을 무장 해제시킬 시간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 사람들을 독가스로 공격한 잔인한 독재자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손을 든 뒤 미국은 사담 후세인에게 화학 무기를 주었고, 중앙정보국(CIA)은 후세인이 독가스를 사용할 공격 목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샬롯, 네 말은 틀렸어.”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저를 외면하면서 더 이상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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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리포트, "여러분은 내 모습을 떠올려야 합니다", 대자보 98호

이라크 공격이 시작된 뒤에는 수업시간은 전투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그건 마치 게임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페르시아만 연안의 국가들에 관한 유인물을 받았습니다. '선수들(The Players)'이라는 제목의 그 유인물에는 우리가 쳐부셔야 할 상대팀 선수들인 이라크 지도자들의 간략한 약력과 사진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걸프 지역의 지도에는 모든 적국의 크기와 위치, 그리고 각 나라가 소유한 무기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군대를 상대로 이라크가 사용할 화학무기의 위험성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어머니는 학생들이 전쟁을 찬양하고, 군사전략에 감탄하고, 인간을 죽이고 불구로 만드는 짓을 대상화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며 교장 선생님과 교육국(Commissioner of Education)에 항의했습니다.

교육국은 각 학교의 교과과정은 자신들이 관여할 수 없는 문제라고 답변했고,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의 사회과목 수업내용이 '균형적이고 포괄적(balanced and comprehensive)'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물론 우리 어머니도 언론의 자유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질러댈 자유가 있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과학시간에 선생님은 우리에게 “생물 무기의 이점이 무엇인가?”라는 식의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생물 무기는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아무런 이점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게 무슨 이점이 있나요?

선생님은 저에게 생물 무기의 두 가지 예를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죽이기 위해 천연두를 뿌린 모포를 준 것과,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발견된 E coli 박테리아를 말했습니다.

저는 유엔 화학무기 금지협약(CWC)에 서명해서 생물무기의 위험성과 가능성 사이의 격차를 없애야 하고, 육류 검역관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지금까지 우리가 낸 과제를 교정해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저는 몇몇 나라에서 유명해졌습니다. 제가 했던 반전 연설문이 프랑스어, 스페인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일본어, 한국어, 베트남어, 우르드(Urdu), 벵갈어로 번역되었고, 그 외 또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에서 저를 소재로 다루었고, 봄베이의 한 유명한 가수는 대성황을 이룬 콘서트에서 제 연설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3천통이 넘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곳에서 저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제가 학교에서 제 연설문을 읽지 못하게 하셨고, 지역 신문은 제 연설문을 싣지 않으려 했습니다. 일본에서 방송국 직원들이 저를 취재하기 위해 학교에 찾아왔을 때, 교장 선생님은 그 분들이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방과후에 그 분들이 길에서 제 급우들을 인터뷰했을 때에도, 교장 선생님은 달려가서 화를 내면서 촬영을 못하게 했습니다. 물론 그 분들은 교장 선생님이 화를 내면서 방해하는 장면을 촬영했고, 방송에도 내보냈습니다. 일본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원자폭탄을 사용해서 끔찍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전쟁이 얼마나 나쁜지 알고 있기 때문일까요?

저는 전세계에서 우리 동네 사람들과 선생님들, 친구들이 저를 무시하더라도 좌절하지 말라고 격려해주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미국같은 나라에서!” 그런 발언을 하다니 너 참 용감하다고 편지에 적었습니다.

한 일본인은 자신이 아홉 살이었던 1945년 7월 20일 혼슈에서 같이 길을 걸어가던 친구 두명이 P-51 무스탕 전투기가 떨어뜨린 폭탄에 건물이 무너져서 그 밑에 깔리는 걸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과 자기 어머니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하더군요.

요르단에 사는 한 여성은 화학무기 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창문을 덕트 테이프로 봉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치 점령으로 평생동안 고통당했다는 사연을 전해준 그리스 남성도 있었습니다.

한 캐나다인은 인간을 ‘부수적 피해’라고 부르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캘커타에 사는 한 남성은 전사들이 이성을 되찾아서 무기를 내려 놓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남한에 사는 한 학생은 이런 끔찍한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시간에 책상에 앉아서 공부나 하는 건 잘못된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 이란인은 아무리 그들이 ‘적’국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짓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우리는 평화에 대한 소망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 중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불법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미국인들은 그 사람들보다 더 미묘하고, 더 기교적입니다. 미국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생각를 억압하기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귀를 막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Charlotte Aldebron / 번역 김지연)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지구촌을 여는 인터넷 신문" 지오리포트 http://georeport.net/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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